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산골 소녀의 추억
  
  왜관 철교 밑에서 헤어진 어미 소와 송아지의 절규
  다리가 끊어지자 남자들은 큰 소를 끌고 물로 뛰어들었다. 큰 소는 헤엄을 쳤지만 새끼 송아지들은 강을 건너지 못했다. 어미 잃은 송아지들이 「음매」 「음매」 울고 어미 소도 그 모양을 보고 고함을 질렀다
  
  신 현 희 경북 구미시 원평2동
  
  초등학교 2년 때 해방
  
  낙동강 700리, 왜관 인도철교가 6·25전쟁의 효자다리였다.
  내 나이 육십하고도 하나. 바로 환갑이다. 환갑을 맞아,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니, 육십일년째 내 생애를 돌아보며 이 해의 마지막 날 12시를 즈음하여 이 글을 남긴다.
  
  어느 컴컴한 당구장 바닥에 내 노쇠한 육신을 기대고 있자니 불현듯 아버님 말씀이 생각난다.
  사람은 누구나 설마에 속고 희망에 속으면서 행복과 불행 두 가지를 겪으면서 살아간다. 어릴 적 아버님 말씀은 『사람은 마음을 놓지 말고, 항상 전쟁 속에서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고향은 경북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마치 고동알처럼 생긴 작은 시골 동네 송곡동에서 아버님 신식균, 어머님 조외래 두 분 사이에 태어난 칠 남매 중 다섯 번째이자 3남 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나는 여러 형제 중 양친 부모님을 모시고 농촌에서 살았다.
  
  나이를 먹어도 어린 시절 겪은 일들은 머리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내 위로 언니 둘 오빠가 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형제에 치여서 클 수밖에 없었다. 해방 전 일제 시대는 부모님 두 분이 고통받고 사시는 것을 보았다. 3일이 멀다 않고 집을 뒤져 놋쇠 그릇, 주걱, 쌀 등을 있는 대로 거둬갔다. 나는 어린 나이라 낯선 사람이 또 오나 하고 망을 보느라 우물물을 길어 가면서 보고, 오면서 보고 하며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자라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해방이 되고 4학년 때부터 소녀가장 아닌 소녀가장처럼 어머님 곁을 떠나 학교 옆에 방을 얻어 작은 오빠와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학원과 과외수업이 있는 것이 아니고 시골학교다 보니 중학교에 갈 학생은 보충수업을 시켰다. 그래서 오빠 때문에 살림을 따로 하게 되었다.
  
  30여 명의 「경찰관 선발대」
  
  오빠는 6학년을 졸업하고 대구 중학교로 공부하러 가고 나는 혼자서 5학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위로 언니 둘은 16세의 어린 나이로 시집을 갔고 오빠 둘은 공부 때문에 대구로 떠나고, 동생 둘과 부모님을 모시고 다섯 식구가 살고 있었다.
  나는 항시 장녀가 아닌데도 장녀 노릇을 해야 했고 모든 집안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으며 동생 둘은 어리다고 제쳐두고 무슨 일이든지 부모님은 나와 상의를 하셨다. 자랄 때부터 일에 치여 살다시피 하였는데 살아오면서 생각하니 그때 그 시절의 힘겹기만 했던 생활이 나를 성숙하게 한 밑거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름답게 자라야 할 소녀 시절을, 초등학교 6년을 마치지도 못하고 6·25 전쟁을 맞게 될 줄이야….
  열세 살 소녀 시절 그해 여름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에 내 가슴속에만 묻어두기엔 너무나 아쉬움이 남아 글로 남겨본다.
  
  우리 동네는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기점으로 하여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세 좋고 공기 맑은 조용한 산골. 낮에는 새 소리 매미 우는 소리, 밤이면 개구리 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소박하고 인심이 넘치는 동네. 언제나 이른 밤에 잠을 자고 어머님과 나는 먼동이 트면 일어난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물동이로 물을 길어 장독에다 가득 채우는 것이 나의 아침 일과였다. 물을 다 쓰기도 전에 난 어느 샌가 물을 길어다 가득 부어놓곤 하였는데 한 번도 물을 떨어뜨리지 않아 동네에선 부지런하다고 입을 모아 칭찬을 하셨다. 그럴수록 난 오로지 물 긷는 일이 내 천직이기나 한 듯 목숨을 다해 열심히 열심히 길어다 부었다. 그리고 어머닌 마당과 집안 청소를 하시면서 아침 밥을 준비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난 뒤 어머님은 베를 짜셨으며 난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사복을 입고 총을 멘 사람들이 우리 집에 들어섰다. 아버님은 밭을 매러 가시고 안 계신 터라 어머님이 그분들을 보고 아무 말씀도 못하신 채 쳐다만 보고 계시니 그분들이 『주인이 누구요?』하고 말을 건넸다.
  
  그러고 나서 자기네를 소개하면서 『우리는 경찰관 선발대』라고 하면서 밥을 좀 해달라고 했다. 어머님은 「순사」라고 하기만 하면 겁을 먹던 시대에 사셨던 분이라 거역할 수 없어서 밥을 부리나케 한 솥 가득 하셔서 30명 가량 되는 사람들에게 상을 다 차려 주셨다.
  
