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선비와 교수가 나라를 어렵게 만들 수가 있나 하는 화두를 더 깊게 들여다본다.
  교수들이 유달리 많이 등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3년에 들어선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였다. 김영삼 정부는 '문민정부'라고 했다. 글을 아는 사람들의 정부라니, 결국 선비 학자들의 정부란 말이 아닌가. 이 말에서 벌써 기업인과 군인들에 대한 차별과 경멸을 느낄 수 있다.
  
  2. 김영삼 정부는 선비정부처럼 위선적 명분론의 정치를 했다. 前정권의 정통성을 모조리 부정했다. 소위 문민정부의 정통성은 상해 임시 정부에서 바로 연결된다는 해괴한 논리를 구사했다. 취임사에선 이념보다 민족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여 김일성 정권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3. 풍수설을 믿고, 민족정기를 회복한다면서 일제가 박았다는 쇠막대기를 뽑는 데 정부기관이 동원되었다. 민족정기를 살린다면서 중앙청=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을 철거했다. 개발시대의 상징인 남산 외인아파트도 폭파시켰다. 그는 또 전두환, 노태우 두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역사 바로세우기를 한다는 명분이었다. 명분론이 김영삼 정부의 정치적 무기가 되었다. 이 명분론에 민족이 이념보다 중요하다는 식의 좌익 논리가 묻어들어갔다. 출신은 보수이되 공부가 없는 김영삼은 좌파에게 상당히 이용당했다. 김영삼의 손으로 한국의 우파세력은 분열되고 강타당했다. 그가 김대중과 노무현 등장을 위한 카피트를 깐 사람이다.
  
  4. 그는 조선조의 양반정치를 재현함으로써 위선적 명분론으로 국가의 실용주의 노선을 약화시켰고 국론을 분열시켰다. 개혁에 반대하면 내부의 적으로 몰렸다. 이런 정치는 조선조 시절의 양반정치로 회귀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김영삼의 문민정치는 민주주의의 탈을 썼지만 실속에 있어선 한국정치를 퇴행시켰다는 비판도 받을 것이다.
  
  5. 어떻게 보면 이것이 한국정치의 정상회귀였을 수도 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30년은 군인들이 다스린 기간이었다. 우리 역사상 고려 무신통치기 약100년 이후 처음으로 군인정치를 맛본 것이다. 군인들 통치기에 우리는 기업인과 과학기술자가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여 군인들의 뒷받침하에 한국을 성공적으로 근대화시키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실용적 생산적 정치는 우리 정치사에서 예외이다. 예외의 시대는 가고 문민정치, 즉 선비-양반정치가 돌아왔으니 정상정치로의 복귀였던 것이다.
  
  6. 문제는 그 정상정치란 것이 안보를 외국에게 맡기고(옛날엔 명나라, 청나라. 지금은 미국) 정치인들이 사소한 주제를 가지고 위선적 명분론을 앞세워 밑도 끝도 없는 권력투쟁에 함몰하는 모습이었다. 이 시기에 학자들이 중용된 것은 당연하다. 정치의 생리가 양반정치 시대와 비슷하기 때문에 명분론과 관념론의 전문가들이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명분론과 관념론이 휩쓰는 사회에선 선동이 잘 먹힌다. 선동의 핵심이 거창한 명분을 내걸어 국민들을 흥분시키고 최면시키며 속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7. 명분론이 강한 사회에선 평등사회 건설이란 명분을 장악한 좌익들의 선동이 특히 잘 먹힌다. 공산주의야말로 주자학처럼 거대한 논리체계를 가진 관념의 세계이자 명분론의 선동술이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이후 한국 사회는 좌익 이념이 잘 먹혀들도록, 傳導가 잘 되도록 명분론과 관념론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사를 부정하는 思潮가 김영삼 정부의 지원하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8. 교수, 학자, 강사들, 소위 시민단체들, 좌익단체들, 좌파정치인들, 對南공작원들이 이런 새로운 가능성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소위 지식인, 정치, 학원, 문화예술계의 헤게모니를 잡기 시작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인공 기업인과 군인들의 자리는 좁아지기 시작했다. 우파 정치인들도 이런 시류에 편승하면서 정체성과 이념을 양보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의 거대한 좌회전이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