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남도 의심하고 자신에 대해서도 懷疑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글을 懷疑的으로 써서는 안 된다. 懷疑는 기자의 몫이지 독자의 몫이 아니다. 懷疑는 확신으로 가는 길목이어야…
  月刊朝鮮은 이번 호로 창간 22주년을 맞았습니다. 月刊朝鮮은 1980년 4월호로 창간된 이후 독자 여러분들의 愛護 속에서 성장하여 지금은 한국 언론의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年輪이 쌓이는 만큼 책임도 무거워집니다. 月刊朝鮮은 항상 겸허한 자세로써 독자 여러분들을 모시고 재미있고 유익한 잡지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편집장은 기자 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비자, 즉 독자 편입니다. 기자들이 쓴 기사를
  맨 처음 읽게 되는 저는 최초의 독자입니다. 저는 기사를 校閱할 때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가, 정확한가, 쓸데없는 표현은 없는가, 문법에 맞는가를 기준으로 합니다. 저는 「정
  확하고 짧으며 쉬운 것」이 좋은 문장의 3대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月刊朝鮮이 한자와 한글을 混用하는 것도 한글만으로써는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다
  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月刊朝鮮 편집장은 소비자 편에 서야 하기 때문에 기준 품질에 미
  달하는 글을 고치고 때로는 빼어버리는 惡役을 맡습니다. 글을 쓴 사람들이야 섭섭하겠지만
  독자들을 짜증나게 하지 않으려면, 또 月刊朝鮮이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글 쓴 사람이 다소
  기분 나빠지는 것이 낫습니다.
  저는 이런 계산법을 갖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읽어서 알 필요가 없거나 읽어선 안 되는 글
  이 기자와 편집장의 교열 잘못으로 한 페이지 들어갔다고 합시다. 이 한 페이지를 읽는 데
  5분이 걸리고 독자들이 30만 명이라면 150만 분의 시간 낭비가 생깁니다. 150만 분은 2만
  5000시간이고 이는 약 1900일이며 약 5년입니다. 글을 잘못 쓰면 다른 사람의 시간 5년치를
  빼앗게 됩니다. 살인이란 생명을 빼앗는 것인데, 생명이란 기본적으로 시간입니다. 엉터리
  글을 쓰고 그것을 내보내면 5년치, 10년치의 살인행위가 된다고 할까요.
  물론 인간이니까, 마감시간에 쫓기니까 완벽한 글과 교정은 어려운 과제입니다. 책이 나오기
  전에 誤字를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책이 인쇄된 이후 『어!』 하는 소리를 지르는 일이 더
  러 있습니다. 교정에는 王道가 없다고 합니다. 여러 번 사람들을 바꾸어 가면서 반복해서 읽
  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잡지를 만들 때 가장 큰 사고는 페이지가 틀릴 땝니다. 135페이지로 붙여야 할 곳에 137페
  이지라고 붙여 놓으면 글이 뒤죽박죽이 되어 그 기사를 버리게 됩니다. 저는 기사를 인쇄소
  로 넘기기 전에 기계적인 행동을 합니다. 먼저 페이지 순서가 정확한지를 확인한 다음, 한
  페이지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때의 문장 연결을 점검합니다. 이렇게 해도 인쇄 공장에서
  인쇄용 본문 필름을 잘못된 자리에 앉혀 큰 인쇄 사고가 난 적도 있었습니다.
  
  편집장이 소비자 입장에 선다는 것은 易地思之의 자세입니다. 즉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
  한다는 뜻입니다. 저의 입장은 月刊朝鮮, 즉 글을 쓰는 사람(생산자)의 위치이지만 읽는 사
  람(소비자)의 입장에 서 보자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를 객관화라고도 합니다. 자신의 입장에
  서 이탈하여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각입니다. 글자 그대로 自省이지요.
  自省하려면 먼저 자신을 객관화하여 냉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칠과 히틀러를 비교한 책을 읽다가 「영국인이 독일인들과 다른 점은 영국인은 자기 懷疑
  를 할 줄 안다는 점이다」는 구절을 보았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나치즘의 狂信徒가 된 것을
  빗댄 것입니다. 狂信은 主觀의 극치입니다. 자신을 객관화시키기는커녕 자신의 관념과 망상
  에서 헤어나지를 못해 바깥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비교 능력이 마비된 상태에서 모든
  것을 절대화하면 獨善과 狂信이 생기는 것입니다.
  主體인 자신을 객체로 세워 놓고 냉정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이성적인 작업이요, 과학적인
  분석입니다. 이는 또 觀念에서 탈출하여 현실의 세계로 나오는 행동입니다. 狂信과 獨善은
  대체로 단순화된 관념에서 생깁니다.
