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大選을 세대간의 대결이라고들 한다. '50代 이상과 30代 이하의 생각이 다르고, 40代의 표심이 승패를 가른다' 이런 분석들을 내놓는데,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 세대간의 대결을 체감하고 있다. 다른 세대가 아닌 바로 같은 세대 안에서의 대결이 나를 숨막히게 하는 것이다.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주로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으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자기 주장이 강하고, '우리가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고를 가진 이들이다. 당연히 선호하는 후보에 대한 지지 이유도 똑 부러진다. 그러다보니 지지 후보가 다를 경우 단 두 마디를 이어가기 힘든다. 大選을 앞두고 몇 사람과 얘기를 나눠봤는데 하나같이 '그 사람은 안돼. 왜 안 되는지 이유를 말해주지'라며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피곤하지 않으려면 속히 대화 상대가 몇 번을 지지하는지 알아내어, 지지자가 다를 경우 화제를 바꾸는 게 상책이다. 아니면 아예 '짖어라'하고 속으로 딴 생각을 하는 수밖에 없다. 정색하고 서로 대거리를 했다가는 불과 몇 분만에 얼굴이 시뻘개져서 침을 튀기다가 급기야, 욕설이 튀어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몰랐네, 그렇게 생각이 낡았을 줄''진짜 몰랐네, 나라 망해먹겠네'라고, 설전을 벌이다 서로를 '상종못할 인간'으로 치부하고 만다.
  
  지지 후보가 다른 사람들끼리 '이 후보는 이런 점은 괜찮은데, 이런 점은 좀 고쳐야해, 저 후보는 저런 점은 마음에 드는데, 이런 점은 마음에 들지 않아'라고 말하는 걸 도대체 본적이 없다. 대신 '이 후보가 당선 안 되면 나라 망해''저 후보가 안되면 끝장이야''이 후보가 안되면 이민 갈고 말테다'... 한술 더 떠 '생각이 그렇게 짧은 줄 몰랐네''너 같은 인간 때문에 대한민국이 안 되는 거야'라는 극단적인 대화가 오간다. 아는 사람끼리 오프라인에서 이럴 정도이니, 모르는 사람끼리 온라인에서의 치졸한 말다툼은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80년대 학번들과 대화를 할 때 거의 유일하게 의견이 일치되는 얘기가 있다. 바로 '내가 대학 다닐 때 가장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우리 학번이 가장 고생했다'는 주장이다. 그 얘기 가운데는 격동하는 현대사 속에서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주장하면서, 지금 내가 이만큼 된 것도 다 내가 '잘 나서' 그런 것이라는 자만심이 은근히 깔려 있다. 혹은 내가 '요 모양 요 꼴'이 된 건 내 잘못이 아니라 시대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라는 불만이 담겨있다.
  
  거기까지는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앞 세대에 대한 불신을 거리낌 없이 말하면서 '수구적이고 극우적인데다 지독한 보수여서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꿔야 한다, 확 뒤엎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8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니면서 워낙 강경한(?) 주장을 많이 들어, 웬만한 얘기에는 내성이 생겨 그러려니 한다. 나와 친한 친구들은 대개 명동성당까지 가서 단식을 하고, 서울시내를 휘저으면서 시위를 했던 열성파였다. 사안에 따라 시위에 참여하여 심정적, 비판적 지지를 보냈던 나는, 많은 경우 학교 안에서 학우들의 무사 귀환을 고대하는 쪽이었다.
  
  수업을 빼먹고 이른바 '학습'에 열중했던 그들은 학과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나를 측은하게 여겨 자신들의 학습 성과물을 나에게 주입시키려고 애썼다. 그들은 전 국민이 평등한 나라, 탁아시설이 완벽한 나라, 누구나 의료혜택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나라, '북한'에 대한 동경에 들떠있는 경우가 많았다. 빨갛게 줄을 친 루이제 린저 책을 보여주며, 세계적인 작가가 본 객관적인 시선에 귀를 기울이라며 전적인 동조를 하지 않는 나를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KAL기 폭파 사건에 대해 '노동자 농민을 사랑하시는 수령님께서 중동 노동자들이 가득 탄 비행기를 향해 그런 지시를 하셨을 리 없다'며 조작된 주장에 넘어가지 말 것을 당부하곤 했다.
  
  '왜 외국 작가의 글만 열심히 보고, 가본 적도 없는 곳에 대해 그토록 확신하느냐, 우리나라 어른들의 당부는 왜 듣지 않느냐. 나는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느낀 것이 모두 부정될만큼 우리나라가 왜곡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내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자본주의식 사고로 세상을 판단하게 된다. 생각을, 시각을 바꾸도록 노력해봐라. 지금까지 잘못 안 게 분하지도 않느냐'며 나를 설득했다. 얼마 전 그렇게 말했던 친구에게 '요즘도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생각해?'라고 물었을 때 '이제 그런 얘기하지 말자'며 말문을 돌렸다.
  
