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나고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됐지만 여전히 여기 저기서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느니, 미군이 철수하느니, 주가가 떨어지느니, 뭐하나 기분 좋은 소식이 없다. 며칠 전 서울 강남 압구정동에 사는 사모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요즘 살맛이 안 난다면서 '전라도 사람들과 애들이 무섭다'고 했다. 경상도 출신에 50대 중반인 이 사모님의 얘긴 즉슨 전라도 사람들이 이번에도 90% 넘게 몰표를 줄지 몰랐고, 온갖 정성 다 바쳐 기른 딸까지도 자신의 얘기를 무시해 기운이 빠진다는 것이었다.
  
  이번 선거 끝난 뒤 젊은 세대가 승리했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 벌써 자신이 뒷방 늙은이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살맛이 안 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면서 평균수명은 늘어나는데 50대도 물러가라면 대체 앞으로 뭐하고 살라는 거냐고 반문했다. 50대를 구세대로 몰아버리는 30대도 불과 십수년 후면 구세대가 될테고, 오늘의 함성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에게 꽂히게 될 거라는 뼈있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길거리에 나가서 젊은이들을 보면 자신과 생각이 완전히 다른 애들이라는 생각에 밉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모르는 젊은이들에게도 정이 갔는데, 요즘은 세대간의 대결이라는 얘기를 워낙 들어서인지, 뭔가 전열을 다듬어 대결을 벌여야 할 상대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골프를 치러 다니는 중년의 살만한 분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이메일을 사용하는지, 인터넷 서핑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대개 컴퓨터는 골치 아프다고 얘기했다. 이들은 대개 핸드폰 음성메시지 확인도 잘 못하고, 문자메시지 보내는 것도 힘들어하는 부류들이다. 그런데 컴퓨터보다 훨씬 어려운 운전도 잘하고 골프도 싱글 수준이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세대간의 대결을 다른 말로 얘기하면 '온라인 세대의 승리, 오프라인 세대의 패배'라고 할 수 있다. 오프라인 세대가 골프장에서 삼삼오오 결전의 의지를 다질 때, 온라인 세대는 사이버 공간에서 서버를 다운시켜가며 수백만이 마음을 합쳤다. 오프라인 세대의 경우 모르는 사람에게 웃음을 날렸다가는 '실없는 사람'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나, 온라인 세대는 '모이자'는 번개가 뜨면 순식간에 집결하여 생면부지의 사람들끼리 '님'이라 부르며 바로 동지가 되어버린다.
  
  12월 18일 밤,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와의 공조를 파기했을 때, 온라인에서는 반드시 투표해야 한다는 긴급 호소문이 돌았고, 여러 포털사이트가 몇백만회의 조회를 견디다 못해 다운되기까지 했다. 오프라인 세대들이 TV로 공조 파기 소식을 듣고, '우리가 이겼다'며 안심하고 발뻗고 잘 때, 온라인 세대는 밤잠도 안자고 와글와글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온라인에서는 '부모님의 주민등록증과 여권, 운전면허증을 숨기자. 새벽에 아파트에 배달되는 신문을 수거하자'는 얘기가 떠돌았다.
  
  오프라인 세대는 '잘 되겠지'하는 마음에 골프채를 메고 선거 전날 해외로 골프치러 떠났지만, 온라인 세대는 스키타러 갔다가 한밤중에 긴급 타전을 듣고 모두 달려와 오후부터 투표장이 북적거렸다. 실제로 출구조사에서 오후 세 시부터 노무현 후보가 앞서는 걸로 나타났다고 한다.
  
  1999년 3월호 월간조선에 '1920년대 출생자들'에 관한 기사가 나가자 모 로터리클럽에서 나에게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사회저명인사들로 구성된 클럽에 가서 대체 내가 무슨 얘기를 할 것인가. 몇 번 거절했으나, 관계자께서 그냥 기사 내용을 얘기하면 된다며 자꾸 부탁을 하여 하는 수 없이 프라자호텔에 갔다. 전직 국무총리, 전직 상공부 장관, 현직 기업체 사장 등 쟁쟁한 분이 100여명이나 모였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15분이었는데 취재를 하게 된 배경과 1920년대 출생자들의 활약상, 그에 대한 감사를 다 전했는데도 시간이 5분이나 남았다. 뭔가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은 미리 생각한 얘기가 있었지만, 초로의 신사들을 만나니 너무 동떨어진 얘기같아서 망설여졌던 것이다. 어쨌든 마무리를 해야겠기에 말을 꺼냈다.
  
   '여러분들이 고생하여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발전했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피로써 나라를 지키고, 조국 근대화의 주역으로 땀흘리신 여러분들의 노고를 젊은 세대가 알아주지 않는 형편입니다. 젊은 세대가 알아주지 않는 것을 섭섭해하기보다 여러분들이 스스로 나서서 공적을 알리십시오. 아무도 그것을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공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알리는 길은 인터넷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 아버지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나라를 일구어왔는지 알리시기 바랍니다.'
   당시 막 인터넷이 활성화되던 시기여서 외람되지만 그분들에게 그렇게 권했다. 하지만 그 일이 지금까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 인터넷 박물관(www.516.b409.com)을 운영하는 정용희 씨(뉴스코리아24 대표)의 경우 개인 돈을 들여 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자료를 수집하고 가공하는데 수억원의 돈이 들었고 당연히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선견지명이 있었던지 독립운동가 가문의 딸과 결혼했기에 장인의 그늘 아래 들어가 비는 피할 수 있었다. 인터넷 박물관을 좀더 활성화하고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을 하기 위해 정사장이 노트북을 들고 3공 때의 인사들을 찾아갔을 때였다. 후원을 부탁하며 인터넷 박물관을 보여줬을 때 대부분의 어른들은 시큰둥했다고 한다. 번듯한 건물이 아닌 화면 속의 박물관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루 접속자가 수천 명에 이르고 해외교포들에게 까지 알려진 인터넷 박물관의 위력을 제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 앞에서 정용희 씨는 큰 좌절을 맛보았다. 하지만 정사장은 꿋꿋이 박정희 대통령 인터넷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어른들은 '젊은애들이 무섭다, 젊은애들이 도무지 말을 안 듣는다'고 푸념할 게 아니라,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온라인을 외면하고 온라인에 무지해서는 결코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 오프라인 세대가 끼리끼리 모여 다니며 골프를 칠 때, 온라인 세대는 일순간에 광장으로 몰려든다. 컴퓨터를 채팅을 통해 탈선의 현장으로 안내하는 나쁜 기계 정도로 알고 있는 무식한(?) 오프라인 세대가 줄지 않는 한, 온라인 세대와 눈높이를 맞출 날은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딸에게 배신감을 느낀다는 강남의 사모님은 봄 가을이면 일주일에 세 번은 골프장을 찾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핸디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정성으로 컴퓨터를 배우고 딸이 온라인에서 무슨 대화를 하는지 관심을 가졌다면, 딸을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른들은 '애들이 우리 고생한 거 너무 몰라준다'라고 푸념하지 말고, 신세대들의 광장에 들어가 그들에게 고생담을 털어놓아야 한다.
  
  골프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네시간 동안 걸으면 비즈니스도 잘되고 건강도 좋아진다고. 탁 트인 필드에 나가면 속이 시원하다면서 나에게도 골프만 배우면 머리를 올려주겠다고 장담하는 분들. 요즘 담배연기 자욱한 PC방에서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는 '젊은애들'에게 졌다며 의기소침해 있어, 내가 골프를 배워도 필드에 나가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