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층은 아래로!
  
  저는 1970년대 부산에서 국제신문 사회부 기자로 일했습니다. 당시는 反骨정신이 곧 기자
  정신이라고 배웠고 정부와 富者들을 비판하는 것이 正義라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부산의 한
  골프장에 갔습니다. 이용객들의 명부를 보고 공무원들의 이름만 뽑아냈습니다. 국세청, 관
  세청, 정보부 소속원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의 골프장 이용회수와 요금을 곱하니 봉급보다도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명단을 적어 기사로 썼는데 신문에 실리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골프를 치지 않습니다. 젊은 기자 시절의 그런 경험 때문이 아니고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변하여 요사이는 중고생부터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으니 골프를 부자들
  의 놀음으로 보던 저의 30대 기자 시절 이야기는 石器 시대의 신화가 된 기분입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도 골프, 헬스, 에어로빅이란 단어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을 보
  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유념해야 될 일입니다.
  
  이번에 盧武鉉 후보를 찍은 사람들 가운데는 골프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李會
  昌 지지자들 가운데는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번 선거는 그러한 계층 대결
  이었던 면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보수층은 우리 사회의 소외층, 또는 서민층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는지,
  그들이 보수층의 대표였던 李會昌 후보를 어떤 시각으로 보았는지에 대해서 느낀 바가 있었
  을 것입니다.
  보수층, 또는 주류층의 도덕관은 흔히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고 부릅니다.
  고귀할수록 그에 따른 의무도 중하다는 뜻입니다. 유럽에서는 전쟁이 나면 귀족들이 앞장을
  서 싸웠습니다. 위기 때 생명을 던져 국가를 지켜낸 귀족들이기 때문에 평소에 큰 저택에서
  승마를 즐기면서 살아도 서민들은 양해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우리 나라 양반들은 군 복무를 면제 받았고 전쟁이 나면 官軍은 도망가기에 바
  쁘고 義兵이 일어나 싸우곤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온 서민들은 양반이나
  엘리트에 대해서 존경심 대신 의심과 불신, 그리고 질투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李會昌 후보는 두 아들의 병역문제로 해서 서민층의 감정을 다스리기가 어려웠고 이번 선
  거에서 서민층 표의 상당부분이 盧武鉉 후보로 가는 것을 붙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高貴함
  이 없는 高位인사는 서민들의 외면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보수층은 이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나는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과 조직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가난한 사람들, 아
  픈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탈북자를 돕는 데 돈을 썼는가, 아들
  딸이 흥청망청 돈을 쓰도록 용돈을 주면서 국민의 윤리와 애국에 대해서 무엇을 가르쳤던가.
  이런 물음에 대해서 '나는 별로 한 일이 없다'라고 생각하신다면 달라져야 합니다. 이번 선
  거 결과에 대해서 '억울하다'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골프 치고 헬스 가고 호텔에서 비싼 요리 먹었다는 것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비싼 밥을 먹는 것은 값진 행동을 하라는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천원짜리 라면 먹은 사람은 천원 정도의 일을 하면 되지만 십만원짜리 고급요리를 먹는 사
  람은 10만원 정도의 일을 하여 그 결과가 이웃과 서민층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자본주
  의의 윤리입니다.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열심히 일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더 열심히 일하
  라는 째찍이기도 합니다. 우리 보수층은 자신의 자원을 써야 합니다. 돈을 잘 써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 그리고 애국하는 조직과 사람들, 탈북자들을 위하여 써야 합
  니다. 나이값을 해야 합니다. 자녀 후배들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스스로 공
  부해야 합니다. 직위 값을 해야 합니다. 조직의 윤리를 바로 세우고 국가와 민족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고 구성원들을 건전한 국민으로 키워야 합니다.
  한국의 좌파가 권력을 잡았으니 이제 그들은 올라가고 보수층은 내려가야 합니다. 사회의
  바닥을 알아야 합니다. 사회부 기자처럼 밤낮으로 구석구석을 돌아다녀야 바닥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있는 사람들, 곁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도와주고 접촉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 그것입니다.
  탈북자들을 돕는 소수의 義人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도와주면 돈으로 목숨을 삽니다. 1인
  당 수백만원입니다. 그런데도 탈북자 돕기 운동 단체로 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좌파들에게 '당신들은 왜 탈북자 인권 문제에 침묵하느냐'고 욕할 수 있습니까.
  보수층이 행동해야 합니다.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자세를 낮
  추는 것입니다. 낮추어야 다시 올라갈 수 있습니다.
  고귀한 것(noble)보다 더 귀중한 것은 겸손한(humble) 것입니다. 겸손해야 고귀해질 수 있
  습니다. 고귀한 마음이라야 不義와 억지를 대할 때 투지가 생깁니다. 일부 젊은이들의 무지
  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명감이 생깁니다. 高貴해야 역경에서 버틸 수 있습니다. 高貴한 정
  신을 가진 집단이 나라를 이끌 때 國家의 格이 높아집니다. 나라에도 인격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