  「日帝 시대에 총독부 관리로 근무한 한국인은 反민족 친일파이다. 따라서 이들을 처단했어
  야 했다. 이들을 重用한 李承晩 정부도 친일파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친일파를 숙청하지
  못해 민족사적 정통성이 없는 정부이다. 金日成은 친일파를 숙청했기 때문에 북한에 정통성
  이 있다」
  이런 무지막지한 관념의 포로가 된 사람들이 그 관념에서 탈출하여 현실의 세계로 내려오면
  그 관념을 냉정하게 분석 비판할 수 있습니다.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한반도란 현실
  세계에서 친일 관료 출신들은 광복 전에는 親日을 했지만 대한민국 건국 후에는 친일 시대
  에 배웠던 근대 행정 기술을 건국-호국-근대화 과정에 조국을 위해 바치는 애국을 했습니
  다. 짧았던 親日과 긴 愛國을 비교하여 플러스가 많으면 그의 생애는 친일이 아닌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親日을 했다가 광복된 이후에도 판단을 잘못하여 그 속성이 反인륜, 反민족, 反
  평화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인질이 되고 그 연장선상에서 金日成-金正日에게 봉사함으로
  써 동족을 괴롭힌 자, 이런 사람들이 구제불능의 민족반역 親日 세력인 것입니다. 국가가 존
  재하지 않았던 시절의 親日은 조국이 세워진 후의 애국에 의하여 충분히 속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朴正熙의 경우). 같은 논리로 국가가 없었던 시절의 抗日은 국가가 성립된 이후의
  反민족적 행위에 의하여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金日成의 抗日운동 경력은 광복 이후 그가
  저지른 反民族的 행위 - 6·25 남침과 북한 주민 살육 등 -에 의하여 相殺(상쇄)된 정도가
  아니고 그의 생애 전체가 마이너스로 결산되어 버렸습니다.
  독립운동과 건국의 아버지 李承晩을 親日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가 절대
  적 권력을 행사한 정부는 親日일 수가 없습니다. 그가 親日 경찰을 중용한 이유는 과거 親
  日보다 더 反민족적인, 현존하는 위험으로서의 親北을 척결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습니
  다. 親日 경찰 출신들이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족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李承晩 정부의 성격을 親日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李承晩 대통령은 親日
  관료들을 신생 대한민국의 건국과 운영에 수단으로 썼지 주인으로 쓰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月刊朝鮮은 金泳三 정부가 민족정기를 되살린다면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고 있던 옛 중앙
  청(그 전에는 조선총독부)을, 새 박물관도 짓기 전에 철거하려는 것에 대하여 끈질기게 반대
  한 유일한 언론매체였습니다. 반대의 논리는 간단했습니다.
  <조선총독부를 1945년 8월에 부숴버렸다면 親日 건물의 청산이란 명분이 있을 수 있었다.
  그 복수와 斷罪의 시기를 놓치고 50년이 흐른 1995년에 뒤늦게 민족정기를 세운다면서 멀쩡
  한 건물(아주 아름다운 건물)을 철거한다는 것은 민족사의 파괴이다. 왜냐 하면 지난 50년
  동안 조선총독부 건물은 중앙청과 박물관으로 그 기능이 바뀌면서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
  한 건물로서 역사를 만들고 역사를 기억해 왔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란 건물은 강간에 의
  하여 태어난 아기였다. 그 아기는 좋은 부모를 만나 잘 자라 어른이 되었다. 그 어른의 성공
  을 질투한 무지막지한 선동가가 위선자들과 합세하여 『저 놈은 사생아였다』고 소리치면서
  前 사생아, 現 양민을 때려죽이는 것과 같은 억지가 아닌가>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옛 중앙청 철거는 민족정기 회복을 외치는 수많은 소위 지식인들의
  응원하에서 단행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잘 지은 건물에게, 공소시효가 끝났는데도 유죄
  를 선고하여 사형집행해 버린 代價로 대한민국의 민족정기는 그 뒤 몇 도나 높아졌습니까.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쳐오자 金泳三 정부는 일본으로 밀사를 보내 수백억 달러를 임시변
  통해 달라고 애걸했으나 거절당하고 할 수 없이 IMF 관리 체제로 들어가 버린 것 아닙니
  까. 민족정기는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實力으로 구현되는 것이지 건물에게 유죄를 선고하
  는 식의 망상과 위선으로써는 안 된다는 교훈만 남긴 것 아닙니까.
