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고: 史實은 아니지만 事實的
  
  6월3일 밤9-11시30분 동안 서울 신촌의 신영극장에서 이날부터 개봉된 미국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劒鬪士)를 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숨을 멎게 하고 숨을 죽이게 만드는 영화였다. 재미로 치면 ‘클리프행어’나 ‘라이언 일병구하기’정도일 것이다. 감독은 ‘에일리언’의 리들리 스콧, 장군에서 노예로, 다시 검투사로 전락한 주인공 막시무스役엔 러셀 크로우.
  
  배경은 로마의 전성 시대. 명상록으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황제 시대이다. 첫 장면은 지금의 독일 지방에서 벌어지는 야만인 게르만족과 로마군의 전투장면. 숲에서 전개되는 격전의 생생한 연출은 ‘라이안 일병 구하기’의 상륙작전 장면을 연상시키는 實感이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후계자로 망나니 아들 코모두스가 아닌 常勝장군 막시무스를 지명하려고 하는데 이를 눈치챈 코모두스가 아버지를 목졸라 죽이고 황제가 된다. 막시무스는 처형장에서 탈출,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보다 먼저 도착한 황제의 군대가 아내와 아들을 매달아 불태워 죽인다.
  
  막시무스는 노예로 팔려가 인기 있는 검투사가 된다. 코모두스 황제는 콜로세움에서 로마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전쟁놀음을 하는데 막시무스가 등장한다. 코모두스는 영웅으로 떠오른 막시무스를 죽이려 하지만 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막시무스는 관중들의 救命요구로 살아난다.
  
  코모두스의 누나는 막시무스의 옛애인인데 막시무스와 함께 쿠데타 계획을 꾸미다가 실패한다. 코모두스는 콜로세움에서 막시무스와 최후의 결투를 벌인다. 황제는 비겁하게도 시합전에 막시무스의 옆구리를 찔러놓고 비틀거리는 그와 대결하는데…콜로세움을 재현한 모습, 로마시내의 재구성 등 컴퓨터 합성기술을 동원한 연출이 스케일 감각을 더해준다.
  
  특히 콜로세움안에서 벌어지는 자마전투-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군대가 카르타고의 한니발 군대를 격파하는 결전을 흉내낸 경기는 實戰처럼 박력이 있다. 이 영화는 올해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가운데 가장 입장수입이 많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로마기병들은 칼만 쓰지 말을 타고 활을 쏘지 못한다. 로마 기병들은 ?子(발걸이)를 발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을 타고 몸의 균형을 맞출 수가 없었다. 스키타이, 흉노, 몽골의 북방유목민족과, 이들과 연결되어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중국군대는 등자를 쓰면서 말타 채 활쏘는 것을 가장 기초적인 기병전술로 이용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기병들의 돌격장면이 호쾌하긴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 로마기병이 고구려 기병과 붙었다면 고구려 기병들의 활쏘기에 걸려 대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영화는 물론 事實도 史實도 아니다. 코모두스는 검투를 좋아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랑을 받았다. 물론 그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것도 영화에서만 일어난 일이다. 코모두스가 악질 황제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와는 달리 코모두스는 애첩인 기독교신도 마르티아가 타준 독이 든 음료수를 마시고 죽었다. 그렇게 시킨 사람은 친위대장이었다. 체력이 좋았던 코모두스는 독을 마시고도 죽지 않고 저항하다가 욕실에서 목졸려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 이후 무정부상태가 시작되면서 로마제국은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친위대는 황제를 세웠다가 죽이고 또 다른 황제를 추대하는 짓을 되풀이했다. 황제 자리를 경매에 붙인 적도 있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란 이름의 디디한 부자가 아내와 딸의 강권에 못이여 푸짐한 봉급을 친위대에게 줄 것을 약속하고 황제에 낙찰되었다. 원로원은 지금의 리비바에 주둔중이던 셉테미우스 세베루스에게 연락하여 로마로 돌아와 황제가 되라고 충동 출신 질했다. 세베루스 장군은 디디우스가 지불한 돈보다 두 배나 많은 액수를 제의하여 황제자리를 빼앗고 디디우스를 죽였다. 세베루스의 고향은 리비아 트리폴리 근처에 있었다. 지금은 폐허로 변한 랩티스 마그나 유적에 이 유태인 황제의 동상이 서 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맡은 동아건설의 현장이 가까이에 있어 기자도 공사 취재차 방문한 길에 이 동상이 있는 렙티스 마그나 유적을 구경한 적이 있다.
  
  세베루스 황제는 로마 멸망의 큰 요인이 되는 조치를 하나 취했다. 이탈리아 주민들을 제외한 제국내 모든 주민들에게 군복무를 의무화한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 대신 屬州 사람들이 군대로 많이 몰려가 로마시민들이 군대의 주도권을 놓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 지배층을 편하게 하려고 만든 이 제도는 결국 로마를 붕괴시키는 단초를 만들었다. 지배층이 尙武精神을 상실하고 安樂에 젖게 되면 나라는 쇠락한다. 쉬운 길이 곧 망하는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