  식사를 끝내자 그 사람들은 우리 마당에서 둘러앉아 무슨 그림인지 모를 그림을 그려가며 이야기를 하고 총을 손질하기도 하더니 무엇엔가 쫓기는 태도로 불안해 보였다. 그러다 우리 집과 옆집에 나누어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더니 얼굴 표정이 질린 듯 창백하여 떠날 준비를 하기에 그때서야 어머님은 『어디를 가시나요』하고 묻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전쟁이 나서 괴뢰군이 약목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말을 남긴 채 부랴부랴 떠나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깜짝 놀라신 아버님은 『그럼 우리는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하고 소리쳐 물으니 『우리도 어디로 갈지 모르는데 내가 어찌 아오?』하면서 가 버렸다. 그 소리를 들은 우리 식구들은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로 눈을 둥그렇게 뜬 채 쳐다만 보고 멍청하게 서 있기만 했다.
  
  피난 행렬
  
  그 시절에는 시계도 없이 살던 때라 낮에는 햇빛으로 시간을 알고 밤이면 별이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전화도 라디오도 없으니 몸으로 걷고 뛰어다니면서 소식을 전하고 했다. 경찰관들이 떠나고 우리 동네는 어른들이 매일 만나고 술렁이면서 각자 살림을 정리하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 험한 전쟁을 피해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그저 말로만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제 정말로 다 죽을지 살지도 모르겠다고 하시는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동생들과 나는 그저 눈치만 보고 부모님의 바쁜 일을 도와드리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 집안의 나이 열여섯 살쯤 되어 동작이 민첩했던 오빠 되는 사람을 통해 『약목 면소재지에 심부름을 갔더니 인민군이 약목을 점령하고 큰 탱크를 몰고 육로로 그냥 내려오더라』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 건너편 산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등에다 짐보따리를 지고선 줄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피난 행렬이었다. 동네 어른들은 우리 집에 다 모여서 『무슨 조처가 있어야지』하시며 의논을 하시느라 급히 뛰어다니셨다.
  
  우리 동네는 이미 피난 가기는 늦었다. 우리 집 옆에 금을 캐던 광산굴이 있었는데 조그마한 산 전체가 마치 벌집같이 굴이 뚫려 있었다. 그 광산 작업을 할 때 우리 어머님께서 광부들 식사 담당을 하시어 그 굴은 어머님 아버님의 얼이 담긴 굴이기도 하다.
  
  그 굴에서 작업하던 광부 중 한 사람이 밤중에 몸이 많이 아팠는데 그때 시대는 약도 없었다. 급한 마음에 그 굴 막창에 고인 물이 간장 빛깔을 띠고 있어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환자에게 먹였더니만 기적같이 나은 일이 있었다. 그 후부터 일대에 소문이 났다. 시골 사람들은 약 구하기가 힘이 드니 소문이 소문을 내어 유명한 약수터로 알려져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 물을 복용하고 있다.
  
  광산 굴이 여러 개 있지만 가장 긴 굴이 약수가 나는 굴이라 동네 어른들이 의논을 해서 집집마다 평상 하나씩을 모아다가 굴 속에 진열을 하였다. 그리하여 한 가정에 평상 하나씩을 놓고 굴 속의 피난살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린아이와 젊은 사람들은 굴 속에 두고 어른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하루종일 구덩이를 파시고는 가지고 있던 살림살이를 묻었다. 살림살이라야 고작 무명베 삼베를 짜던 도구와 재료들, 상이며 그릇이건만 손에 잡히는 대로 묻으셨다.
  
  구덩이를 파신다고 힘겨워 온몸이 물에 빠졌던 것처럼 축축해져서 입은 옷은 벗어든 채로 굴 속으로 돌아오셨다. 해가 저물어, 굴 속에 모인 동네 사람들은 빼곡히 들어앉은 채로 자는 사람은 자고 또한 잠못 이루는 사람들끼리는 앞날을 걱정하며 밤을 꼬박 새웠다. 아침이 되어 어머님은 밥을 지으러 집으로 가셨다가 금방 돌아 오셨는데 『어머니 왜 그러셔요?』하고 물었으나 답변을 못하시고 얼굴 표정이 굳어지셨다.
  
  동네에 진주한 인민들
  
  한참 숨을 쉬시더니 『정말로 전쟁이 크게 난 것 같다』고 하셨다. 집으로 가보았더니 우리 집에 인민군들이 안방 사랑방 할 것 없이 가득 차 있고 그들은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방 안을 들락날락하니 어머님은 그 광경을 보시고는 놀란 표정으로 숨어서 굴 속으로 돌아오신 것이었다. 그러고는 가족들한테 『너희들은 꼼짝말고 소리도 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다. 혹시나 우리한테도 총부리를 들이대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시고 겁이 나셔서 벌벌 떠셨다.
  
  그러다 미처 가져오지 못한 쌀과 보리쌀을 가지러 다시 아버님과 어머님 두 분이 집에 가셨다. 방마다 인민군이 진을 치고 있어 얼굴을 부엌 쪽으로 돌린 채 한 발 올리는 순간, 『어마이, 아바이』 하는 소리에 사색이 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돌아보니 인민군 장교 한 사람이 『어마이, 너무 겁내지 마시오!』 하였다. 아마 그 사람들 보기에 너무나 겁에 질린 듯 보였나 보다.
  
