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지구 온난화와 낙태 등 각종 정치적인 사안에 진보주의자를 대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최근 오는 ‘자비의 禧年(Jubilee of Mercy)’ 기간 동안 모든 사제들이 낙태 여성의 죄를 용서할 권리를 준다고 밝혔다. 자비의 희년은 매 25년 주기로 기념되는 해로 오는 12월8일부터 내년 11월20일까지다.
  
  교황은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동성애자라 하더라도 善한 의지로 주님을 찾는다면 내가 어떻게 그를 심판할 수 있겠는가”라며 “우리는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한다. 동성애자와 이혼자, 낙태 여성에게 자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다. 가난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이 들고 집 없는 사람이 노숙하다 죽은 것은 뉴스가 되지 않으면서 주가지수가 2포인트 떨어지는 것은 뉴스가 된다” 등의 발언을 하며 자본주의를 비판해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기도 했다. 자극적인 발언을 즐기는 그가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과 북한은 같은 언어를 쓰는 한 민족이다. 순교자의 피는 남한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피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모호한 말을 남겼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 ‘교황에게 도덕적 질문을 던지는 좌파 정권’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교황이 베네수엘라와 쿠바 등 좌파 정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다 이들 국가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침묵한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설명이다.
  
  베네수엘라 법원은 11일 야당 민중의지당 대표인 레오폴도 로페스를 反정부 시위 주도 혐의로 14년 형을 선고했다. 로페스는 18개월 가량을 이미 수감돼 지내왔다. 이와 관련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탄압되고 있다. 이번 재판은 적절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아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성명을 각각 발표했다. 로페스를 비롯한 베네수엘라의 인구 96%는 가톨릭 신자이다. 하지만 바티칸은 이번 문제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발표하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달 미국을 방문하기 전에 쿠바를 들를 예정이다. 이코노미스트誌는 “종교 지도자는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대화의 채널을 유지하는 것과 불편한 진실을 언급하는 것 사이에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 쿠바를 방문하는 교황은 이 같은 딜레마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쿠바는 최근 3500명의 죄수에 특별 사면조치를 내렸다. 탄압 정치가 만연한 쿠바에서 이러한 결정은 파격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면 대상자는 형기가 1년이 채 안 남았거나 외국인이었다. 쿠바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국가 안보 위반’ 죄수들은 이번 사면에 아무도 포함되지 않았다. 제이미 오테가 쿠바 추기경이 앞장서서 “쿠바에는 정치범이 아무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월에는 ‘교황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공화당’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교황이 사회적 불평등을 얘기하고 동성애자와 낙태 문제, 기후 변화 등 민주당을 대변하는 입장이라 공화당 대선 후보들이 난처한 상황이라는 기사다.
  
  젭 부시와 마르코 루비오를 비롯한 최소 다섯 명 정도의 공화당 대선 후보가 가톨릭 신자다. 부시는 플로리다 주지사 재임 당시 교계의 입장이라며 낙태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교황의 최근 발언을 인식해서인지 부시 후보는 지난 6월 “나는 나의 교황이나 추기경에게서 정책 조언을 받지 않는다. 종교는 일반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정치적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시도 결국에는 바티칸의 눈치를 어느 정도는 봐야 할 것이라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이다.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가톨릭 신자 86%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미국은 가톨릭 등의 부패를 피해 유럽을 떠난 청교도가 만든 국가이다. 이와 같은 ‘反 가톨릭’ 여론은 20세기 초까지 이어져 왔다. 1960년 대통령에 당선된 존 F 케네디는 미국 역사상 첫 가톨릭 신도 대통령이었다.
  
  20세기 말에 들어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가톨릭 이념과 비슷한 점을 이용해 신자 지지자를 늘려나갔다. 가족과 性(성)의 가치 등에 대한 보수주의자의 이념이 가톨릭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의 탐욕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식의 공화당과 반대되는 입장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가톨릭 신자인 릭 샌토럼 공화당 대선 후보는 “과학은 과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가톨릭 신자는 전체 인구의 22%인 약 6940만 명으로 미국에서 교인이 가장 많다.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백인 가톨릭 교인 중 39%는 중도성향이며 공화당 지지자가 30%, 민주당 지지자가 28%다.
  
  이코노미스트誌는 미국 공화당이 가톨릭 교계의 변화와 黨(당)이 추구해온 가치 사이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쳤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