  돌이켜보면 대학에서는 생각이 다른 학생들을 설득할 때 그나마 예의가 있었다. 그 설득의 이면에 먼저 깨달은(?) 자신들이 아직 뭘 모르는 사람들을 지도해야 한다는 오만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최소한 방자하지는 않았다. 대자보는 정권에 대해 몹시 심한 어투를 동원에 비난했지만, 동료 학생들에 대해서는 대단히 정중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그들에게 완전히 동조하지 못했던 원인가운데 하나가 된 극렬한 구호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가리에서 항문까지 죽창으로 왔다갔다, ooo를 때려잡자.'
  제 아무리 세상을 바꿀 대단한 프로젝트를 갖고 있다하더라도 나는 그런 구호를 외치는 이들과 한배를 타고 정처없이 떠내려 갈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언저리에서 그들을 죽 지켜보았다.
  
  80년대 후반, 대학에 흐르던 기류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그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부정'이었다. 험난한 현대사를 걸어오면서 내 자식들만큼은 배불리 먹이고 공부시키고 싶어했던 아버지들의 '뻔한 당부'를 귀가 아프게 들어온, 머리 큰자식들은 아버지들의 체험보다 활자에 더 마음을 뺏겼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다른 한편에서 일어난 시행착오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고, 그 잣대의 출처는 때때로 우려할만한 것들이었다. 격렬한 구호와 최루가스에 휩싸여 대학을 다닌 나도 알게 모르게 입학 전과 여러 부분에서 생각이 달라진 상태로 대학 문을 나섰다.
  
  사회 경험이 풍부한 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대화를 나눠보면 각론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총론에 있어서는 생각이 거의 같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나는 한국 현대사 관련 취재를 여러 차례 하면서, 전직 국무총리에서부터 村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을 만났다. 이분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 세대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일제 시대, 좌우익 대립, 한국 전쟁, 보릿고개, 근대화 시절을 거친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처절하게 온몸을 불사르며 살아온 분들의 얘기를 무조건 낡은 것, 그래서 걷어내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1945년, 광복이후 한국은 그야말로 숨가쁘게 달려왔다. 내가 지금까지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가장 고생했던 일을 들라면 1995년 신년호 월간조선 부록 '한국인의 성적표' 편집을 꼽을 수 있다. 700페이지나 되는 책을 월간조선 김동현 부장과 서울대 대학원생 민동룡 군, 나 셋이서 한달 반만에 기적처럼 만들어 냈다. 기자들이 사이드에서 도와주긴 했지만 나는 거의 한달 반 동안 하루 온종일 고개도 못 들고 일했다. 그런데도 아버지 세대의 놀라운 성과에 취해 피곤한 것도 몰랐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한 영국기자는 한국의 앞날에 대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기를 기다리는 격'이라는 기사를 썼다. 우리나라가 굶주림에서 벗어난 것은 겨우 30년 전의 일이다. 굶주림을 해결한 뒤 우리의 앞 세대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우고야 말았다. 1960년대에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당시 아시아 경제부국이던 필리핀이나 인도 정도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수출주도냐, 수입대체냐'를 고민했고,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소극적인 경제보다는, 전 세계 시장에 내다 팔 공산품을 만드는, 공격적인 수출 주도 정책을 채택했다. 그 결과 오늘 날 한국은 필리핀과 인도 사람들이 산업연수생으로 오고싶어 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것은 우리 앞 세대가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50년 동안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며 오로지 '일'만 했기 때문에 얻어진 소산이다. 그러면서 앞 세대는 부존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의 발전 엔진으로 삼기 위해 자녀들의 교육에 총력을 기울였다. 적어도 밥은 굶지 않고 자란 우리 세대가 머리로 생각하는 세상과, 온몸을 부딪쳐 피흘리며 기성세대가 습득한 삶의 철학은 等價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우리 세대가 머리와 구호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앞 세대는 세상을 하루아침에 바꾸려는 시도가 가장 무섭다는 것을 몸소 실감했다. 남의 나라를 식민지로 만드는 일, 전쟁을 일으켜서 나라를 빼앗으려고 하는 일, 세상이 확 바뀌는 일과 확 바꾸려는 시도를 겪은 그들의 경고를 겸허하게 경청해야 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 제2 건국도 앞의 역사에서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개선할 것은 개선해 나가면서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인 앞 세대의 풍부한 경험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여 한 순간에 접어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사고이다. 앞 세대의 지혜와 경륜을 어떻게 잘 이어받아 활용하느냐와 거기에 새로운 것을 어떻게 제대로 접목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대학 다닐 때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좀 바꿔보라'고 진지하게 권유하던 친구들은 이제는 노골적으로 말한다. '왜 그런 잡지에 글 써?''그 잡지에 있는 선배, 우리가 타격하러 갈 계획이야'라고. 몇 년 전 모 방송사에 취재를 갔을 때 취재원이 나에게 대뜸 '왜 그런 잡지에 글 쓰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즉각 '왜 이런 방송사에서 일하세요?'라고 말해 대치국면을 형성했고, 우리는 40분간 설전을 주고받다가 취재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로 원위치 했다.
  