  그리하여 허겁지겁 아버님, 어머님은 양식을 가지고 굴로 돌아오셨다. 식구들 식사를 해결해야 하므로 여간 걱정이 아니셨다. 우리 집만 걱정이 아니라 온 동네가 하룻밤 사이에 집집마다 인민군이 다 차지하고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동네 어른들이 의논을 했다. 가마솥을 굴 앞에 걸어서 공동으로 식사를 해결하기로 한 후, 우리 집이 가까우니 우리 집 가마솥을 떼어와서 굴 앞에다 걸어 놓고 동네 식구 전체 밥을 지어서 주먹밥으로 나누어 주셨다. 반찬도 없이 소금으로 간을 해서 먹어도 배가 고프니 서로 한 주먹만 더 달라고 해도 밥이 모자랐다.
  
  시골 집은 담도 없는 너른 집이었다. 그런 집에서 살다가 굴 속에서 하룻밤 정도 얼떨결에 지냈지만 하루가 지나니 굴 속도 수라장이 되었다. 어른들은 참지만 아이들은 철이 없었고 전쟁이 무언지도 모르니 『집에 가자, 컴컴한 게 귀신 나올 것만 같다』고 울기 시작했다. 밤새 우는 아이도 있었다.
  
  이틀 밤을 굴 속에서 자고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두통이 났다. 또 궁금하기도 해서 바깥으로 살며시 나와 우리 옆집 담벽을 타고 넘어다 보았더니 여자 인민군이 나를 보고 『겁내지 말고, 이리 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너는 몇학년이냐』 물었다. 국민학교 육학년이라 대답했더니 옆으로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전쟁이 났지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다.
  
  집은 인민군에게 빼앗기고 굴 속에서 네 번째 자던 밤에 남동생이 밤중에 굴에 있는 사람들 간이 떨어지도록 고함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인민군이 총을 쏴서 내 목이 달아났다』하고 우니 그야말로 자던 사람이 다 일어나고 어찌 된 일이냐며 살펴보니 인민군이 총을 쏜 것이 아니었다.
  
  굴의 깊이는 깊지만 넓이는 평상을 놓아 사람이 지나 다니기가 아주 불편한 상태였다. 그러니 잠자다 소변을 볼 때는 평상 밑으로 내려가서 누워야만 했다. 그래서 평상을 더듬어 내려가던 중 굴 속 주인인 박쥐가 날아다니면서 날개로 목을 친 것이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고 어른들이 인민군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잠이 덜 깬 터라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그러니 아이는 참 아이구나 하며 웃고 넘어간 일도 있었다.
  
  그때는 한 집 식구가 대부분 열 명 정도 된다. 보통 7남매, 8남매 되니까 어른까지 하면 열 식구는 된다. 그러니 계속 밤마다 시끄럽다. 가장 불편한 것이 밤중의 대변소동이다. 대변은 요강에다 누고 자기 가족끼리 치우는데 한 사람 정도 눌 때는 괜찮은데 새벽에 세 사람 네 사람 정도 한꺼번에 눌 때 그 구린내는 말로 다 못한다.
  
  사람들은 굴 속으로 피신했지만 가장 큰 걱정이 남아 있었다. 농촌에는 소가 재산인데 소 때문에 한 번 소동이 났다. 동네 어른들이 굴로 오기 전에 소를 다 풀어주자 했는데 우리 어머니는 반대하셨다. 왜냐하면 우리 논밭이 동네 앞에 나란히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면 소가 없으면 안되니 아버님은 그 와중에도 나무 밑을 기어다니시면서 소 먹이를 뜯어서 갖다 주고 소 때문에 여간 고생이 아니셨다.
  
  『응, 너희들 소는 뒷산으로 갔다』
  
  소는 굴 속으로 피난을 시킬 수도 없었다. 마구간에 매어둔 것이 먼저 희생되었다. 굴 속으로 피난한 지 일주일 정도 될 때였다. 나는 언제든지 식구들 중 제일 먼저 일어났다. 어른들은 가족들을 돌보느라 얼마나 피곤하신지 주무시기에 나는 굴을 빠져나와 우리 집으로 갔다. 그런데 마구간을 들여다 보니 소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소를 찾았다.
  
  집을 한 바퀴 돌다보니 인민군이 『야, 너 나이가 몇이냐』 해도 대답도 않고 찾아보았지만 소는 간 곳이 없었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인민군에게 물었다. 『아저씨, 우리 소를 못 봤어요?』 그러자 『응, 너희들 소는 뒷산으로 갔다』라고 하기에 그 말을 믿고 뛰어서 우리 집 모퉁이를 돌아 뒷산을 쳐다보았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소머리는 말없이 나무에 매달려 있고 몸뚱이는 갈기갈기 뜯긴 채 뼈다귀만 남아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나는 참담한 소의 주검을 보고 통곡을 하면서 가족이 있는 굴에 와서 『아버님, 그리 아끼시던 소를 간밤에 인민군이 잡아먹었어요』라고 하니 굴 안은 온통 초상집이 되었다. 온 굴 안 사람들이 치를 떨며 통곡하고 다른 집 소는 어찌 되었을꼬 했지만 남겨둘 리가 없었다. 그 후로 온 산의 나무 도처에 살을 뜯긴 소의 뼈들이 걸리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민군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우리 동네로 모여들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 동네는 개울마다 아카시아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나무 밑에 둥지를 틀 듯 아카시아 나무 밑은 인민군 아지트로 변모해 갔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피난 생활 고초를 어찌 다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칠남매 맏이인 아버님과 결혼한 어머님은 3년 만에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시누이 시동생들을 다 키워서 시집 장가를 보내시고 할아버지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12년을 병구완하시고 우리 칠남매가 뒤따라 자랐으니 한평생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바삐 사셨다. 그런데 전쟁까지 겹쳤으니….
  
