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시집을 다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낱말은 굶주림이다.

연이어 계속 떠오른 낱말도 옥수수밥, 옥수수가루, 풀죽, 죽 한 공기, 물을 탄 죽그릇, 나물국, 빵 부스러기, 끼니, 꽃제비 등 굶주림과 연관된 낱말들이다. 이는 이 시집이 굶주림에 대한 분노와 절망의 시집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집을 통해 비로소 배고픔과 굶주림이 다른 개념을 지닌 낱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고픔은 먹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태다. ‘배가 고프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먹지 않았다’는 자의성이 개입돼 있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마음먹기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어떠한 형태로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전제돼 있다.

그러나 굶주림은 아무리 먹고 싶어도 먹을 게 없는 현실적 상황이 바탕을 이룬다. 먹는다는 인간의 본능적 자유의지가 현실적 상황에서 상실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북한 사람들은 배고픔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게 아니라 굶주림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남한 사람들이 배고픔과 굶주림의 차이를 얼마나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을까. 북한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을 배가 고프다는 사실로 혹시 오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60평생을 살아온 나만 해도 배는 고파봤지만 단 한 번도 죽음에 이르도록 굶주려 본 적이 없다. 한 줌의 강냉이가루에 물을 한 바가지 부어 끊인 멀건 죽을 먹어본 적도, 풀뿌리를 캐거나 나무껍질을 벗겨 먹어본 적도 없다. 그래서 굶주림에 대한 체험적 이해가 결핍돼 있다. 굶주림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죽음과도 같은 굶주림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가슴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북한 주민들이 고난의 시기를 겪으며 몇 년째 배급이 중단되고 굶주림에 허덕인다는 사실을 남한 사람들은 대부분 다 알고 있다. 지금은 남한도 북한 소식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언론매체를 통해 드러내는 편이다. 그래서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어제와 오늘의 북한이 어떠한지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나도 꽃제비 아이들이 헐벗은 모습으로 장마당을 기웃대며 땅바닥에 떨어진 먹을 것을 주워 먹는 모습과 탈북자들이 압록강을 위태위태하게 건너는 장면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탈북 르포나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그 고난의 과정을 보면서 ‘도대체 우리 정부는 탈북자 정책을 어떻게 하나’ 하고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적도 있다.

요즘도 북한 출신 미녀들이 TV 토크쇼에 나와 북한에서의 삶을 이야기를 하는 ‘모란봉 클럽’, ‘이만갑(이제 만나러 갑니다)’ 등의 프로를 보기도 한다. 물론 그 프로가 흥미 위주로 흐르기도 하고 ‘탈북미녀’들이 점차 연예인화 되어감으로써 어떤 면에서는 남한 사람들로 하여금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한순간이나마 잊게 만드는 부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통해 북한에서의 삶에 대한 생생한 육성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더 크다.

그러나 남한에 사는 내가 일상 속에서 그런 북한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이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뼛속 깊게 느끼기는 어렵다. 그저 막연히 추상적으로 북한 주민들이 지금도 굶주리고 있다고만 여기게 된다. 그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굶주림에 대한 처절한 경험이 북한 사람만큼 없기 때문이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나는 이 시집을 읽는 동안 TV를 통해 북한에 있는 마식령 스키장 영상을 보았다. 스키를 타는 외국인도 보이고 북한 주민도 더러 보였다. 주민은 굶주림에 허덕이는데 스키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생각에 분노가 저절로 치밀었다. 또 북한이 장거리 로켓 ‘광명성 4호’ 발사에 성공했다는 뉴스도 접하면서 북한은 지금 장거리미사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주민들의 굶주림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더 가중되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남한의 시인인 내가 북한 주민들을 위해할 수 있는 일은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내가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에 대해 그 얼마나 피상적인 이해를 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거듭 깨달을 뿐이다.

나는 이 시집을 읽기 전에 김수진 씨의 첫 번째 시집 『천국을 찾지 마시라 국민이여 우리의 대한민국이 천국이다』부터 단숨에 숨죽이며 읽었다. 한 쪽씩 넘길 때마다 굶주림에 대한 분노의 눈물이 방울방울 치솟아 내 가슴을 적셨다. 시집 속에서 흐르는 것은 피와 분노의 눈물이었으며, 시집 속에 피어나는 꽃은 굶주림과 죽음의 꽃이었다.

