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평화주의자들에 대하여'에서 소개했던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레지스탕스 운동가인 마르크 블로크의 '이상한 패배'에서 인용한 글이다. 여기서 마르크 블로크는 프랑스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지 정신의 결여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의 지적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까?
  
  <나라의 위기 앞에서 모든 성인은 동등한 의무를 져야 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권리에 의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면책의 특권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정말 이상한 오해이다.
  사실 戰時에 '민간인'이란 무엇인가? 나이나 건강상태, 때로는 직업-국가방어에 필수적이라고 판단되는-때문에 무기를 실질적으로 들 수 없는 사람일 뿐이다. 모든 시민이 나라에 봉사하는 방법으로 혼자만 봉사하지 않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가 왜 공동의 위험으로부터 빠질 권리를 가지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오래 전에 헤로도토스가 이미 말했다. 전쟁의 큰 모독은 아버지가 아들을 무덤에 묻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법칙이 뒤집히는 것을 슬퍼할 것인가? 나로서는 자국의 장래가 걸린 존재들을 희생시킬 수 밖에 없는 것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 이 신선한 힘과 비교하면 다른 사람들은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나는 최소한 자녀들을 위해서 살아 있어야 하는 젊은 어머니들을 제외하고는 여성들조차도 예외로 놓지 않겠다.
  
  군대가 직업군인으로 구성되었던 시대에 군인은 귀족이거나 용병으로서 위탁자들을 위해서 피를 흘렸다. 그 대가로, 싸우지 않는 주민들은 부과조를 내어 그를 부양하거나 그에게 임금을 지불했다. 그가 그들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면 그들이 불평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은 계약위반인 것이다.
  오늘날에는 기력이 있는 자는 모두 병사가 되며, 국가가 위협을 받으면 누구도 총동원령과 그것에 따른 어려움, 위험에서 예외일 수가 없다. 그것이 유일하고 명백한 길이다. 그 외의 다른 것은 감상이나 비겁함이다.
  
  이 진실은 너무나 단순하여 거론하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가 겪은 몇 개월 동안 이 점이 모두에게 이해되었는가? 우리는 수많은 관리들이 자신의 도시를 방어하지 말도록 호소하고, 민간인이건 군인이건 간에 많은 지도자들이 잘못된 공익의 개념에 따르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것을 믿기가 어렵다.
  이 용기 없는 사람들이 인명을 구하려는, 그 자체로는 매우 감동적인 목표만을 따른 것은 아마 아닐 것이다. 1914~18년의 전쟁에서 입은 끔찍한 재산피해가 쓰라린 기억을 남겨 놓았다. 사람들은 전쟁으로 인한 파괴가 나라의 문화재를 참혹하게 훼손했고 오랫동안 번영을 위협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시 한번 이런 이중의 피해를 당하는 것보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한 문명이나 경제가 포식자 국가에게 정복되는 것이 최악의 재앙이라는 것은 생각지 않은 사람의 이상한 현명함이다!
  
  아마도 이 집단적 허약함은 흔히 개인적 허약함의 총합이었을 뿐일 것이다.
  
  나는 가끔 사람들이 적어도 젊은 지식인들은 지난 전쟁에서와 같은 대량 살육을 면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선의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내 생각으로는 그런 감정은 잘못된 것이다. 물론 마른, 이제르, 솜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이 희생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의 정신적 힘이 그로써 오랫동안 약화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에 따르는 반대급부를 생각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의 지적 자유, 문화, 도덕적 균형에 패배보다 더 확실하게 타격을 가할 것이 있는가?
  따라서 그 희생 앞에서 예외를 생각할 수는 없다. 자신의 생명이 이웃의 생명보다 더 유익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왜냐하면 각자에게는 크거나 작거나 간에 자기 영역에서 필요한 존재라고 믿을 만한 완벽하게 정당한 이유가 언제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우리 지도자와 아마 우리 지도 계급에게도 조국의 위기 앞에서 가차없는 영웅주의가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