  전쟁이 나서 밤이면 잠을 설치면서 삼촌들 걱정, 객지의 자식들 걱정을 하시며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 하시던 중, 큰삼촌, 작은삼촌 소식이 들려왔다. 그분들은 우리 동네에서 3리 정도 떨어진 동네인 「상당골」이란 동네에서 사시는데 거기도 자그마한 땅굴에서 두 분 삼촌의 가족들이 피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 죽었다는 소식이 온 것이었다. 아버님은 『어이구, 어찌할꼬』 하시며 듣는 순간 『인민군들이 한 짓이다』 하시며 허둥지둥 삼촌들 피난처로 달려가셨다.
  
  그때는 낮에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여 산을 타고 숲 속을 조심스레 헤치시며 가서 보니 기가 막힌 현장이었다. 큰삼촌, 작은삼촌 할 것 없이 굴에 있던 온 가족들이 굴 밖에 가로 세로로 온통 누워 있었던 것이다. 아버님은 한참을 두드리다가 물을 가져와 사람한테 뿌렸더니 그제서야 큰삼촌이 꿈틀거리며 눈을 떠서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사연인즉 이랬다.
  
  전쟁이 나서 대포 소리, 비행기 소리, 포탄 떨어지는 소리가 어찌나 요란하였던지 마음대로 밖에서 밥을 할 수가 없어서 굴 안에서 불을 피운 것이었다. 식구들은 안쪽에서 자고 큰삼촌이 아침 당번을 하다가 생각 부족으로 밥을 해놓고 식구들을 깨우니까 다 죽었던 게 아닌가. 가스에 취해 죽은 사람들을 한 사람씩 업어서 밖으로 내느라 큰삼촌도 지쳐서 마지막에는 자기도 쓰러져 있었던 것이었다.
  
  또 다른 땅굴로 이사
  
  전쟁 속에 온갖 아픔을 겪으면서도 우선 큰 걱정은 가족 걱정이었다. 큰언니는 대구로 시집을 가고 작은언니는 남계1동 약목면 소재지로 시집을 갔다. 대구에 사는 큰언니, 큰오빠, 작은오빠가 연락이 두절되었고 작은언니네는 멀지 않은 거리에 사는데도 소식을 듣지 못해 아버님은 삼촌 때문에 놀란 가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작은언니 시댁을 찾아가셨다.
  
  놀랍게도 그 댁은 마루청 밑에 닫으면 마루청이고 뚜껑을 들면 방 같은 형태로 생긴 지하방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버님은 안심이 안 되셔서 사돈댁 식구들과 언니, 형부를 우리가 있는 땅굴로 데리고 오셨다.
  
  날이 갈수록 전쟁은 더 치열해지고 굴 속은 여러 사람이 있다 보니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아버님이 보시기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래서 또다른 굴 수색에 나섰다. 우리가 있는 바로 위의 또다른 굴을 찾아서 이틀 동안 작업을 하셨다. 바닥을 고르고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정리를 해서 첫 번째 굴에서 두 번째 굴로 옮겼다.
  
  두 번째 굴은 구조가 달랐다. 굴 입구에서 들어가다 보면 가운데쯤 밑으로 구멍이 나 있는데 다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후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생긴 굴이었다. 온 식구들과 사돈댁 식구들까지 굴 안에 들여놓으시고 사람 하나 빠져나갈 정도의 구멍으로 사다리를 타고 다시 나가셔서 아버님, 어머님은 굴 입구는 이불 보따리로 막아두신 후 주먹밥을 해서 식구 숫자대로 굴 안으로 내려주셨다. 그 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놋그릇
  
  이불 보따리를 입구에 막아놓고 가족의 무사함을 빌면서 두 분이 쪼그리고 앉아서 지키시는 모습을 볼 때 나는 하늘이 아무리 높다 한들 부모님의 은혜에는 비유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는 인민군이 17세 이상의 남녀들은 다 잡아다가 무슨 치안대라는 것을 조직하여 밤낮으로 심부름을 시키고 하였다. 그때 난 어린아이이기에 거기에 해당될 나이는 아니었다.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포탄을 던져 우리 동네 집이 불에 타고 인민군들이 죽고 어떤 땐, 하늘에서 장독만한 폭탄이 떨어지니 땅이 파이고 작은 산이 하나 날아가는 것같이 보였다. 인민군도 겁이 나는지 우리가 숨어 있는 곳으로 왔다. 어머님이 이불 보따리를 안고 굴 출입구를 지키는데 인민군 3명이 와서 총대로 보따리를 푹푹 찌르면서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이불 아니오』 하고 대답했더니 그속을 풀어보라고 하였다.
  
