趙甲濟의 대연재/근대화 혁명가 朴正熙의 비장한 생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민족의 大敍事詩 浦項종합제철 건설(1)
  
  
  *야기노부오 證言
  
  1960년 민주당 내각의 국무총리 張勉은 日帝 시대 사립 東星商業학교의 교장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조선총독부 학무과장은 야기노부오(八木信雄)였다. 야기노부오는 도쿄대학법
  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자말자 조선 총독부로 발령받아 해방될 때까지 19년간 중요 간부직
  을 역임했다. 특히 총독부 경무국 보안과장을 지냈는데 이 자리는 特高 경찰, 즉 독립운동
  과 사회주의 운동을 감시, 수사하는 일종의 사상경찰 지휘탑이었다. 해방 때는 전남도 지사
  야기노부오씨는 해방 뒤 일본으로 돌아간 이후엔 관료의 길을 접고 韓日간의 幕後에서 자
  신의 인맥을 활용하여 일정한 역할을 했다.
  야기노부오는 1980년대에 나온 자신의 회고록 「日本과 韓國」에서 張勉 총리가 1961년 2
  월에 당시 대한전력주식회사 柳東璡 사장(東星商業 교장 출신)을 일본으로 보내 자신을 통
  해서 韓日 국교 정상화를 위한 막후 교섭을 벌이려 한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야기노부오에
  게 柳東璡을 소개한 사람은 朴哲彦이었다. 그는 야기노부오의 한국인 친구 朴駿榮의 친구였
  고 미군 통역장교 출신이었다고 한다. 야기노부오는 朴씨의 사려 깊고 信義 있는 태도에 매
  료되었다고 했다. 야기노부오는 柳東璡 사장 일행을 데리고 야스오카(安岡正篤)를 찾아갔다
  야스오카는 陽明学(명나라의 王陽明이 주창한 지식과 실천의 일치를 강조한 儒學)의 大家로
  서 당시 일본 정계의 巨物 인사들이 스승으로 받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張勉 총리측에선 야
  스오카를 통하면 일본 정계의 실력자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야스오카는
  柳東璡 사장 일행을 만난 뒤에 朴哲彦을 통해서 張勉 총리측과 수차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
  다.
  야스오카는 자신의 대리인으로서 야기노부오를 한국에 보내기로 하고 당시 수상 이케다(池
  田)와 전 수상 기시(岸)의 양해를 얻었다고 한다. 야기노부오의 訪韓을 며칠 앞두고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미군 통역 출신 朴哲彦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朴正熙 장군의 비서실장 朴泰俊과도 親交
  가 있었다. 야기노부오는 박철언을 통해서 朴실장에게 「야스오카 선생과 막후 접촉을 시작
  하는 것이 국교정상화 교섭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라고 알렸다고 한다. 야기노부오의 회고
  록에 따르면 1961년10월 서울 대학교의 李用熙 교수(뒤에 대통령 정치담당 보좌관 및 통
  일원 장관 역임)가 朴의장의 特使(특사)로서 朴哲彦을 데리고 일본에 와 야스오카를 만났다
  고 한다. 야스오카는 李특사를 政財界(정재계)의 실력자들에게 소개해주었다. 기시 전 수상
  을 비롯하여 국교가 정상화될 당시의 수상 사토에이사쿠(佐藤榮作)도 만났고 일본 상공회의
  소 會頭 및 經團連 부회장도 만났다. 마지막으로 이케다 수상을 만났을 때는 야기노부오도
  陪席했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이케다 수상은 李用熙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미국을 방문하여 케네디 대통령과 만났더니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서 두
  나라가 자주적으로 해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했다. 貴國의 朴正熙의장도 곧 訪美한다고 하던
  데 같은 말을 들을 것이다. 미국인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기 전에 같은 동양인 사이인
  日韓이므로 朴의장이 미국으로 가는 길에 도쿄에 와서 나와 함께 이 문제를 이야기해보는
  것이 어떤가. 나의 뜻을 朴의장에게 전해주기 바란다. 한국의 경제부흥을 위해서는 일본도
  가능한 한 협력할 생각이다』
  그해 11월12일, 訪美 길에 도쿄에 들린 朴正熙 의장은 이케다 수상과 만나 韓日 국교
  정상화 회담을 서두르기로 합의했다.
  이때 가동했던 韓日 인맥은 1969년 봄 포항종합제철 건설 자금을 일본에서 끌어내는 사업
  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야기노부오 회고록에 따르면 이때도 親友 朴哲彦이 朴泰俊 포
  항종합제철 사장의 메시지를 갖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요지는 포항제철 건설 자금을 구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실패했으니 야스오카 인맥을 활용하여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얻
  도록 해달라는 간청이었다고 한다. 5.16 이후 야스오카의 생각은 한국 국민들이 민주주의와
  군사정권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그들 자신들의 문제이고 군사 정권이 反共정
  책을 견지하는 한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야기노부오는 회고록에서 이런 요지로
  썼다.
  <朴哲彦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야스오카 선생을 만나 지도와 협력을 받기로 결심했다. 나
  는 포항제철의 건설에 협력하는 것은 우리 나라가 古代에 한국으로부터 철기문화를 배워온
  데 대한 報恩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남북분단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므로 일본이 가진 세계 초일류의 제철기술과 자금으로써 한국을 도와주는 것은 하나의
  報償이 아니겠는가>
  야스오카는 야기노부오의 생각에 동의하고 일본 철강연맹 회장 이나야마(稻山嘉寬)를 소개
  시켜주었다. 야기노부오는 朴哲彦과 함계 이나야마 회장을 찾아가 朴泰俊의 고민을 전달하
  고 협력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나야마는 이 문제를 철강연맹의 연구과제로 삼겠다
  고 말했다.
  
