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오류 가능, 수검표가 신뢰성 확보하는 길'
  
  국민의 축제인 16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그러나 대선 당선자 발표 후 온 국민이 떠들썩해야 할 잔치가 일부만의 잔치로 그치고 있다.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은 선거 결과에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전자개표를 믿지 못하겠다”며 수검표 추진운동을 벌이고 있다.
  
  21일 오후 4시 1천여명 이상의 네티즌들이 한나라당사 앞에 모여 수검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앞으로도 촛불시위 등 다양한 방식의 수검표 요구시위가 계속될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 수검표문제는 가라앉기 힘들 전망이다.
  
  특히 자칭 ‘국가정보원에 17년차로 근무하는 중견간부’라는 사람이 인터넷에 ‘양심선언’이라는 글을 올리자 ‘전자개표’에 대한 네티즌들의 불신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
  
  아직 신분이 미확인된 '양심선언자'는 양심선언이라는 글을 통해 “오늘 야당후보의 고별회견과 그 눈물을 보면서 이번 대선에서 차마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른 저와 동료를 대신하여 이제서나마 속죄하는 마음으로 양심선언을 한다”고 밝혔다.
  
  이 글을 접한 네티즌 가운데 일부는 떳떳하게 신분을 밝히지 않은 점을 의심해 “신빙성이 없다”고 말했으나 또 다른 네티즌들은 투입인원 및 조작내용 등의 구체적인 설명이 들어 있어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다”고 평가하는 등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처럼 ‘전자개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면서 일부 국민들은 중앙선관위가 이번 대선 투표 결과에 대해 재확인을 안 했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또 이들은 “다음 선거에서도 이번과 같은 문제가 일 것을 우려한다면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국민들에게 전자개표의 신뢰성을 심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6대 대선 개표 직후부터 전자개표상의 오류와 기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는 것과 관련 한나라당은 선관위에 ‘투표함 보존처분’ 문제를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일부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이번 대선 개표방식을 비교하며 “하물며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경우에도 정확한 점수를 산출하기 위해 첨단기술을 동원한 후에 수작업을 거치며 이 작업이 최소 6일 이상은 걸린다”면서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를 1차례의 기계적 방식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번 2002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경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학생들이 제출한 67만5,000여장의 OMR(Optical Mark Reader) 카드를 판독, 채점하는 과정에 각종 첨단 정보기술을 동원했다. 또 정확한 점수를 산출하기 위해 각기 다른 3대의 채점 프로그램에서 점수를 산출하며, 1만장 정도의 답안지를 샘플링한 뒤 사람 손으로 이를 다시 채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나라당은 개표와 관련, 대선 이틀 전인 지난 12월 17일 선거 개표 과정에서 사용될 전자개표기의 오류 가능성을 놓고 중앙선관위와 신경전을 벌인 끝에 수검표(수작업)를 하기로 했으나, 선관위는 개표요원 동원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그대로 전자개표방식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지난 12월 15일 선관위 관계자들과 전자개표기 시연회를 가졌으나 이날 투표용지의 4% 가량이 미분류로 처리되는 등 문제가 발생, 전자개표기를 믿을 수 없다며 수작업으로 개표할 것을 주장했다. 또 한나라당은 선관위와 1시간 넘게 설전을 벌인 끝에 “미분류표 확인작업과 재검표까지 마친 뒤 개표결과를 공표하고, 전국 9백60대의 전자개표기에 대한 사전보안을 강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16일 서울 용산 선관위 직원들은 대선 개표작업에 사용될 전자개표기를 점검하며 “이 장비는 분당 2백40장까지 처리하며 문제 있는 표는 미분류로 처리하므로 오차율이 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컴퓨터 전문가는 “개표기 자체의 오류나 집계 프로그램의 조작 등의 의혹이 있을 수 있다”면서 “집계 프로그램은 간단한 변경만으로도 수치를 조작할 수 있어, 오해를 줄이고 전자개표의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수검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문가는 “전산관련자료의 조작은 아주 위험한 여론 조작기구가 될 수도 있다”면서 그 사례로 “1986년 필리핀의 대통령 선거에서 행하여진 통계조작은 정권의 몰락까지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선관위가 해킹방지에 대해 어느 정도 신경을 썼는지도 의문”이라며 “선거관련 시스템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전문가들은 해킹과 관련, 기술과 의지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 선관위는 12월 21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개표조작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중앙선관위는 '이번 대통령선거의 개표과정에 한 점의 의혹도 발생되지 않도록 정확을 기하기 위하여
  