  어머님은 『안된다』 하시다 어쩔 수 없이 풀어서 보였다. 이불 속에는 어머님이 사용하시던 놋그릇을 숨겨 두었었다. 우리 집에는 놋그릇이 큰 유물이었다. 일제시대에 놋그릇이란 건 다 빼앗기고 겨우 남은 그릇이었다. 그래서 보물처럼 생각하시던 놋그릇을 인민군이 달라 하자 어머님은 안된다 하시며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고 계셨다.
  
  그 소리에 굴 속에 있던 식구들이 놀라서 나와 보았더니 인민군이 총대로 어머님 옆구리를 푹푹 찌르면서 협박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온 식구들이 목숨을 걸다시피 싸웠으나 인민군은 결국 빼앗아가 버렸다.
  
  그후로도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이불 보따리에 몸을 의지하면서 경비를 서던 부모님 모습을 볼 때마다 나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밤이면 대포 소리가 산천을 울렸고 여기저기서 쾅쾅 하는 소리가 더 자주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그러다 어느 날 「쾅」 하더니 굴 안이 무너질 듯 들썩들썩하였다. 심장이 멈출 것처럼 우리들은 깜짝 놀랐다. 황급히 어머니 아버지가 어떻게 되시지나 않았나 소리쳐 불러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굴 속에 있던 식구들은 정신을 못 차렸다. 순서도 없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이불을 밀어내야 어른들이 보일 터라 기운이 센 작은 형부가 먼저 올라가 이불 보따리를 밀어내었다. 그랬더니 두 분께서는 모두 기절을 하신 채 누워 계셨다. 바로 굴 앞에 폭탄이 하나 떨어졌던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다치신 곳은 없었고 정신을 잃고 계셨다. 목숨은 붙어 있는 듯하였으나 살아 있다고 장담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온 가족들이 걱정하고 간호해 드린 후 한참 만에 깨어 나셨다. 우리 동네도 포탄 떨어지는 숫자가 잦아지자 인민군들도 불안해졌다.
  
  전쟁은 이기지 못하면 지는 것이다. 인민군들은 그때 「따발총」이란 것을 메고 다녔다. 그들은 비행기에서 폭탄을 던져대니 총하고 상대가 안된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그러니 공포에 떨면서 우리가 거처하고 있는 땅굴로 자주 몸을 숨기러 왔다.
  나는 그 사람들이 미웠다. 나는 나이는 어려도 할 말은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인민군들에게 『인민군 아저씨, 우리 가족들 있기도 복잡하니 오지 마세요』라고 했더니 『우리도 언제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 시원한 데서 잠 좀 자자』하고 말했다.
  
  인민군 보국대에 끌려간 사람들
  
  그 치열한 전쟁중에도 그네들은 젊은 사람만 있으면 앞세워서 곡식 구하러 데려갔다. 우리 이웃에 계시는 아저씨도 인민군 보국대로 끌려가서 약목면 양곡 창고에 곡식 가지러 가셨다가 돌아가셨다. 두 분이 가셨는데 옆집 아재뻘 되는 분은 면사무소 구석에서 책상을 머리 위로 하고 구석에 딱 붙어 있어서 폭탄 피해를 면하게 되었고 밖으로 나가신 다른 아저씨는 약목초등학교 입구에 작은 다리가 있었는데 그 밑에 숨었다가 포탄 조각에 목이 잘려 돌아가셨다.
  
  같이 갔던 아재가 현장을 보니 목이 끊어져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다고 했다. 그 참혹한 죽음을 당하니 가족들의 아픈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아재뻘 되는 분은 며칠을 울고 울어서 시체조차 가지고 올 수가 없음을 애타 하시더니 결국 병이 생겨 앉은뱅이가 되셨다.
  
  전쟁이 길어지니 굴 속 생활도 몸부림이 났다. 두 번째 굴에도 가족끼리 있을 수가 없었고 인민군들이 밤낮으로 떼를 지어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굴 속은 온통 인민군 옷에서 나는 찌든 냄새로 공기가 탁해져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이래선 안되겠다 하시던 아버님은 우리들이 옮겨갈 또다른 장소를 물색하시느라 며칠을 산 속을 헤매고 또 헤매셨다.
  
  가는 곳마다 인민군이 너무도 많아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망설이시더니 동네를 조금 벗어나서 더 골짜기로 들어간 곳에 산사태가 난 언덕이 있는데 거기다 아버님 혼자 숨어 다니시며 직접 굴을 파시기로 하셨다.
  
  가족들이 도와 드리려고 하면, 『나는 이젠 죽어도 괜찮지만 너희들은 무사해야지』하시는 말씀에 우리들은 가슴 뭉클하게 차 올라오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눈물을 글썽거렸다. 숲 속을 숨어 다니시며 혼자서 땅굴을 파시는 그 힘든 일을 맡아 하신 아버지 덕분으로 온 가족이 옮겨 지낼 굴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우리 식구들은 그동안 지냈던 캄캄한 굴을 나와 어느 날 새벽, 세 번째 굴로 갔다. 그러다 또 우린 놀랐다. 어쩜 이런 광경이! 인민군 복장을 하고 등에다 가방도 아닌 스님이 메고 다니는 바랑 같은 것을 짊어진 채 보국대라고 하는 젊은이들 수 천명이 오리목 나무 밑 골짜기 가득 모여있었던 것이다.
  