  
  *종합제철 건설 外資 유치 문제
  
  여기서 잠시 朴泰俊이 처한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1966년12월6일 미국의 철강도시 피츠버그에서 미국의 코퍼스社가 중심이 되어 對韓國際
  製鐵借款團(Korean International Steel Associates: KISA)이 창립되었다. 당시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 張基榮이 주도하여 만든 이 컨소시엄에는 코퍼서 이외에 서독의 데마그,지
  멘스, 영국의 웰먼, 이탈리아의 임피안티 등 4개국 7개사가 참여하였다. 1년 뒤엔 프랑스
  의 엥시드가 추가되었다.
  5개국 8개사의 제철관련 회사들이 참여한 KISA는 한국의 종합제철을 건설하기 위한 자금
  으로서 차관단이 1억 달러, 한국측이 2,500만 달러를 마련하기로 하였다. 1967년1월16
  일 제2차 KISA 회의에서는 종합제철의 규모를 粗鋼 생산 年50만 톤으로 하고 100만 톤으
  로 확장하기로 했다. KISA는 차관을 마련해주는 대신에 각사가 종합제철 건설에 필요한 설
  비를 한국에 판매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나라마다, 회사마다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한국의
  실정이 무시되는 등 불안한 출발이었다.
  1967년5월에 來韓한 국제연합개발계획, 즉 UNDP 기술용역단은 KISA가 제출한 건설계획서
  의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 KISA가 算定(산정)한 건설비는 너무 높게 책
  정되었고, 年産 50만 톤은 너무 작은 규모라는 것이었다. 그해 10월에 한국 정부는 KISA
  와 기본협정을 맺는데, 규모는 粗鋼 연산 60만 톤으로 시작하여 100만 톤으로 확장했다가
  최종적으로는 300만 톤 규모로까지 키운다는 데 합의했다. 건설은 大韓重石이 맡기로 하였
  다.
  
