裵振榮(월간조선 기자)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둔 어느날 아침, 캐나다 교포 한 분이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었다.
  
  그 분은 몇 달 전에도 전화를 걸어와 西海교전과 관련된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하면서,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느냐? 내가 5년 전 떠나온 그 나라가 아닌 것 같다』고 비분강개했던 분이었다.
  
  그때 그 분은 『근처에 사는 南美출신 이민들에게 「고국이 그립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고국은 가난하고 혼란스럽고 부패해서 그립지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다』면서 『난 비록 고국을 떠나 있지만, 여전히 한국을 사랑하고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다. 내가 돌아갈 수 있도록 나라를 지켜달라』고 호소했었다.
  
  이번에도 그 분은 『한국이 南美처럼 돼가는 것 아니나』면서 애를 태웠다. 그 분은 「개혁」을 내세운 左翼 선동정치가 차베스를 대통령으로 뽑은 탓에 內戰 위기에 처해 있는 베네주엘라의 이야기도 했다.
  
  하기야 「개혁」을 내걸고 민중을 선동하여 정권을 잡고, 끝내는 나라를 破局으로 이끈 지도자가 어디 차베스뿐이랴?
  
  15세기 말 이탈리아 피렌체에도 그런 선동정치가가 하나 있었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바로 그 사람이다.
  
  - 수도사 사보나롤라-
  
  1494년 8월 프랑스왕 샤를8세는 나폴리 왕국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면서 9만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群雄割據(군웅할거)하던 이탈리아의 여러 중소 도시국가들은 프랑스군의 침공을 맞아 恐慌(공황) 상태에 빠져 들었다. 르네상스의 중심 도시였던 피렌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도미니크회 수도사인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였다. 이미 수년 전부터 교회의 타락과 사회의 모순에 대해 경고해 오던 사보나롤라는 프랑스군이 침공하자 『이것이야말로 신이 내리는 노여움』이라고 외치면서 민중들을 선동했다. 여기에 격앙된 피렌체인들은 피렌체의 실질적 지배자이던 메디치家를 축출하고, 사보나롤라의 敎示(교시)에 따르는 神政체제를 수립했다.
  
  이렇듯 사보나롤라가 피렌체의 지도자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당시 피렌체인들이 느끼고 있던 정신적 공허감을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피렌체의 번영을 이끌었던 로렌초 데 메디치가 2년 전 사망한 후 피렌체인들은 커다란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거기에 무역·금융업의 침체로 인한 경제 악화와 외세의 침략까지 이어지자 피렌체인들은 더더욱 자신감을 상실하고, 자신들이 의지할 수 있는 새로운 권위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보나롤라는 「민중」,「자유」,「민주」의 기치 아래 일련의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먼저 로렌초 데 메디치의 통치 수단으로 기능했던 「70인 위원회」가 폐지되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제도를 모방하여 3200명으로 구성되는 국회와 국회의 위임을 받아 국정을 운영하는 「80인 위원회」가 구성되는 정치체제의 개혁이 단행되었다.
  
  또 사보나롤라는「사보나롤라의 소년들」이라고 불리는 어린 소년들을 앞장세워 사치품·음란 서화 따위를 몰수하여 광장에서 불태워 버리는 「허영의 소각」행사를 갖는 등 시민들의 「의식 개혁」도 추진했다. 개혁의 열풍이 불면서 한동안 일반 시민들은 물론 미켈란젤로·봇티첼리 같은 巨匠(거장)들도 개혁의 대오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러나 기성의 모든 가치들을 부정하고, 중세 세계의 중심이던 로마 교황과도 날카롭게 대립하는 사보나롤라 체제는 안팎으로 많은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거기에 덧붙여 기대만큼 국정이 쇄신되지도 않고, 경제나 對外관계도 나아지지 않자, 민심은 서서히 사보나롤라로부터 떠나기 시작했다.
  
  1498년 3월말, 사보나롤라의 반대파인 프란체스코회의 수도사들은 사보나롤라派에게 『兩派의 수도사들이 불길 속을 걸어 어느 쪽이 신의 은총을 입은 진정한 예언자인지를 입증하는 「불의 시련」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 사보나롤라파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많은 시민들은 그들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그리나 「불의 시련」이 예정된 4월7일, 사보나롤라파는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며 대결을 미루다가 오후 늦게 소나기가 쏟아지자 『신이 「불의 시련」을 원치 않으시는 증거』라며 아예 대결을 무산시키려 했다. 이 순간 「신의 권위」에 의존해 통치해 오던 사보나롤라의 허상이 드러났다. 분노한 시민들은 사보나롤라와 그 일파를 체포, 종교 재판에 회부했다.
  결국 사보나롤라 등은 5월23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사보나롤라 死後, 피렌체에는 共和政으로 돌아갔지만, 종전의 盛世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피렌체는 혼돈을 거듭하던 끝에 결국은 메디치家가 專制권력을 휘두르는 토스카나 公國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 사보나롤라는 왜 실패했나-
  
  마키아벨리는 훗날 「군주론」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지도자로서 새로운 통치 방법을 시행하려고 시도하는 것보다 위험하고 어려우며 성공이 의심스러운 것은 없다. 왜냐하면 개혁을 단행하는 이는 낡은 질서 하에서 혜택을 입어 온 모든 사람들을 그의 적으로 삼아야 하고, 또한 새로운 제도 하에서 혜택을 입게 될 사람들도 다만 소극적인 지지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마키아벨리는 『사보나롤라는 그에 대한 민중의 신뢰가 흔들리자마자 새로운 통치를 위한 그 자신의 제도 속에서 몰락했다. 그는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믿음을 지속시켜 줄 수 있는 수단을 가지지 못했으며, 不信者들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오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명단이 발표되었다. 대부분이 현장 경험이 없는 대학교수들이었다. 그 가운데는 단순히 개혁을 넘어 우리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만한 급진적 주장을 펼치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들 가운데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믿음을 지속시켜 줄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는 자, 不信者들에게도 믿음을 줄 수 있는 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