  그 조용하고 아름답던 동네가 수라장이 되고 매일같이 공포 속에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밤에는 두 번째 굴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빨래감을 안고 세 번째 굴을 향해 인민군 눈을 피해가며 산기슭의 오솔길을 따라 다녔다.
  
  턱이 떨어진 인민군
  
  나는 나이가 열세 살밖에 되지 않아 부모님 보호 아래 있었지만 내 위로 17세 이상의 언니 오빠들은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강제노동을 하였다. 치안대라는 조직 속에 들어가면 꼼짝 못하고 그들의 하수인이 되었다. 밤이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강가 사과밭에까지 가서 사과를 따다보면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질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면 이제 죽었구나 하면서 배를 땅에 깔고 엎드려 피해가며 가슴을 졸였단다. 그런 중에도 사과를 한 가마니씩 따다 바치는 것을 보았다. 사과가 익어서 따다 먹는 것을 보니 계절이 어느 정도 흘러가는구나 알 수 있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언제쯤에나 전쟁이 끝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 지루하던 땅굴 속에 반가운 소식이 왔다. 세 번째 굴에서 점심을 먹고 한숨 자고 난 뒤 아버님이 전쟁은 어찌 될 건가, 대구 큰언니, 오빠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웬 인민군 장교 다섯 사람이 땅굴로 찾아 들었다. 『어마이 밥 좀 주시오』해서 밥을 있는 대로 주었다. 밥을 먹고 그들이 하는 말이 『이제 전쟁은 끝이 났어요』하며 같이 오던 동료 한 사람의 턱이 파편에 맞아 떨어져서 같이 오지 못하고 길목 집에다 눕혀놓고 온다고 했다. 너무 안타까운 표정으로 우리가 다시 살아서 만날지 못 만날지 모른다는 말을 남기고 산을 넘어 사라졌다.
  
  아버님은 인민군이 하는 말을 들으시더니 『그 집이 우리 집이다』 하시면서 집으로 내려가셨다. 집으로 가시는 도중에도 그 많던 인민군이 순식간에 어디로 갔는지 다 떠나고 없고 우리 집에 턱이 떨어진 인민군만 피를 흘리면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순찰한다고 요란하게 돌고 있고 아버님은 자는 인민군을 깨워서 『빨리 일어나시오. 미국 비행기가 하늘에 빙빙 돌고 있소. 속히 떠나시오』 하니 그는 턱이 떨어진 몸으로 일어났다. 그러더니 말은 못하고 어깨를 툭툭 치면서 옷을 한 벌 입혀 달라는 말인 듯한 행동을 하였다.
  
  그래서 아버님 입고 계시던 웃옷을 벗어서 위에다 입혀 주었더니 턱이 없어진 그 몸을 이끌고 북쪽으로 떠나갔다. 나중에 들으니 윗동네까지 와서 글로 써서 물을 좀 달라고 하더란다. 턱이 없으니 숟가락으로 몇 번 떠서 먹여 주었단다. 우리 동네는 산이 높기 때문에 그 높은 재를 넘지 못했을 텐데 어디로 사라졌을까?
  
  드디어 굴 속 피난생활은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도 인민군들이 스쳐가서 폐허처럼 문짝도 다 부서지고 집안 구석구석이 온통 부서져 온전한 것이 없었다. 그 암흑 같은 날들이 지나가고 하루 이틀 지나면서 외부 소식이 들려왔다. 나중에 우리 고향이 가장 치열한 전쟁을 치른 격전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관 다리 밑에서 퍼진 어미 소의 울음
  
  왜관 인도교가 끊어지고 적군들은 왜관을 통과하려고 밤이면 모래성을 쌓고 다리를 놓아 강을 건너기 위해 수십 번 도전했다. 미군들이 비행기로 대낮같이 밝혀놓고 포탄으로 막아내니 수많은 적들이 죽어 시체는 뒹굴고 강물은 핏물로 변해 비행기에서 내리는 불빛에 반사되어 마치 붉은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같이 보였다고 한다.
  
  인천 상륙 작전 성공으로 인민군이 후퇴하고 대구에 있던 큰오빠도 그 동안 집소식을 못 들어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님과 우리 가족 모두는 부둥켜 안고 너무나 반가워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대구 가족들 안부를 물었다.
  
  전쟁 중에 가족이 떨어져서 있다는 것은 지옥 중의 지옥이다. 굴 속을 전전하면서 피난을 했지만 대구에다 자식을 두고 소식을 듣지 못해 그 긴 여러 날을 노심초사하시면서 걱정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을 어찌 다 말로 헤아릴 수가 있을 것인가.
  
  대구에 있던 오빠도 집이 걱정이 되어 대구에서 90리나 되는 우리 집까지 걸어서 왔다고 한다. 오다 보니 마침 왜관 인도교로 들어서려는 순간 확성기에서 인도교를 폭파하니 물러가라는 소리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온 사람들이 시끌시끌하고 피난 행렬은 강을 서로 어서 건너가려고 아우성치며 야단이었단다.
  
