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파정치세력의 챔피언임을 자임했던 한나라당은 혼돈속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투표당일까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충격이 더했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체질은 한국 우파의 체질과 비슷했다. 李會昌씨도 그 조직속에서 생활하다가 보니 비슷한 생각에 젖었다.
  이념무장이 잘 되어 있지 않다가 보니 행동에 확신과 전략과 지속성이 없었다. 反美시위 같은 돌발사태가 생기면 즉흥적 대응을 하여 전략방향과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무엇보다도 한나라당은 국민 교육기능이 마비되어 있었다. 국민들에게 이회창 후보와 당의 이념과 정책을 알리고 납득시키는 노력이 조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의사당 주변을 정치의 主무대로 삼다가 보니 대중과 유리된, 세상이 급하게 돌아가는 것에 둔감한 굼벵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회창 후보가 반미시위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반미시위에 후보가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건의한 사람은 당내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우파 정당이 아니란 이야기이다. 反美냐 親美냐를 선택해야 할 때 우파 이념을 헌신짝처럼 던지고 반미에 동참할 수 있는 정당은 이념정당이 아니라 기회주의적, 또는 권력기생적 우파 정당이란 이야기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환골탈태는 이념정립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달간 토론을 해서라도 왜 정치를 하는가, 왜 정권을 잡겠다는 것인지, 국가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가겠다는 것인지를 정리하여 국민들 앞에 내어놓아야 한다. 간단명료하게 정직하게 그리고 쉽고 구체적인 말로써.
  이념정립이 정확하게 되면 전략과 정책도 일관성과 지속성을 가진다. 선거란 것도 결국은 정당이 이념과 정책을 유권자란 소비자들에게 파는 행위이다.
  정당이 우파 이념을 정치적 가치관으로 확실하게 공유하게 되면 가장 큰 주제는 안보문제, 북핵문제, 북한인권문제, 노사문제, 복지문제, 주5일제 반대 등등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한나라당이 북한인권 문제를 중점적으로 제기하여 내셔날 아젠다(national agenda)로 끌고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원내 다수당으로서 입법권을 쥐고 있으므로 노무현 정권의 對北정책을 견제하고 때로는 참여도 할 수 있다. 미국 중국정부에 대한 야당외교도 가능하다. 북한인권탄압자에 대해서 '공소시효 없이 통일 후에도 처벌하겠다'는 내용의 입법이나 선언도 할 수 있다. 국제인권 단체와의 공조도 할 수 있다.
  한국의 좌파에 대해서는 '두 여중생 사망에 대해서는 그렇게 흥분하더니 김정일의 수백만, 수십만 인간말살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느냐'고 비수를 들이댈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친북좌파를 반북좌파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
  이런 정책은 이념적 뒷받침을 받을 때만이 지속성이 있고, 입체적으로 전개할 수 있으며, 유권자들을 교육시킬 수 있고 선거 때 표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기회주의적 보수가 아니라 이념적 보수였다면 작년에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정권을 '악의 축'이라고 했을 때 이를 지지하고 나왔어야 했다. 우리 국민들의 60-70%가 김정일 정권을 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뭣이 두려워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우파의 신뢰를 잃어버렸단 말인가. 만약 이때 이회창 후보가 좌파와 여당의 공격을 각오하고 '우리는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을 지지한다'라고 나섰다면 우파의 결속은 물론이고, 그를 이념에 충실한 국가지도자감으로 국민들 속에 인상심었을 것이다. 이회창씨가 정계은퇴를 한 뒤에도 그에 대한 이미지가 가슴에 남지 않은 것은 감동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동은 역풍에 맞설 때, 대담한 승부를 할 때, 자신을 내던질 때 생기는 것이고 그런 행동은 이념적 가치관이 뒷받침되어야 나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환골탈태는 중앙당과 지구당 조직을 없앤다는 따위의 아주 지엽적이고 형식적인 데서 가능하지 않다. 정당의 魂인 이념을 투명하게 갈고 닦아 국민들 앞에 내어놓는 내면적이고 철학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 패션처럼 하는 환골탈태는 국민들을 식상시킬 뿐이다.
  정당에서는 정책이 다른 사람들이야 동거할 수 있겠지만 이념이 다른 사람들은 동거할 수 없다. 가치관이 다른데 어떻게 같은 정당을 할 수 있나. 김정일을 통일의 동반자로 보는 사람과 통일의 걸림돌로 보는 사람은 같은 정당에 있어선 안된다. 자유민주통일만이 合憲的인 통일방안인데 두 개의 다른 이념을 허용하든지 섞어버리자는 연방제 통일방안을 찬성하는 사람과 동거한다는 것은 이념적 부패이다. 이념정립 후 떠날 사람은 떠나고 올 사람은 받아주어 선명한 우파정당으로 거듭 태어난 한나라당이 정당개혁, 세대교체를 추진해야지 그런 선결절차를 생략한 개혁은 일회용으로 보일 뿐이다. 정책은 다양해도 좋지만 이념은 선명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善惡의 문제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