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義불감증 환자들-巨惡을 용서하고 小惡만 공격한다면
  
  1979년10월26일 朴正熙 대통령을 사살했고 그 때문에 사형된 金載圭 당시 정보부장에 대해 명예회복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金載圭는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을 죽인 내란목적의 살인범이었습니다. 저는 10·26사건을 취재하고나서 몇 가지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김재규는 미국의 구체적인 조종을 받지 않았다.
  -살해동기는 복합적인데 김재규의 정의감, 우직함, 민주주의에 대한 同感도 여러 동기 중에포함된다.
  -가장 큰 동기는 차지철을 편드는 박정희에 대한 감정폭발이었다.
  -김재규의 擧事는 역사발전에 기여한 면이 있다. 피로한 박정희 체제를 무너뜨림으로써 대한민국이 다시 체제를 정비하고 뛸 수 있게 했고 민주화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박정희로서도 그런 죽음이 다행이었다. 박정희가 죽음을 맞으면서 보여준 초인적인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남겼다. 박정희가 그런 사건 없이 계속 집권했다면 군사쿠데타나 민중봉기로 비참하게 밀려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저는 한국인의 다행은 박정희 죽음의 타이밍이고 북한사람들의 불행은 金日成의 長壽였다고 말하곤 합니다.
  
  김재규의 명예회복 운동은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행위가 정당했다는 생각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그런 식으로 살해되었어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거의 모든 여론 조사에서 「한국 현대사의 최고 인물」로 꼽히고 있는(그것도 압도적인 표차로서) 박정희를 「마땅히 총맞아 죽었어야 할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저는 김재규의 거사가 역사발전에 기여한 점이 있다고 보지만 그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또 법률적으로 옹호할 생각은 나지 않습니다. 김재규가 김일성이나 김정일이나 히틀러나 스탈린을 쏘았다면 문제가 다르지요.
  
  살인이 정당화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질범이 양민들을 여러 명 붙들고 요구조건을 내건 뒤 인질들을 한 명씩 죽이고 있는 상황이 그런 경우입니다. 히틀러라는 전쟁광을 제거할 때 2차 세계 대전을 早期에 끝냄으로써 수많은 인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한 상황도 그런 경우입니다. 그래서 비록 성공은 하지 못했지만 히틀러 암살미수사건을 일으켰다가 사형된 사람들은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박정희 살해는 이런 경우와는 다릅니다.
  
  만약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를 정당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김정일암살도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해야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김정일 한 사람의 목숨이 유지되는 것과 북한주민들의 人命 보존 사이엔 분명한 相剋 관계가 존재합니다. 지난 5년 사이 굶어 죽은 북한사람 수백만 명의 목숨은 김정일이 권좌에서 밀려났더라면 살릴 수 있었던지 적어도 그 숫자를 줄일 수 있었을 목숨들입니다. 김정일이 먹고 살기 위해 탈북하는 동포들을 막는 바람에 굶어죽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됩니까? 북한동포들이 김정일이란 反인류범죄자에게 인질로 붙들려 있다는 이 객관적인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질범을 물리적으로 제거, 거세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정당합니다.
  
  그런데 김재규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사람들, 박정희-이승만-전두환을 규탄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런 强度로써 김정일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기란 참으로 힘듭니다. 김일성-김정일에 대해선 애써 침묵하면서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을 무자비하게 또 과장되게 비난하는 사람들의 정의감은 무엇입니까. 정의감은 균형감각 위에 서지 않을 때는 증오나 한풀이 차원으로 전락합니다.
  
  조국 근대화의 기수의 죽음을 축하했던 사람이 김일성의 죽음에 조문하자고 한다든지, 광주사태를 학살이라고 부르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살인마라고 공격해온 사람들이 김일성-김정일을 민족세력이라고 옹호하고 북한의 경제난은 미국의 봉쇄 때문이라고 변호한다든지 하는 사람들은 정의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김정일에 대한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정의불감증 환자가 어떻게 박정희한테만 분노를 느낍니까. 그런 감각기관엔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김정일에 대해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이 북한동포들을 동정하고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논리로써 북한동포들을 동정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김정일에게 분노를 느낄 리도 없습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능력중의 하나는 大小를 구별할 줄 아는 것입니다. 小惡을 미워하는 데 급급하다가 정작 중요한 巨惡을 용서할 수가 있습니다. 한반도의 巨惡은 김정일 집단입니다. 이를 한시라도 잊지 않아야 우리는 정의로운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