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취재 대상으로 삼았던 여자 가운데 가장 신비스런 얼굴은 대한 항공기 폭파범 김현희 씨였다. 옆 얼굴은 앗실리아의 부조처럼 뚜렷하고 정면은 수줍은 처녀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표정이 다르고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른 얼굴이 돼 있었다. 변화가 많은 얼굴, 그녀는 조선조 시대의 좋은 집안 처녀 같았다. 옛스러운 아름다움.
  이 김현희 씨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북쪽에서는 ‘히즈 스토리’(his story)를 가르치고 남쪽에서는 ‘히스토리’(history)를 가르치는 것 같아요.”
  김현희 씨가 북쪽에서 배운 역사는 거의 전부가 김일성의 혁명 투쟁이다. 그이는 한글을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사실도 몰랐었다. “남한에 와 보니 우리 역사도 가르쳐 주고 왕궁도 있고 해서 북한보다도 훨씬 민족적인 정통성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다. 남한에서 비로소 자신이 조선 사람이고 조선역사의 일부라는 것을 실감했다는 것이었다.
  요사이 문화일보 기자로 뛰고 있는 김용옥 씨가 쓴 책엔 이런 구절이 있다.
  “자본주의는 역사의 주인이요, 사회주의는 역사의 객이다. 자본주의는 유욕(有慾)의 현실이요, 사회주의는 무욕(無慾)의 이상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총재시절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와의 대결에서 사회주의가 졌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 본 것이다. 민주주의를 포기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망했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만 살아남았다.”
  그는 민주주의를 거부해서 망한 자본주의의 예로서 히틀러의 제삼제국을, 민주주의를 받아들여서 살아남은 사회주의의 예로서는 스웨덴의 사회 민주주의를 들었다.
  민주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김정일 사회주의 체제는 왜 망하지 않고 있는가. 김정일 체제는 수령지배체제, 쉽게 말하면 頭師父 일체 체제이지 사회주의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수령지배체제는 뜨거운 맛을 봐야 망하지 따뜻한 햇볕으로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실증되고 있다. 시몬느 베이유의 말처럼 잔학함, 폭력성, 비인간적인 면을 압도할 수 있는 美德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그런 악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악하므로 망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