  오빠가 귀를 막고 땅바닥에 엎드리는 순간 『쾅쾅』 하는 폭음소리는 하늘과 땅이 갈라지는 듯 크게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눈을 떠 보니 다리는 두 동강이 났고 피난 행렬을 쳐다보니 피난민들은 우왕좌왕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사람, 강물에 소떼를 몰고 뛰어들어 소와 사람이 범벅이 되어 건너고 있었다. 또 헤엄을 쳐서 강을 건너는 사람도 있었다.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들은 강을 건너지 못해 성주로 방향을 돌리고 건강한 남자들은 소 고삐를 부여잡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큰 소는 사람 손에 이끌려 헤엄을 쳐서 건너갔으나 새끼 송아지들은 건널 수 없어 어미 잃은 설움 때문에 하늘을 향해 「음매」 「음매」라고 울어대며 백사장 위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다. 어미 소도 강 건너 새끼들과 헤어진 설움으로 하늘을 찌를 듯 고함을 질렀지만 매정한 주인 재촉에 이끌려 피난길에 오른다.
  
  온갖 아우성 속에 오빠도 어찌할 수 없어 뒤돌아 대구로 가서 막내 삼촌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고 한다.
  
  피난을 멀리 간 사람들은 추석이 되어도 추석을 지낼 수 없었으나 우리는 제자리서 피난을 하여 추석 차례를 지냈었는데 차례상을 차릴 거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차릴 것이 없으니 아버님이 소찬을 차려놓고 흐느껴 우시면서 절을 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러다가 추석이 지나고 멀리 피난간 사람들이 제 집으로 돌아왔고 어느 날,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수업도 제대로 하지 않고 6학년 한 해를 다 보낼 즈음에야 학교를 다시 가게 되었다.
  
  못 만나던 선생님과 친구들은 인사를 나누고 전쟁 이야기로 분주했다. 빈 자리가 많아 자리를 세어보니 반친구들은 반이나 결석이었다. 전쟁을 겪은 마음에 무척 서운하기도 하였다. 우리 동네는 가구 수가 적으니 내 또래는 없고 6학년은 나밖에 없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5리 정도의 거리를 산길을 따라 학교를 다니는데 6학년이다 보니 공부를 늦게 마치고 집으로 올 때는 혼자 다녔다.
  
  등하교길에서 만나는 인민군 시체들
  
  그런데 전쟁중에 죽은 인민군의 시체를 길을 따라 묻었었다. 푯말에다가 주소와 이름만 써서 꽂아 두고 묻어 둔 것이 비바람에 씻겨 흙이 다 떠내려 가니 시체와 군화가 무덤 밖으로 드러난 채 우뚝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보았다. 어린 난 그 광경을 보면 하도 무서워 귀신이 나를 잡으러 벌떡 일어나는 것같이 느껴져 마음에 병이 되어 심하게 헛소리를 하며 앓아 누웠다.
  
  그러고 몇날 며칠을 못 일어났다. 몸마저 쇠약해져 「장질부사」라는 병마를 앓고 있는데 자꾸 전쟁 때 있었던 일들이 꿈에 보이고 헛소리를 하면서 잠을 자고 하는 것을 부모님이 보시더니 너무 걱정을 하셨다. 그후로 학교를 가게 되었을 때도 수업이 끝나면 5리길을 데리러 오시곤 하셨다. 전쟁이 나서 수업을 제대로 못하고 아파서 학교도 많이 빠지느라 6학년 1년은 상처투성이로 얼룩만 지고 공부도 못한 채 겨울방학이 되었다.
  
  그해 겨울이었다.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알 수 있는 얘기가 있다. 우리 외갓집은 강 건너 석적면 우악산 산기슭에 있는 「말기실」이란 동네다. 그해 「설」이 되어 우리 형제 모두 외할아버지께 세배하러 갔다. 절을 하고 나니 『전쟁중에 아무 사고 없이 너희들이 무사하니 너무나도 반갑다』고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살아 계셨고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산소가 우악산 기슭에 있었다. 우리 형제들은 외할머니 산소에 성묘 인사를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온 산이 그야말로 시체로 뒤덮여 있었다. 수많은 국군이 죽어 그 시체가 헤아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우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등줄기로 간담이 서늘해 옴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몇 달이 지나도록 시신마저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어느 산 속 깊숙이 낙엽에 묻힌 채 썩어 가는데도 그대로 방치된 것은 그때 참상은 안 본 사람들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그 때 전사한 국군의 시신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그 수많은 선배들이 목숨바쳐 지켜주신 덕분으로 오늘의 민주국가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음을 어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때 난 너무도 무서워 빨리 집으로 가자고 하였는데 오빠는 무섭지도 않은지 말없이 쓰러져 있는 시신을 뒤적거려 총을 일곱 자루나 주워서 어깨에 메고 신바람나는 사람같이 장난을 치면서 외갓집으로 가지고 왔다. 나는 따라 오면서 『오빠, 총을 버려라. 어서』라고 했지만 오빠는 들은 척도 아니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외할아버지께서 보시고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당장 갖다 버려라』고 야단맞고 어느 논두렁에 갖다 버린 일도 있었다.
  
