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재/근대화 혁명가 박정희의 생애 -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민족의 대서사시 포항종합제철 건설 비화(계속)
  
  *최후의 시도도 실패
  
  포항종합제철 사장 朴泰俊은 1969년 2월 중순 청와대로 들어가 金鶴烈 경제수석에게 일본
  방문 경위를 설명했다. 金 수석은 鄭文道 차관보가 세계은행과 미국 수출입은행을 돌고 있
  으니 기다려 보자는 태도였다고 한다(浦鐵社史). 朴泰俊 사장은 金 수석의 만류에도 불구하
  고 朴대통령을 면담했다. 그는 보고하기를 KISA를 통한 차관계획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代案으로서 對日청구권 자금을 轉用하는 길이 있다, 정부가 1억 달러만 지원하면 나머지
  공사비는 책임지고 조달하겠다고 했다.
  朴대통령은 『정부도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최종 결과가 나온 다음에 결심을 하겠다.
  그때까지는 비밀을 엄수하라』고 당부했다. 2월17일 빈손으로 귀국한 鄭文道 차관보는 朴
  사장과 함께 朴대통령을 찾아가 보고했다. 朴대통령은 마지막 시도를 했다. 鄭文道로 하여
  금 차관교섭단을 이끌고 KISA(對韓國際製鐵借款團) 회원국을 방문하여 설득하고 朴忠勳 부
  총리에게는 4월17일 파리에서 열리는 IECOK(對韓원조국제경제협의체) 제3차 총회에 참석
  하여 차관 조달을 해보라고 지시했다.
  朴忠勳 부총리는 金鶴烈 경제수석, 경제기획원의 黃秉泰 협력국장, 梁潤世 투자진흥관, 재
  무부의 洪承九 외환국장, 상공부의 吳源哲 기획실장, 아시아개발은행(ADB)의 千炳圭 이사를
  데리고 파리로 갔다. 한국에 차관을 제공한 국가들의 협의체인 IECOK의 의장직은 세계은행
  에서 맡고 있었다. 세계은행은 이미 종합제철의 경제성을 부정하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었
  다. 朴忠勳부총리가 아무리 朴대통령의 간곡한 부탁을 전해도 회원국들은 차관 제공을 거절
  했다. 특히 미국과 서독측이 완강했다. 朴부총리는 허사로 끝난 총회 뒤에도 본과 워싱턴을
  찾아갔으나 성과가 없었다. 4월29일 미국의 수출입은행 컨스 총재는 朴부총리에게 차관을
  줄 수 없다는 최종방침을 통보했다. 이로써 KISA를 통한 제철소 건설 계획은 수포로 돌아
  갔다.
  화학기술자 출신의 테크노크라트 吳源哲은 종합제철 추진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경제기획원, KISA, 세계은행이 주도하는 건설계획에서 종합제철은 피동적으로만 움직였다.
  경제기획원에서는 외국 기관으로 하여금 종합제철 건설 계획에 대한 용역 연구를 맡기고 이
  코노크라트(경제전문가)들이 건설안을 작성했다. 석유화학 건설 때는 테크노크라트가 치밀
  한 엔지니어링 작업을 했는데 경제기획원의 경제관료들은 이런 기술적 검토 과정을 배제했
  다. 경제적 타당성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으며 국제경쟁력을 갖고자 하는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이것이 근본 문제였다. 경제기획원의 경제관료들은 소요자금, 특히 차관을 어떻게
  마련하는가에만 열중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경제적으로 타당성도 없는 KISA안을 갖고
  차관을 얻으려고 4년간을 노력하다 결국은 실패했다. 만일 KISA안대로 추진했더라면 포항
  제철은 거대한 부실기업체가 되었을 것이다. 세계은행이 KISA안에 대해 반대해준 것에 오
  히려 감사해야 할 것이다>
  
  
  *吳源哲의 시각 - 원안대로 되었다면 포항제철은 부실화되었을 것
  
  朴忠勳 부총리 일행은 서독과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도쿄에 도착했다. 하네다 공
  항에는 朴泰俊 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朴 사장에게 吳源哲 상공부 기획실장이 절망적인
  상황을 설명하니 朴泰俊 사장은 우울할 표정이 되더라고 한다. 사절단은 호텔에서 그간의
  교섭을 정리하는 회의를 했다. 朴正熙 대통령의 기대와 실망을 잘 아는 사절단의 분위기는
  우울했다. 吳源哲 실장의 기록에 따르면 이 회의에서 梁潤世 투자진흥관이 對日청구권 자금
  을 요청하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吳源哲 실장은 회의장 밖으로 나와 駐日 대사관 직원에게 부탁해서 일본 通産省 담당 국장
  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吳源哲이 그날 만난 사람은 통산성 수출진흥국장 고토(後藤正記)
  였다. 아이디어가 많은 행동파인 吳源哲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우리는 제철소를 꼭 짓고싶소. 일본의 제철소 건설 능력은 이미 세계 일류라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나 일본은 아직도 해외에서 종합제철을 건설한 실적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한국
  에 건설한다면 일본의 능력을 세계 각국에서 높게 평가할 것이며, 受注가 늘어날 것 아니
  오』
  『못할 것도 없소. 그런데 年産 60만 톤이란 장난감 제철소요』
  『물론 60만 톤을 고집하지 않소. 100만 - 150만 톤 규모로 하고 정부가 모든 지원조치를
  하겠소. 우선 항만, 철도, 전기가설 등 모두 정부에서 無償으로 해주겠소. 국내에서 필요한
  돈은 전부 出資金으로 해서 이자는 없앨 작정이오. 對日청구권 자금을 쓸 수만 있다면 이것
  도 출자조치해서 이자나 상환문제를 없애겠소』
  吳源哲은 『일본은 물건을 파는 것이 되니 일본 철강업계에 활기를 넣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소』라고 덧붙였다. 고도 국장은 한참 생각하더니 부하들을 불러와 吳 실장에게 소개했
  다. 그는 캐비넷에서 위스키를 꺼내더니 『우리 술이나 한 잔 합시다』라고 했다. 그는 부
  하직원들에게 『우리 국의 소관은 수출진흥이다. 종합제철 설비를 수출한다는 것은 우리의
  임무다.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吳源哲에게 술잔을 권하면서
  『나는 윗사람에게 보고할테니 당신도 한국 정부에 보고하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吳源
  哲은 호텔로 돌아와 고도 국장과의 대화 내용을 朴忠勳 부총리에게 보고했다. 吳 실장은 朴
  泰俊 사장에게도 이야기해주었다. 吳源哲의 기억에 따르면 朴 사장은 시종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했으나 걱정 때문인 듯 표정은 밝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 시점에서 朴泰俊 사장은 이미 對日 청구권 자금을 轉用하려는 계획을 실천에 옮기
  고 있었고 朴대통령에게도 보고한 상태였고 대통령의 엄명에 의하여 입을 다물고 있었다.
  
