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會昌씨는 이제 우파에게는 反面교사로서 의미가 있다. 우파가 그의 실패와 한계를 정확하게 분석하면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12월 초 여중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하여 반미시위가 확산될 때 李會昌 후보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반미는 안된다][미군은 민사상의 책임을 지고 금전적 보상을 하지 않았는가][소파 개정을 할 경우 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 군인들이 공무상 교통사고를 냈다가 그 나라 감방에 갈 수 있다][반미운동이 심해지면 미국내에서 반한운동이 일어날 것이고 우리 상품 수출에 큰 타격일 입게 된다][주한미군 철수 요구는 김정일만 이롭게 하는 자해적인 선동이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서, 또 미군이 민사상 책임을 졌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 멋도 모르고 반미시위를 하고 있는 이들을 교육하면서 반미시위에 제동을 걸고 나왔다면 물론 어용언론과 좌파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면 보수층은 이회창을 보호하는 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소신을 지키기 위해 선동과 여론에 맞서는 지도자는 비장하게 보인다. 이것은 우파 지도자에게 어울리는 이미지이다. 이회창 후보는 젊은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할 필요도 없었다. 잘못된 여론이나 언론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자세는 감동을 준다.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선거에서 떨어져도 좋다고 나설 때 비판자보다 더 많은 지지자가 몰려드는 법이다. 이회창 후보는 더구나 거리로 나서지 않은 다수 보수층을 우군으로 둔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 후보가 좌파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당했을 때 이 우군이 침묵하고 있었겠는가. 자연히 좌우 전선이 형성되었을 것이고 선거는 이념대결로 갔을 것이다.
  이회창 후보가 이렇게 했더라면 언론도, 정부도 반미시위에 제동을 거는 쪽으로 선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회창 후보가 좌파 편으로 갔었는데도 한 3일 지나니 언론과 정부도 반미 자제를 요청하는 쪽으로 움직이지 않았나.
  만약 이회창 후보가 3일만 버텼더라면 여론이 그를 따라갔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는 선거판의 주도권을 잡았을 것이며 승리했을 것이다. 상황을 만드는 사람이 최종승자가 되는 것은 이 세상사의 법칙이 아닌가.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것도 그 지지세력이 상황을 주도했기 때문이었다. 이회창 후보는 상대가 만든 반미상황을 따라갔다가 저 모양이 된 것이다.
  이회창 후보의 패인을 두고 사이버 선거에서 실패했다느니, 이미지 메이킹이 실패했다느니 하지만 그것은 전술적인 면에서 따지는 지엽적인 것이다. 우파는 원래 국가와 민족을 자신의 정체성과 일치시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이미지는 부드러울 수가 없다. 좌익무장집단인 김정일과 대결하는 입장에 있는 한국의 우파 지도자는 믿음직스럽고, 강인하며, 비장하게 보여야 하고 실제로도 그래야 한다. 그런 이미지는 저절로 우러나는 것이 아니고 가의 내면 깊은 곳에서 저절로 우러나야 한다. 이미지는 이념과 인격의 반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