  
  親日한 사람은 지금 거의 다 죽었습니다. 그 자연인들을 지금 단죄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
  나 親北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살아 있고 맹렬히 활동 중입니다. 따라서 지금 이 땅에서
  민족정기를 살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은 反민족 親北 세력을 시급히 처단하는 것입니다. 親北
  세력은 親日보다 더 나쁘고 어리석은 존재들입니다. 親北(여기서 北은 북한 정권을 지칭)은
  反民族이란 점에선 親日과 같습니다.
  하지만 親日의 대부분은 日帝의 물리적 강압에 의한 굴종이었습니다. 거의가 강제된 親日이
  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親北, 즉 親김정일을 하라고 강제하는 세력은 없습
  니다. 대부분의 親北은 자진 親北입니다. 親日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정보 부족으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결국은 승리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들은 또 대한민국의 독립은 멀었
  다고 誤判했습니다. 희망이 없으니 용기도 생기지 않았고 親日로 넘어간 것입니다.
  지금 金正日이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의 굶어죽음,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테러에 책임이 있는
  악마적 존재라는 사실이 비밀입니까. 金正日이 수십만의 무고한 주민을 정치범으로 몰아 유
  태인 수용소 같은 강제 수용소에 평생 가두어 두고 있다는 사실이 비밀입니까. 金正日 정권
  이 결국은 망하고 말 것이란 것도 비밀입니까. 그런데 왜 그 金正日에게 추종, 굴종합니까.
  
  不可思議한 親北의 존재와 생리엔 말 못 할 비밀이 있을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정신적 질병입니다. 親北행위는 사회학적, 역사적, 정치적, 심리적으로 고려할
  때 정신병적 變態라고 보아야 합니다. 惡의 化身인 金正日을 惡의 軸이라고 부르면서 우리
  의 걱정거리인 핵·미사일 개발을 중지하라고 요구하는 우리의 친구 부시에게 고맙다는 말
  은 하지 않고 그를 적대시하고 金正日을 비호하는 행위는 이념의 차이에서 오는 것도, 견해
  의 차이에서 오는 異見도 아닙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행위, 즉 정신
  적 질병인 것입니다.
  이런 질병의 뿌리(病根)는 우리의 몸, 즉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月刊朝
  鮮 4월호에 실린 「6·25 전쟁 중 좌익에게 학살당한 피살자 명부」 속에 하나의 답이 있습
  니다. 1952년에 남한에서 조사된 좌익에 의한 민간인 학살자수는 약 5만9000명, 최종 집계는
  12만여 명이었다고 합니다. 학살을 자행한 좌익들 중 상당수는 국군이 收復한 후 보복을 당
  했습니다. 6·25가 터지고 개성, 서울에 인민군이 進入하자 좌익전향자들이 본색을 드러내
  軍警 가족들을 찾아내서 학살했고, 이 소식을 들은 국군과 경찰은 후퇴하면서 후방의 좌익
  전향자 단체 보도연맹원들을 상당수 처형했습니다.
  저의 아주 가까운 친척 남자분도 보도연맹원이었는데 고향(경북 청송)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 남자분의 아내였던 사람은 지금 70노인인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이는 억울했단다. 진짜 빨갱이는 미리 다 달아났는데 그이는 경찰이 오라고 하니 순진
  하게 따라갔다가 죽었지. 남편 시체를 묻으면서 내가 남자라면 당장 총을 잡고 빨치산이 되
  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뒤 북한 청년과 재혼한 것도 (대한민국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이었
  단다』
  6·25 전쟁 중 왼쪽과 오른쪽으로 쓸리면서 죽어간 민간인은 남한에서만 20만~30만 명이 되
  지 않을까 추산합니다. 그 후손들이 지금 우리 곁에서 살고 있습니다. 맞아 죽은 사람의 후
  손과 때려죽인 사람의 후손들이 지금 대한민국이란 한 지붕 밑에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북
  한에선 그런 공존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른편에 섰던 사람들의 抹殺(말살)만 존재합니
  다.