  *대전환 - 자주적으로 추진하라!
  
  朴正熙 대통령으로서도 이제는 對日 청구권 자금을 받아쓰는 것 이외엔 다른 代案이 없어
  졌다. 1969년5월22일 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朴忠勳 부총리, 金正濂 상공부 장관, 李翰
  林 건설부 장관, 朴泰俊 포항제철 사장으로부터 건설 진행 상황을 보고받고 방향 전환을 지
  시했다.
  『종합제철소 건설 계획을 외국 기관에게 일임하고 결과만을 기다리는 자주성 없는 태도를
  止揚(지양)하고 우리 자체의 案(안)을 만들고 입증 자료를 제시하여 외국 투자 기관을 설득
  하라』
  朴대통령은 또 『이미 추진중인 항만, 도로, 부지 조성 공사를 계속해서 강력히 추진할 것,
  종합제철이 국제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정부 투자를 정부 보조로 전환시킬 것』을 지시했다.
  비로소 포항종합제철 계획은 한국의 자주적 힘과 視覺으로 추진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포
  항종합제철의 성공을 예약한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KISA의 계획대로 포항종합제철이
  건설되었더라면 부실기업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KISA가 한국의 사정과 시각을 도
  외시하고 만든 年産 60만 톤 규모의 제철소로는 채산성을 얻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
  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철강전문가 金在官 박사는 KISA의 건설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그
  안은 공장의 추가 확장이 곤란하고 설비는 노후된 것이며 초기 투자는 적게 들지 모르지만
  경제규모로의 확장이 불가능한 공장을 지으려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KISA측에
  계획 수정을 요구했으나 KISA 사람들은 경제적 운용성보다는 포철 건설에 설비를 수출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朴正熙 대통령은 포철 건설의 획기적인 방향 전환을 하는 마당에 朴忠勳 부총리도 교체했
  다. 朴 대통령은 6월2일 金鶴烈 경제수석을 후임 부총리로 임명했다. 자존심과 추진력이
  강하고 개성이 뚜렷한 보스형의 金 부총리는 자신의 방 흑판에다가 「製鐵, 石油化學」이라
  써놓고 지우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朴正熙 대통령이 자주적인 건설案을 만들라고 지시한
  데 따라 6월7일 경제기획원내에 종합제철 사업계획서를 새로 만들기 위한 「종합제철사업
  계획연구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위원장은 기획원 운영차관보 鄭文道, 간사는 기획원 공공
  차관 과장 盧仁煥, 13명의 위원들 가운에는 金在官도 끼여 있었다.
  이 위원회가 한 달 반만인 7월22일에 완성한 255페이지의 보고서(종합제철공장건설을 중
  심으로 하는 한국철강공업개발에 관한 연구보고서)는 지금 읽어보아도 열정과 비전이 담긴
  치밀한 문서임을 알 수 있다. 이 보고서 序文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재 세계의 年 조강생산량은 약5억 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에 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이 새삼스럽게도 놀라는 일은 이 粗鋼 생산이 미국, 소련, 일본 등 3개국만으로서도 세계
  생산량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철강생산을 제대로 제것으로 할 수 있
  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에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수준에서 결정적인 격차
  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략). 「철은 문명의 척도」라는 말은 이제 조국 근대화의 대과업
  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修辭學上의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엄숙한 현실과제로서 크게
  대두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 못할 것입니다(하략)>
  이 보고서 본문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날과 같은 개방된 경제체제하에서는 후진국은 선진국이 장기에 걸쳐 개발하여온 기술
  을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으며 공업화에 소요되는 자본도 선진국은 국내에서 조달하여야 되
  었던 것과는 달리 후진국은 선진국으로부터 도입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공업화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며 동시에 경제성장의 가능성도 크다. 다른 한편으로는 후진국일수
  록 공업화를 통한 경제성장의 국내적 여건에는 많은 문제점을 수반하게 된다>
  이 보고서 작성자들은 後發 국가의 장점부터 먼저 이야기하고 문제점을 나중에 지적한다.
  후발국가의 문제점을 먼저 지적하는 것이 정상일텐데 이들은 일단 사안을 긍정한 바탕에서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종합제철을 건설하던 시대의 정신과 그 주인공들의 적극적 도전
  정신을 읽게 해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