  길거리에서 '이런 신문보지 마세요. 이런 신문이 없어지면 아름다운 세상이 옵니다'라며 유인물을 나눠주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 단순함에 측은지심이 생길 지경이다. 진지한 얼굴로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애쓰던 대학 때의 친구들은 그나마 순수했고 나름대로 원대했었다. 민주화도 외칠 수 없는 지금, 얼굴을 코앞에 들이밀고, '너 '생각' 바꿔, 안 그러면 너 '생각'없는 인간으로 '생각'할거야'라고 윽박지르는 일. 이들은 어쩌면 80년대 후유증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느닷없이 냉전이 종식되고, '군부독재'를 외칠 수 없게 되자 뭔가 대항할 세력이 필요했고, 그래서 집단으로 '왕따 작전'을 구사하는 중?
  
  따지고 보면 같은 세대 안에서의 단절, 대화의 폭을 좁히지 않으려는 작심, 이런 것이 모두 80년대 후유증이다. 공부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얘기했던 이들이, 이슬을 먹고 살지언정 부패한 제도권에 편승할 것 같지 않았던 자신이, 어느새 '생각 없다'고 치부했던 이들과 착착 발맞추어 나아가는 일이 머쓱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머쓱함을 이기기 위해 같은 세대 안에서 딴지걸기를 하면서 충돌을 일으키고, 술 한잔 들어가면 '이놈의 세상을 뒤집어야돼!'라고 외치게 하는 것일까?
  
  식민지와 전쟁을 치르면서도 지켜낸 나라에서 아버지들은 뿌듯해 하며, 등골을 빼서 공부시킨 아들들이 '피로서 지킨 이 나라'를 잘 이어가길 바라는데, 아들들은 극단적이다. '이 일은 이런 게 마음에 안 들고, 이 신문은 이런 게 좀 잘못됐어'가 아닌, '몽땅 잘못됐어. 몽땅 마음에 안 들어, 모두 내 생각대로 바꿔야 해'라는 아집.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또 하나의 섬, 숨이 턱턱 막힌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얼굴 붉히며 '내 생각만 옳아'라고 말할 것 같은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 정말 피곤하다. 우리 세대는 언제쯤 비슷한 총론을 만들고, 삶을 제대로 관조할 수 있을까?
  
  이쪽과 저쪽을 함께 검토하면 양비론이니 양시론이니 공격하면서 한쪽을 확실히 선택하라고 윽박지르는 목소리. 어둠 속에서 플래쉬를 비추며 '국군 편이냐, 인민군 편이냐'를 묻던 한국전쟁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좁은 나라에 사는 단일민족이 대화를 서로 못 이어갈 정도로 골이 깊어진 지금,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남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많이 살아온 사람들의 경륜을 귀담아 듣는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까지의 쌓아온 토대를 공고히 하면서 차근차근 뒷세대를 위해 우리도 쌓아가야 한다. 기성세대를 부정하고 확 뜯어 고쳐서 새 걸 만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앞 세대의 시행착오를 거울로 삼아야지,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초가삼간을 불태워서야.
  
  사람을 만나기 전 '어떤 성향의 사람이야? 만나면 서로 민감한 얘기는 꺼내지 않도록 조심하자'라고 입단속을 해야 하는 세대, 정말 숨이 막힌다. 토론은 없고, 단정만 남은 세대, 남의 말은 무시하고 내 주장만 도드라져야 직성이 풀리는 세대...
  얼마 전 여러 사람과 얘기하던 중 고성이 오가자 누군가가 외쳤던 말이 떠올라 더 우울하다.
  '남한도 쪼개야돼. 시끄러워서 못살겠어.'
  극렬이 하늘을 찌를수록, 냉담과 회의도 깊어만 간다. 大選이 끝난 뒤 패배한 쪽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뿜는 한숨이 태풍으로 변해 컨테이너 이재민이 더 늘어날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