  *朴泰俊의 등장
  
  그때 대한중석 사장은 혁명주체 세력 출신 朴泰俊이었다. 그는 5·16 직후 朴正熙 최고회의
  의장의 비서실장, 최고회의 상공담당 위원을 거치면서 1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에 관여하였
  다. 1965년 대한중석 사장으로 있으면서 朴泰俊은 제철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
  에서 제철소를 가장 효율적으로 건설한 것으로 定評이 나 있던 가와사키 제철의 니시야마
  사장을 초빙하여 한국의 종합제철 후보지를 함께 답사하면서 자문을 구했다. 보고를 받은
  朴正熙 대통령은 朴사장에게 종합제철에 대한 연구를 해두도록 지시했다. 정부가 대한중석
  을 포항종합제철 건설회사로 지명한 데는 朴正熙가 오래 전부터 朴泰俊을 적임자로 점 찍어
  두었기 때문이었다.
  포항종합제철 공업단지 기공식은 1967년10월3일 오후 포항시 교외 영일군 대송면에서
  있었다. 張基榮 부총리는 이 기공식에 가는 도중 朴正熙대통령이 자신을 해임하기로 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張 부총리는 기공식 致辭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開天開地한 지 4300년만에 우리나라 최대의 제철공장을 5개국 차관으로 건설하게 되었으
  며, 종합제철의 성패 여부가 2차 5개년 계획의 성패를 가름하는 만큼 강철 같은 책임감으
  로 이를 성취해주십시오』
  종합제철 건설의 책임은 후임 朴忠勳 부총리에게 넘어갔다. 1967년11월8일 정부는 경제
  기획원장관 자문기관으로서 종합제철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은 민간인 朴泰俊
  대한중석 사장, 위원들 가운데는 鄭文道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 陳鳳鉉 기획차관보도 있었
  다. 朴泰俊 사장을 사실상 장관급으로 대우하는 기구였다.
  朴대통령은 이때「종합제철 건설에 관한 일반지침」을 관계부처에 시달하였다. 이 지침에
  서 朴대통령은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야 할 擧族的 사업이라고 성격 규정하고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써 조속히 완공할 것을 지시하였다. 1968년3월20일에 열린 포항종합제
  철 창립총회에서 朴泰俊이 사장으로 선임되었다. 株主는 재무장관과 대한중석(주). 재무부
  가 3억원, 대한중석이 1억원을 자본금으로 拂入하였다. 창설 요원은 임원 8명과 직원 31
  명이었다. 직원들 중에는 나중에 浦鐵 회장이 된 黃慶老, 상공부 장관이 된 安秉華도 포함
  되어 있었다.
  朴대통령은 일반지침을 시달할 때 工期 엄수를 특히 강조했다. 늦은 근대화를 보충하는 방
  법은 시간을 압축적으로 이용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던 朴대통령은 큰 사업을 早期에 완료하
  는 데 全力을 다했다. 회사 창립 두 달 후 벌써 제철소 부지 232만7천 평에 대한 매수가
  끝나고 부지 조성 사업이 시작되었다. 철거 대상 주민들은 경북도청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
  였다. 경북도청의 劉命和 단지 조성과장은 피로와 충격으로 순직했다.
  포항제철의 성공 비결중 하나는 朴正熙 - 朴泰俊 두 사람이 장기적 안목에서 욕을 먹어가
  면서 사업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포항제철 전용 항만 건설에 있어서 건설부는 5만 톤 선박
  이 접안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든 뒤 단계적으로 늘려간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朴泰俊은 처음
  부터 10만 톤 접안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우겨 관철시켰다.
  朴泰俊 사장은 포철의 성공 여부는 고급 기술 인력의 양성과 확보에 있다고 판단했다. 이
  고급 인력이 열심히 일하도록 하기 위해선 우선 직원 주택단지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창립
  첫해에 1차로 20만 평의 부지를 확보했다. 공장도 짓기 전에 사택부터 짓는다는 비난이 쏟
  아지기도 했다.
  