시집 어디를 봐도 굶주림과 강제노동에 대한 분노의 피눈물이 흥건하고 처절하다. 김수진 씨가 하루하루 비인간적인 삶을 살면서 겪은 체험의 구체적 사실과 진실 앞에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특히 꽃제비에 관한 시편들은 처절하다. 꽃제비라고 불리는 인간의 삶은 곧 죽음의 삶이다. 배고파 굶주리며 죽는 삶을 순간순간 이토록 처절하게 노래할 수 있을까.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이웃집 모자(母子)가 꽃제비 아이들을 집안에 불러들여 다섯 명이나 잡아먹고 잡혀갔다는 이야기에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남한에도 그 의미는 다르지만 꽃제비에 비교해서 말할 수 있는 노숙인이 있다. 말 그대로 그들은 노숙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굶지는 않는다. 본인의 삶의 의지와 태도에 따라 굶을 수도 있지만 먹고 싶은데 못 먹는 일은 거의 없다. 어디에서든 본인이 먹으려는 의지만 있으면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는다. 삶의 의지를 되살려 살려고 노력만 하면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이웃들과 제도화된 사회기관에서 도와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은 소수 권력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주민이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고 굶주리는 죽음의 삶을 살고 있다. 툭하면 “오늘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불러 죽겠다”는 말을 한 나 자신이 그들 앞에 너무나 죄스럽다. 외식을 해도 항상 음식을 남기던 내가 아니던가. 누가 음식을 남긴다고 잔소리라도 하면 “내 몸은 남은 음식을 집어넣는 쓰레기통이 아니야” 하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는 데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남한에 정착해 새터민이 된 김수진 시인은 무엇부터 먼저 먹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남한에 음식이 넘쳐나는 일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지금 지금 이 시대를 ‘헬조선’, 즉 ‘지옥 같은 대한민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김수진 시인은 대한민국이야말로 천국이라고 말한다. 왜일까. 오늘의 북한이 바로 살아있는 지옥이며, 북한에서의 삶이 바로 지옥에서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니고 누려야 할 배부름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 시집에는 북한에서 배불리 한번 맛있게 밥을 먹어보았다는 구절은 없다. 요즘 김수진 시인은 아침에 밥을 해 주걱으로 푸다가 북한에서 굶주렸던 일과 지금도 굶주리고 있는 북의 형제들 생각에 목이 메여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한다. 전기밥솥에서 한 주걱 푼 흰 쌀밥이 굶주림에 허덕였던 자신의 입에 들어가기 전에, 굶주려 죽기 직전에 놓인 꽃제비 아이들과 노인들의 입에 넣어주고 싶어 한다.

남한에 살면서 굶주림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고향 땅 북한 형제들이 굶주리고 있는 한, 金 시인은 진정한 의미에서 굶주림에서 벗어난 게 아니다. 그래도 이 시집은 첫 번째 시집에서와는 달리 남한에서의 삶에 대한 안정과 감사에 대한 시편들이 두드러진다. 북한에서의 비인간적 삶이 죽음과 같았던 만큼 남한에서의 인간적 삶이 감사와 행복의 삶으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집 속엔 비로소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사랑을 이야기한 시편들도 발견된다.

한 아이가 물어온/ 옥수수 한 이삭이/ 열 스무 명의 손으로
나눠진다/ 집 없이 부모 없이 긴 시간들/ 모두 한 가족으로 뭉
쳐진 꽃제비 아이들// 시래기 한 조각도/ 나눠서 삼킨다/ 아무
것도 없는 날엔/ 눈물을 함께 삼킨다/ 고사리 같이 여윈 손으
로/ 서로가 서로에게 베푼다/ 죽음 속에서도 살아남는 건/ 꽃
제비 아이들의 의리/ 부모의 정 담아/ 형제의 정 담아/ 합쳐진
마지막 가족들/ 끝내는 죽음이 덮쳐도/ 죽는 순간까지 합쳐지
는/ 꽃제비들의 가족/ 사회주의는 버려져/ 만신창이 되어도/
절대 흩어지지 않는/ 꽃제비 아이들/ 죽음 속에서/ 지켜지는 의리여

(「꽃제비 아이들의 의리」 전문)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서로 밀고 밀다/ 끝내 남
겨진 죽 한 공기//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늙은 꽃제비가 손
을 내민다/ 사정없이 밀려오는 배고픔에/ 눈물을 머금고 주저
앉는 꽃제비// 밀던 죽그릇이/ 어느 새 쥐어졌네 꽃제비에게/
타드는 입술로/ 사랑을 축이는 꽃제비 노인// 거친 바람도 잠시
물러갔네/ 이들을 지켜보았네/ 가난 속에서도 타버리지 않는/
꽃 같은 마음씨를

(「꽃 같은 마음씨」 전문)

굶주림 가운데서도 옥수수 알 하나라도 서로 나누어먹는 꽃제비 아이들의 마음에 누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굶주림의 극한적 상황에서도 죽 한 그릇을 서로 먹으라고 양보하던 내외가 때마침 찾아온 꽃제비 노인에게 죽을 건네주는 마음은 그 얼마나 거룩한 자기희생인가.

우리는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고 자유롭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먹이를 찾아 열심히 이동하는 것일 뿐이다. 먹이를 찾는다는 것이 곧 자유를 찾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먹이 없는 자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새도 인간도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그런데 북한은 주민을 굶주림에 빠뜨리고 생존할 수 없게 한다. 어느 국가든 국민을 굶기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다. 북한이 제대로 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의 굶주림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시는 인간을 위로해주고 위안해주는 측면이 있다. 나는 김수진 시인이 이 시집을 펴내면서 시를 통해 스스로 큰 위로와 위안을 얻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시집은 김수진 시인의 말대로 “나 혼자 쓴 게 아니라 북한 주민 전체가 쓴 시집”이다.

따라서 이 시집에는 지옥과 같은 죽음의 삶에서 구원을 기다리는 북한 주민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나는 이 시집을 남한 국민이 보다 많이 읽음으로써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북주민들의 굶주림과 부자유한 현실에 대해 깊은 이해의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시집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오늘을 산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길 바란다. 왜냐하면 이 시집은 북한에서의 굶주림과 부자유를 견뎌낸 생존의 시집이며, 남한에서의 자유와 행복에 대한 감사의 시집이기 때문이다.

꽃 같은 마음씨

김수진

148페이지 | 130*198mm | 10,000원 | 2016년 3월10일 | 979-11-85701-34-9 03810

시/에세이>한국시

※전화주문 가능(02-722-94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