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 회담에서 金正日이 파격적인 행동을 보인 것을 계기로 하여 그동안 한국의 언론이 金正日을 잘못 보도하여 국민들의 인식을 誤導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1. 金正日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는 정치인입니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국민들의 행복을 얼마나 향상시켰느냐 하는 결과로써 판단하는 것입니다. 국민 다수의 행복이란 복지, 안전, 자유를 뜻합니다. 金正日이 사실상 북한을 통치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특히 1994년 金日成 사망으로 권력을 공식적으로 승계한 이후 북한주민들의 행복이 향상되었는가, 퇴보했는가-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의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이 평가에 대해서 우리나라 언론은 대체로 정확한 판단을 했습니다. 즉, 실패한 지도자란 것이지요. 특히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생산물의 배급도 독점하는 사회주의 경제체제하에서 1995년 이후 사실상 배급을 포기함으로써 수백만 명을 굶어죽게 한 과오는 사회주의를 포기한 것이고 지도자로서의 직무유기이며, 그 책임은 어떤 변명과 미화, 쇼나 선전 선동으로써도 호도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입니다. 인간에 대한 도덕적인 평가는 타인에게 폐를 끼쳤느냐, 아니면 도움을 주었느냐로 판단합니다. 金正日이 북한주민들의 餓死사태를 방치하고 수십만의 양심수를 수용소에 가두고 남한 동포들을 상대로 아웅산 사건, 대한항공 폭파사건, 어부납치와 강제억류 사건들을 일으킨 점. 여기에 대한 우리 언론의 평가도 대체로 정확했습니다. 즉, 아주 호전적인 전체주의적인 독재자란 것이지요.
  
  모든 인간은 개성과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평가는 평가자의 취향에 따라 각각일 수가 있습니다. 김정일이 농담을 잘하고 좌중을 이끌어가는 것을 보고 매력 있는 개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든, 저처럼 수많은 주민들을 고통속에 방치하면서 그런 웃음과 농담을 할 수 있나 하고 경멸을 하든 평가자의 자유입니다. 이런 평가는 정치인을 판단할 때 아주 지엽적인 비중을 차지할 뿐입니다. 히틀러나 스탈린도 아주 매력적인 개성을 가진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저지른 反인류범죄가 그런 매력으로 인해 상쇄됩니까. 학살범을 재판할 때 농담 잘하고 잘 웃긴다고 무죄를 때립니까.
  
  2. 평양 드라마의 제작 감독 주연
  
  우리가 텔레비전을 통해서 바라본 평양의 모습과 김정일의 행태, 그리고 환영인파들은 모두 연출된 것이고 꾸민 것이며 일종의 연극이었습니다. 이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서 60만 명의 환영인파를 그런 식으로 동원하고 조직합니까. 남한 사람들이 그런 대중동원과 歡迎열기 조작에 대해 분노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북한주민들에게 크나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들은 드라마의 엑스트라였습니다. 평양은 드라마의 세트였습니다. 그들은 김정일의 손짓 하나로 환영의 부르짖음을 증오의 절규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 군중들이 강제된 환영행사를 위해서 감수했을 고통을 생각하지도 않고 그것을 동포애의 발로라고 보도하는 것은 북한주민들에 대한 모독이요 誤報입니다.
  
  3. 김정일은 말을 잘 하나?
  
  金正日의 언어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검증이 끝났습니다. 1986년 申相玉-崔銀姬 부부가 탈출할 때 가져온 녹음테이프에 의해서 金正日의 독특한 말버릇이 정밀하게 분석되었습니다. 월간조선은 1995년10월호 부록으로 그 녹음테이프를 나누어준 적도 있습니다. 이때 저희들은 이회여대 정신과 전공 李根厚 교수에게 부탁하여 언어를 통한 심리분석을 시도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그 분석보고서(1995년10월호 월간조선에 게재)를 읽어보았습니다. 상당히 정확한 분석이었습니다.
  
  이근후 교수는 두 사람의 사회학자, 한 사람의 정신과 의사, 한 사람의 여론조사 전문가, 한 사람의 심리학자로서 분석팀을 만들어 김정일의 육성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론은 「김정일은 모순되고 충돌하는 내면을 가진 감성 우위의 인간형」이란 것이었습니다.
  
  우선 그의 말은 이런 특징이 있었다고 합니다.
  ·말의 흐름이 대단히 빠르다
  ·주제의 변화가 빨리 일어난다
  ·음성의 톤이 높고 강하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간간이 연상이 두절된다
  ·여러번 같은 낱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대화도중 화통하게 웃는 경우가 많다
  ·대화도중에 다른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고 혼자서 독점적으로 말을 한다
  ·의미가 안통하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명령조이다 등등
  이런 말의 분석에서 이근후 교수는 김정일의 성격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김정일은 선천적으로는 대단히 감성적이고 열정적이며 틀에 매이지 않는 예술가적 기질의 성격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후천적으로는 사회체계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확보하고 지켜나가기 위해 자기 통제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터득한 통제적이고 치밀하고 계산적이고 이성적인 측면도 함께 갖고 있다.
  ·자기중심적이고 자기과시적이며 성격이 급하다.
  ·갈등상태에 있는 성격이다. 그의 성격인 자유분방한 감성적인 면과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훈련되고 조건화된 성격 측면 사이에서 비롯되는 갈등이다.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김일성 같은 카리스마적인 독재자로서의 이미지보다는 감성적인 쪽으로 스스로를 승화시키는 것이 훨씬 덜 갈등스러울 그런 성격이다.
  
  이근후 교수는 「김정일처럼 감성적인 사람과 김대중 대통령처럼 논리적인 사람이 만나면 감성적인 사람이 분위기를 주도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교수의 말대로 김정일은 국가경영보다 그의 예술적 기질을 살린 이번 드라마의 연출에 더 큰 기량을 발휘한 것 같습니다. 원래 텔레비전은 등장인물의 말, 제스처, 표정, 눈웃음 같은 것을 그대로 전해주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아주 감성적인 매체입니다. 김정일과 같은 감성적인 인간형에 유리한 매체입니다. 이근후 교수는 그러나 국가 같은 큰 조직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는 감성적 인간형이 논리적 인간형보다도 뒤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연출에는 金正日이 이겼는지는 모르지만 그 뒤의 후속조치나 결산 부문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과 대한민국이 승리할 것이란 말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이 경우 대한민국의 승리란 북한체제가 시장경제, 민주주의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6월18일에 발매된 월간조선 7월호 기고에서 李東馥씨(전 자민련 의원·남북 고위급회담 대표)는 「김정일이 평양사람들을 엑스트라로 동원하고 자신이 제작, 감독, 주연하여 환영을 조직하고 남측의 언론매체를 북측의 홍보매체로 활용함으로써 영욕이 점철되었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던 반공태세를 일거에 난파시켰다」고 비판했습니다.
  
  한국인들은 감성적인 면이 강하다고 합니다. 감성적인 김정일이 감성적인 매체를 이용하여 감성적인 사람들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감성은 폭발적이긴 하지만 지속력은 약합니다. 사람들은 곧 理性을 찾을 것이고 金正日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볼 눈을 갖게 될 것입니다. 수십년간 惡行만 한 사람이 단 한번의 명연기로 모두 용서받는 그런 시대, 그런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