  *하와이 構想
  
  포철 건설은 부지 조성 작업이 진행중인데도 차관이 확보되지 않아 과연 이 사업이 실행될
  것인지 불투명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對韓국제제철차관단, 즉 KISA 소속의 외국 회사들이
  마련한 차관은 4300만 달러에 불과하여 소요 외자 1억900만 달러를 맞출 일이 아득했다.
  다급해진 정부는 미국 수출입은행이 책정해놓은 1969년도 對韓차관의 일부를 우선적으로
  종합제철 사업 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해달라고 은행측에 신청서를 냈다. 1968년11월
  IBRD(세계은행) 조사단은 한국 경제 동향보고서를 통해서 한국은 종합제철을 건설하기에 앞
  서 기계공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선순위에 맞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는 한국측의 차관신
  청에 대한 사실상의 거부의사 표시였다. 1969년2월27일 KISA의 이컨 대표는 서독과 영국
  정부도 종합제철 사업에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서신을 한국측에 보내왔다. 1967년
  에 발생한 동백림 간첩단 수사 때 한국의 정보부는 서독에 있던 용의자들을 강제연행하여
  서독 정부를 화나게 했었다. 한때 朴정권에 우호적이던 서독 정부는 한국에 대한 차관 제공
  을 꺼리게 되었다.
  종합제철 건설 外資를 구할 길이 막막해져 가는 상황에서 1969년1월31일 朴泰俊 사장은
  차관 교섭단장인 鄭文道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와 함께 訪美 길에 올랐다. KISA의 주관 회
  사격인 미국의 코퍼스 본사는 피처버그에 있었다. 이곳을 찾은 朴사장은 포이 회장으로부터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포이 회장은 『세계은행이 종합제철 사업의 타당성을 부인하는
  마당에 차관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면서 『한국과 KISA가 맺은 기본협정에 따르면
  차관 조달은 양측의 공동책임으로 되어 있다』고 못박았다.
  낙담한 朴사장은 세계은행과 미국 수출입은행을 방문하려는 계획도 취소한 채 서둘러 귀국
  길에 올랐다. 이런 朴泰俊의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포이 회장은 하와이에 있는 부사장 이컨
  의 별장에 들러 며칠간 쉬고 가라고 권고했다. 그때 朴泰俊을 수행했던 포철 간부의 증언에
  의하면 朴사장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하와이에서 좌절감에 빠져 있던 朴泰俊사장에게 순간적으로 靈感이 떠올랐다고 한다. 일본
  이 한국에 주기로 한 對日청구권 자금을 당겨 쓰자는 發想이었다. 농림수산부문에 투자하기
  로 예정된 청구권 자금이 있었는데 이것을 종합제철 건설 자금으로 轉用할 수 없겠는가 하
  는 생각이 스쳤다는 것이다. 1964년에 朴泰俊은 한일 국교 정상화의 막후에서 밀사 역할을
  하면서 일본의 政界 요인들을 두루 만난 적이 있었다. 일본이 한국에 주기로 한 無償 자금
  3억 달러중 적으도 반은 남아 있을 것이다. 이 돈을 쓰는 방법을 강구해보자는 생각이 窮
  地(궁지)에 몰렸을 때 자신의 경험 속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朴泰俊은 즉시 旅裝(여장)을
  꾸려 일본으로 향했다고 浦鐵 社史는 기록하고 있다.
  <이런 착상이 정책적 代案으로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의 합의 과정 이전에 자금줄
  이 될 수도 있는 일본 정부의 동의가 있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철강업계의 협력의
  사 타진이 급선무라는 판단을 했다. 東京에 온 朴사장은 먼저 일본의 政·財界에 막강한 영
  향력을 가진 대유학자 야스오카(安岡正篤) 선생과 야기노부오(八木信雄) 日韓文化協會 이사
  장을 만나 자신의 訪日 취지를 설명하고 협력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다. 1964년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만나 朴사장의 사람됨을 익히 알고 있던 이들은 朴사장의
  협력요청을 쾌히 수락하고 1차적으로 일본 철강연맹 이사장인 이나야마(稻山嘉寬) 야하다
  제철 사장을 소개해주었다>
  朴泰俊이 이나야마 회장에게 종합제철 사업에 기술제공을 요청하자 이나야마 사장은 『그
  것은 고도의 정치성을 뛰고 있으므로 나가노(永野重雄) 후지제철 사장과 협의해보시오』라
  고 말했다고 한다. 朴사장은 나가노 사장으로부터도 기술협력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朴泰俊
  은 일본철강연맹이 한국의 종합제철 건설사업을 연구과제로 채택할 것을 약속받았다고 한다
  浦鐵 社史의 이런 기록은 야기노부오의 회고록과는 세부적인 점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큰 줄기에선 일치하고 있다. KISA의 차관 조성이 실패한 마당에서 일본의 기술과 돈을 끌
  어대기로 처음 발상하고 자신의 일본 人脈을 동원하여 행동에 옮긴 최초의 인물이 朴泰俊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