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보면 사고방식 속에서 두 개가 원천적으로 결핍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봅니다. 첫째는 시간개념입니다. 발전과 변화에는 시간이란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李承晩 대통령이 처했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그가 건국만 했지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지 못했다고 비판만 하는 경우입니다. 이들은, 서구에서 도입한 자유민주주의는 헌법을 그렇게 만든다고 해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외면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문서화해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 사람들의 의식, 경험이 따라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시간이 필요한 조건입니다. 야구 규칙을 도입했다고 해서 동네 야구 선수들이 당장 메이저 리그 선수들처럼 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세종대왕 보고 왜 민주주의 안했느냐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계절적 변화를 빼면 오늘도 내일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만 되풀이하는 전제왕조 체제하 농경민족으로서의 체질에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다가 보니 시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하나 한국인들의 사고방식 속에서 결핍된 것이 있다면 북한 정권의 존재를 결정적 요소로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1989년 공산권 붕괴 이후 북한정권의 파탄상이 드러나고 북한경제가 망가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더욱 북한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확산된 듯합니다.
  
  주한미군이 철수해도 괜찮은 것 아닌가, 유럽도 사회주의 정당이 있는데 한국에서도 별 문제 될 것이 있나, 反美 시위 좀 하면 어때? 국가보안법을 없앤다고 나라가 어떻게 되겠어?
  이렇게 대범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이 유럽의 어느 선진국, 안보 걱정을 안해도 되는 곳이나 되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지척간에 북한정권이 있고, 그 정권에 조종당하고 있는 반역세력이 우리 곁에 있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수도권이 북한측의 장거리포 사정권안에 들어가 있다는 요소를 생략한 사고방식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북한의 존재감을 실감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안보의 핵심을 주한미군한테 맡겨놓고 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의 도발은 미국이 알아서 처리해주겠지 하는 생각입니다. 自國의 안보를 대국에게 맡겨놓은 국가의 엘리트층은 반드시 정신적으로 타락한다는 것을 우리는 국회에서, 청와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한미군이란 완충제, 또는 마취제를 빼고서 우리가 직접, 홀로 북한정권 및 북한군과 대적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행동은 보다 신중해지고 책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한미군으로 얻는 우리의 이득도 크지만 거기에 따른 代價도 적지 않습니다.
  
  돌이켜놓고 보면 1977년 카터가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했을 때 우리가 잡지 않고 보내버렸다면 우리는 벼랑에 선 기분으로 일치단결하여 자주국방을 이룩하고 책임 있는 정치, 책임 지는 국민윤리를 정착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북한정권은 군대를 지탱하는 경제가 거의 망가진 상태에서도 외국 군대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자주국방을 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무엇이 모자란다고 자주국방을 회피하려 하는 것인지.
  
  제가 말한 자주국방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라는 뜻이 아니라 주한미군이 있어도 이를 보조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우리 지도층이 국방을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는 각오와 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도층이나 지식층이 북한정권의 존재를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하면 그런 사고방식은 필연적으로 무책임한 행태, 때로는 비겁한 안일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국제법상으로는 한국이 아직 戰時下의 생활을 하고 있는데 걱정하는 것이 직업인 지도층과 지식인들이 우리는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환상의 代價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