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탄식, 울분, 배신감, 불안으로 밥맛이 없었을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보기엔 설익은 20, 30대가 뭉쳐서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더욱 기분이 나쁜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후세 교육을 잘못 시켰다는 후회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제는 우리도 감옥가고 돌 맞을 각오로 거리로 나서야 한다는 다짐도 있다. 울분의 에너지가 보수층 속에서 쌓여가고 있다. 이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인간은 좌절했을 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포기하는 것이다. 둘은 재기하는 것이다. 포기하면 비닥보다 더욱 낮아지고 재기하면 원위치 정도가 아니라 더 높아진다. 좌절했다가 재기하려면 그 좌절감이 분노, 정의감, 희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포기할 것인가, 재기할 것인가.
   포기와 재기를 결정하는 요소는 의외로 자존심인 경우가 많다. 저런 세력에게 지배될 수는 없다, 저런 자에게 굽실거릴 수는 없다는 식의 원초적인 감정이 인간을 재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건국, 호국, 근대화, 민주화를 반세기 동안 이룩한 한국의 기성세대가 시멘트를 향하여 계란을 던지는 젊은이들과 이들을 선동하는 세력에게 나라의 운명과 운영을 맡겨둘 수가 있나 하는 분노를 자존심을 매개로 하여 정의감으로 승화시킨다면 행동력이 생긴다. 이 행동력에 지속성을 부여해주는 것은 이념, 즉 정치적 가치관, 곧 신념체계이다.
  기성세대의 행동력은 나이, 직위, 돈, 전문성에서 나온다. 나이가 많으니 자녀와 후배들에게 충고하고 가르치기 쉽고 직위가 높으니 조직을 장악하여 교육을 잘 할 수 있으며 돈이 많으니 자유와 조국을 지키는 데 자금을 댈 수 있다.
  한국의 우파는 이번에도 분열했기 때문에 정권 탈환에 실패했다. 재벌 2세 기업인으로서 전형적인 우파인 정몽준씨가 좌파인 노무현씨와 연합함으로써 이회창씨의 패배가 이뤄졌다. 1997년에 우파가 이회창, 이인제로 분열하여 좌파 김대중씨가 당선된 실수를 되풀이 한 것이다. 남북 무장*이념 대치상황에서도 정치 지도자가 이념에 투철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기주의로써 다수 국민들을 배신한 것이다.
  한국의 기성세대가 달라지지 않으면 우파 정치인들도 이런 분파주의와 기회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념 없는 보수' 이회창씨와 '용기 없는 보수' 정몽준의 실패는 한국형 보수의 속성을 드러낸 것인 동시에 이런 약점을 보완하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의 주도권을 탈환할 수 없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이념을 우선 이론적으로, 사상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켜가려는 자유와 민주의 가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 사상을 젊은이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교육할 것인가를 놓고 토론하고 연구하여 한국형 보수사상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이념과 전략이 없는 우파가 유리한 조건속에서도 이념에 투철하고 전략이 있는 좌파에게 당한 경우이다. 이회창은 이념전쟁에서 이미 좌파에게 지고들어갔기 때문에 한번도 선거의 주도권을 제대로 잡지 못했던 것이다.
  우파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업적과 체험을 논리화 할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하고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이론무장을 해야 한다. 이념대결의 주전장은 서울이고 이는 본질적으로 선전전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번의 안방 선거전에서 많은 기성세대는 아들, 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기성세대에게 이론의 실탄을 공급해야 할 사람은 나 같은 기자나 학자들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거운 책임을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