  國情院 對共 수사관들은 이런 경험담을 이야기합니다. 국내의 골수 親김정일 세력을 수사해
  보면 70% 이상이 집안에 좌익 前歷者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前歷者가 처형되고 그 前歷으
  로 해서 직계 가족들이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는 등 恨이 축적된 바탕에서 親北 행태가 생겨
  난다는 분석이었습니다. 병적인 좌익 풍조가 사실은 역사적 배경과 가족적 血脈과 맞닿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上記 피학살자 名簿에 의하면 전남 영광군의 경우 6·25 전쟁 중 약 2만 명이 좌익한테 학
  살되었습니다. 명부는 없지만 우익과 국군한테 처형된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郡民의
  20~30%가 이념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미쳐버린 시대를 우리는 살았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狂風이 휩쓸고 간 그 상흔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았고 그 後遺症이 親김정일이란 변태적 행
  동의 한 요인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6·25는 아직 우리 곁에, 우리 속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저는 1970년대 부산에서 사회부 기자로 일했는데 어느 날 중심지인 광복동 거리를 택시 타
  고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車道와 步道 사이의 경계 표시를 새로 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쇠막대를 일렬로 박고 쇠사슬로 이어 놓았습니다. 살벌하게 보였습니다. 저는 화가 났습니
  다. 돌아가서 꼬집는 기사를 써야겠다고 벼르던 중 점심을 먹고 광복동의 步道를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車道 택시 속에서 바라본 쇠막대와 步道에서 걸어가면서 본 쇠막대는 달랐습니
  다. 쇠막대 때문에 지나가는 자동차에 신경쓰지 않고 아주 편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쇠막
  대는 흉물이 아니라 나를 지켜 주는 든든한 울타리였습니다. 서 있는 곳이 어딘지에 따라
  평가가 정반대로 달라지는 것을 새삼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기자는 직업적으로 懷疑論者입니다. 남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믿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글과 말은 틀릴 수 있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로서 불리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인
  간은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을 때만 정직할 수 있다, 따라서 확인되지 않는 사실은 사실이
  아니다. 이렇게 따라가다가 보면 자신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쇠막대기를 도로 한복판에 박
  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란 저의 판단은 시각의 이동으로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기자
  들은, 지금 나의 확신은 틀린 것이 아닌가, 내가 지금 사실이라 믿고 있는 것은 혹시 사실이
  아닌 것이 아닐까, 오늘이 정말 3월18일인가, 이렇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金大中 정부의 對北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쓸 때도 저는 습관적으로 「나의 판단이 틀릴 수
  도 있다」는 懷疑를 해 봅니다. 그래서 對北 정책 담당자들을 찾아내 만나고 햇볕정책이 북
  한체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물어보고 그 설명과 저의 논리를 대결시켜 보기도 합
  니다. 간혹 나의 판단이 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金大中 대통령이 퇴임
  한 이후에는 지금은 보이지 않는 햇볕정책의 순기능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기자가 懷疑論者라고 해서 글을 懷疑的으로 써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金正日이 아웅산
  테러를 지령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햇볕정책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잘 판단
  이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기사를 쓸 수는 없습니다. 懷疑와 확인과 점검을 거친 다음의
  글은 일단 확실하게 써야 합니다. 懷疑는 확신으로 올라가는 디딤돌일 때만 의미가 있는 것
  이지 懷疑를 위한 懷疑는 패배주의자의 자위 행위에 불과합니다. 懷疑는 기자의 몫이지 독
  자의 몫이 아닙니다. 독자들에게 「나는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이만큼 많이 고민했고 확인했
  다」고 고백할 필요도 자랑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정치인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金正日이 악의 축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악인 것 같은데 善
  인 것 같은 점도 있고 해서…」 하는 식의 확신 없는 회의적 말은 잡담으로는 허용되지만
  정치인의 말은 아닙니다. 「金正日의 서울 答訪은 환영하나 과거사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과를 요구하면 答訪하지 않을 것임은 삼척동자도 압니다.
  정치인은 이런 큰 문제에 대해서 오해 없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서울 답방을 「환영한
  다」, 아니면 「반대한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의 정치적 言辭를 분석해 보면 정치인의 말 같지 않고 판사의 판결문
  같다는 인상을 받곤 합니다. 정치적 事案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여러 가지 전제 조건을 붙인다든지 兩非論, 兩是論을 까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가 보니까 주
  장은 없고 분석만 보입니다. 그런 말들을 들어보면 李會昌 총재가 고민을 많이 하고 있구나
  하는 점은 알겠는데 그 고민의 결실이 어떤 것인지 명료하지가 않게 됩니다. 지도자는 추종
  자와 함께 자신의 고민을 나눠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신의 판단과 비전을 추
  종자들에게 확실하게 제시하고 설득해야 하는 것이지 고민 덩어리를 던져 놓고 머리를 같이
  싸매자고 해선 일이 우습게 될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의 말에서 힘이 생기고 李會昌 총재의 말에서는 혼돈과 고민이 생긴다면 그 이
  유는 懷疑의 사유 과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懷疑를 거듭하는 것은 확신을 낳기
  위한 産苦이어야지 욕을 먹지 않으려고 말장난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계산이어선 곤란합니다.
  정치인은 정직한 懷疑와 自省 속에서 진정한 확신과 용기가 생길 때만 쉬운 말로써 명료하
  게 발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정치는 말로써 하는 게임이고 말이 투명해져야 정치도 그
  렇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