  형부 이야기
  
  이제 불행중 다행으로 살아난 형부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의 큰언니는 부모없이 자란 두 형제 중 차남인 형부에게 시집을 갔다. 그러나 형부의 형님이 8남매를 두고 돌아가셨다. 언니, 형부가 큰집 조카 8남매를 다 키워서 대학까지 공부시켜 시집, 장가 보내고 자기 자식 6남매를 다 키워 출가시켰으니 그 속에서 살았던 우리 큰언니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우리 형부는 훌륭하신 분이셨다. 과거 신문사에 계셨는데 딸을 하나 낳고 둘째를 가졌을 때 형부께서 무심코 도장을 하나 찍어준 것이 사상범으로 누명을 쓰게 되어 옥살이를 4년간 하셨다. 옥중에 계시는 도중에 6·25 전쟁이 나서 대구도 피난을 가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교통이 두절되어 오고 가지도 못하였고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그때 언니는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으면서 피난을 가야 했다.
  언니한테 형부의 연락이 왔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은 팔공산 모퉁이에 구덩이를 파고 차로 실어다가 사형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런 소식은 들려오고 피난은 가야 하니 그 입장이 되면 그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형부가 수감될 때 가졌던 아이가 태어나 네 살이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은 피난간다고 야단인데 언니는 앞이 캄캄하였다. 그래도 남이 가니 안 갈 수도 없고 둘째는 아들이라 아들은 대를 이어야 하니 아들을 안고 집을 나섰다 한다.
  
  정처없이 무작정 앞만 보고 걸었다. 발길 닿는 대로 아이 둘을 데리고 가다 보니 딸아이는 다리가 아프니 점점 엄마와 거리가 생기게 되었고 언니는 아이가 계속 울면서 『엄마 나도 같이 가. 엄마, 나도 같이 가』 하며 따라와도 아무 생각이 없이 멍청하게 하루종일 걸어가기만 하였다. 해는 지고 그러다가 대구 앞산까지 왔다고 한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늦게 도착한 언니는 방이 없어 어느 집 헛간에서 짚을 깔고 아이들과 피난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보채면 이웃사람한테 밥을 얻어 먹이고, 오직 형부 걱정에 머리가 복잡하여 밤낮으로 울기만 하였다. 형부가 돌아가셨다면 屍身이라도 찾아와야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한다. 한달 피난생활은 짧게 끝이 났다. 하늘은 스스로 열심히 사는 사람을 돕는다고 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형부소식을 들으니 기적이 일어났다. 형부는 사형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차를 타게 되었는데 그 앞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사형이 되었고 형부가 탔던 마지막 차만 교도소로 돌아와 형부는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이었다. 그후 형부는 옥살이 4년형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어머님께서는 사위가 살아서 돌아온 것이 꿈만 같으셨다. 그러고는 지금은 찜질하는 기구도 많이 있지만 그때는 찹쌀 부꾸미라는 떡을 구워서 찜질을 해 주셨다.
  
  육십에 맞선 또다른 전쟁
  
  우리 가족들은 호된 고난을 겪으면서 전쟁 이후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 더미에서 그저 「생존」 하나만을 목표로 삼은 채 열심히 노력하였다. 가족들은 각자의 주어진 일을 억척스레 하며 살아왔다. 그중 나도 「부지런함」 하나만을 재산으로 삼아 지금의 남편을 만나 온갖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았다. 그리하여 남부럽지 않게 나름대로 여자의 본분을 지켜가며 살아왔다. 결혼한 후 살아온 일들을 어찌 다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내 나이 늘그막에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내 발등에 떨어진 전쟁 아닌 전쟁, 정말 감당하기가 어렵다. 꿈인가 생시인가 모를 정도로 힘에 겨운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큰아들이 IMF 때문에 하던 일을 부도 내게 되었으니 내 육십 평생에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남편과 도주하다시피 짐을 챙겨 타향으로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나의 육신을 한 평도 안 되는 옥상 올라가는 계단을 빌려 자리를 잡고, 낮이면 당구장 청소를 하고 밤이면 노점상을 하면서 노쇠한 몸을 누이고 있자니 나의 긴 인생의 지난 일들이 스쳐 지나가며 두 눈엔 빗물처럼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들은 힘에 겨운 빚을 졌으니 그 괴로움을 감당하기 어려워 강물에 빠져 죽겠다고 뛰어가는 것을 다리를 잡고 통곡 통곡을 하면서 달랬다.
  
  나는 돈보다 목숨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들이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서 지나간 전쟁 때 죽어간 屍身들이 떠올랐다. 그들에 비하면 우린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린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길거리에 노점상으로 나섰다. 아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낯선 사람들이라고 자동차로 치어 죽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없나, 동네 상인들이 들고 일어나 우리를 쫓아내기 위해 야단이질 않나. 하지만 온갖 고통을 다 당해 가면서 「이겨내야지」하고 마음먹었고 과거 고생을 겪은 것이 밑거름이 되어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우리가 맞은 IMF도 6·25 전쟁에 비하면 그저 아무것도 아님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인간의 노력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노력함으로써 가치 있는 것이다. 언젠가 이 고통 속에서 또다시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생활할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면서 우린 실망하지 않고 일어설 것이다. 전쟁의 폐허 위에 이루었던 과거의 그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