  ○개표참관인이 참여한 가운데 개표기를 가동하였으며 개표기가 분류한 모든 투표지를 개표사무원이 육안으로 재확인하여 후보자별로 분류된 투표지에 타후보자의 표나 무효표가 섞여 있지는 않는지와 개표기가 분류·기재한 후보자별 득표수와 실제 투표지 매수가 일치하는지를 심사·확인하였고,
  
  ○ 개표결과를 투표구별로 전송하는 과정에서의 자료조작을 차단하기 위하여 전산 집계와는 별도로 투표구별로 후보자별득표수를 시·도위원회에서 팩시밀리로 송부받아 전산 집계된 후보자별득표수와 대조하여 그 일치여부를 확인하였으며,
  
  ○ 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일 20시 이후부터 개표종료시까지 시간대별로 후보자별 득표수를 팩시밀리로 송부받아 전산집계된 후보자별득표수와 대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운영하였으며,
  
  ○ 개표소에서 구·시·군 위원장 공표가 끝난 후보자별 득표수가 기재된 개표상황표 사본을 각 정당의 개표참관인과 언론사의 취재기자에게 제공하였고, 각 정당은 언제든지 전송하기전의 후보자별 득표수와 전송·공개된 후보자별 득표수를 대조할 수 있도록 공개하면서 공정 정확한 개표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또 전자개표에 따른 조작 등의 의혹을 유포한 관련자를 처벌하도록 12월 21일 대 검찰청에 수사의뢰했다.
  
  한편, 1987년 12월 16일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평민당 김대중 총재는 ‘컴퓨터 조작’을 이유로 당선에 불복했다. 당시 평민당과 국민운동본부 등 재야 단체는 선거무효화 공동투쟁위원회 구성방침까지 정해놓고 있었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운동본부의 결의를 나는 전폭 지지한다. 국민의 대응을 주의 깊게 주시하겠다. 내가 먼저 ‘이렇게 하자’고 강권하는 태도는 취하지 않겠다. 전 공무원과 국영기업체, 심지어는 개인 기업까지 여당의 선거운동을 했고 여당이 선거자금을 독점하고 텔레비전 방송을 악용하고 야당 참관인을 매수하고 부재자 투표에서 나한테 온 50만 표를 해먹고… 심지어 2등과 3등의 순위조작까지 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또한 당시 선거가 종료된 지 한 달이 지난 1988년 1월 16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김승훈 신부와 천주교 공정선거 감시단 단장 오태순 신부 두 사람은 법원에 ‘대통령선거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1989년 5월 11일자로 원고 패소 판정을 받았다)
  
  당시 선거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당시 선거 개표작업은 개표수집만 컴퓨터를 이용했을 뿐 수작업을 했음에도 ‘컴퓨터 조작’이 운운됐다”면서 “개표에서부터 집계까지 컴퓨터를 이용한 지금의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당시 컴퓨터가 생소한 시기에서도 ‘컴퓨터 조작’이 거론됐다면 최첨단 장비를 이용하고도 해킹 당하는 요즘 시기에 국민들이 컴퓨터 조작의혹을 거론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의혹을 해소하는 길은 수검표 실시에 있다”고 덧붙였다.
  
  자유시민연대 김구부 사무총장은 “이번 대선의 결과를 불신하는 국민들에게 오해를 사지 않도록 선관위는 수검표를 통해 전자개표의 신뢰성을 검증해야 한다”면서 “이번 대통령 선거가 한치의 의혹도 없이 국민의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차기 대통령으로서, 여당으로서 또 야당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혜식 기자 king@independen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