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다음의 글은 황장엽-김덕홍 두 분이 이끌고 있는 탈북자 동지회의 회보
  「민족통일」6월호에 실린 권두 논문입니다.
  
  긴절한 문제부터
  
  글쓴 이: 황장엽, 김덕홍
  
  김정일 정권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의 정책이 달라졌는가?
  아니다.
  통치체제가 변하였는가?
  아니다.
  수령절대주의가 약화되었는가?
  아니다, 더 강화되었다.
  
  그러면 중태에 빠졌던 김정일 정권이 어떻게 되어 되살아나게 되었는가.
  그것은 첫째로 외부로부터의 수혈이 효능을 발휘한 탓이며, 둘째로 김정일 정권이 총칼로 북한 인민들의 피와 눈물을 무자비하게 짜낸 결과이다.
  
  이것을 김정일의 공로로 볼 수 있겠는가?
  아니다!
  저주로운 죄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소위 석학이라는 사람들은 김정일을 위기를 극복한 유능하고 똑똑한 정치가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민족 내부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는 점이지, 실정에 어둡고 이해관계도 없는 외국 사람들이 하는 말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되살아나고 있으나 그 총칼에 찔린 인민들의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있으며 아물 겨를도 없다.
  왜냐하면 1997년 9월부터 시작된 「비사회주의 숙청」 사업이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 사회주의 숙청」 사업을 시작한 첫 시기에는 당과 국가보위부, 사회안전부, 검찰소 등 일반 독재기관 일꾼들로 구성된 검열 집단이 이 사업을 담당하였지만 그 후 내부사정이 더욱 복잡하다는 것이 판명됨에 따라 김정일은 『국가보위부도 믿기 어렵다. 인민군대의 보위사령부가 내 오른 팔이다』라고 하면서 중요한 검열대상에는 직접 군보위사령부 군인들을 파견하게 되었다.
  
  양강도 두만강변 혜산시에 대한 「비 사회주의 숙청」이 그 단적 실례로 된다.
  혜산시에 대한 「비 사회주의 숙청」 사업은 작년 2월부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3월일부터 8월10일까지 근 반년에 걸쳐 인민군대 보위사령부가 담당하여 진행하였다. 보위사령부 부사령관이 책임자가 되어 600여명의 군관(소령급)들로 구성된 검열집단이 파견되었으며 현지 주둔 軍(군)인 조선인민군 제10군단 군인들이 보조성원으로 동원되었다.
  
  검열총화는 8월10일 양강도당 회의실에서 보위사령관이 참석하여 도내 간부 1천여명을 참가시키고 진행되었다. 검열기간에 10군단 보위부 구류장을 비롯한 여러 보위, 안전기관들의 구류장을 총 동원하여 4천여명의 인민들을 구류하였으며, 그 중 3차에 걸친 공개총살에서 19명이 총살되고 20여명이 비공개로 총살 또는 타살되었다. 道(도) 보위부(국가보위부 산하)의 당 책임비서와 道(도) 무역국 부국장, 道 검사장을비롯한 60여명의 간부들이 보위부가 관리하는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되었으며 600여명이 징역형을 받았다.800여명이 산간오지와 탄광, 광산 등 어려운 직장으로 추방되었으며 100여명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그 행방조차 알 수 없다.
  
  300여명이 직장에서 철직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두문벌(6개월 이상 문밖에 나가 돌아다니지 못하는 처벌)을 받았으며 재산을 빼앗기고 매를 맞은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23만여명의 혜산 시민 90% 이상이 「비 사회주의 숙청」으로 피해를 받았다. 보위사령부 군관들은 가는 곳마다에서 주민들에게 『전번에 남포시를 검열할 때는 김정일 장군님으로부터 비사회주의 분자들을 빗자루로 싹 쓸어버리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이번 혜산시 검열에서는 아예 물걸레로 싹 밀어버리라고 지시를 받았다. 그러니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죄를 고백하고 가지고 있는 돈을 모조리 바쳐라』라고 호통쳤으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 『xx』라 부르며 마구 행패를 하였다.
  
  혜산 시민들은 『식량배급도 주지 않으면서 먹고살기 위해 장사를 조금 했다고 하여 잡아다 때리고 죽이면 우리는 어떻게 살란 말인가?!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하였으며 죽음을 각오하고 삼엄한 경계선을 넘어 중국 동북지방으로 도주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보위사령부 검열관들은 『장사를 하면서 자본주의를 끌어들이는 자들은 우리 혁명의 적이기 때문에 혁명의 무기로 무자비하게 무찌르는 것이 응당하다. 쓸데없이 반항할 생각하지 말라. 뛰어야 벼룩이다. 우리가 다 잡아오게 되어 있다』라고 하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인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장사마저 총칼로 못하게 하여 사람들이 무더기로 굶어죽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를 지키는 것이라면 그런 사회주의가 누구에게 필요하단 말인가. 이런 사회주의가 필요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총칼로 인민들을 탄압하는 이른바 수령의 정권도 필요 없다는 것은 지극히 명백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적지 않은 북한 동포들이 수령의 정권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보위사령부 군관들이 인민들을 보호해야 할 총칼로 헐벗고 굶주린 적수공권의 인민들을 마구 쓸어버리는 만행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북한 땅에서 뼈저리게 체험한 바에 의하면 북한 통치자들이 인민들을 외부 세계와 완전히 절연시켜 놓고 『위대한 민족의 태양이요, 천출명장이요 천재적 사상리론가요』하면서 수령에 대한 개인숭배의 미신으로 인민들의 자주의식을 완전히 마비시켰으며, 혁명과 사회주의를 위해서는 모든 고통과 불행을 참아야 한다고 하면서 절대적인 복종만을 강요하여 왔기 때문이다.
  
  이번 혜산시 사건에서 수많은 인민들이 죄 없이 구류장에 끌려가 짐승 같은 천대를 받고 중병에 걸려 돌아와서도 가족들의 물음에 한결같이 『위대한 장군님의 배려로 풀려 나왔다』고 대답했다는 것만 봐도 이것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먼저 풀어야 할 긴절한 문제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첫째로 북한 인민들을 수령절대주의 미신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제정신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동포들이 남한동포들의 생활을 직접 와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남한에 와 보면 수령이 인민의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도 명백히 알게 될 것이며 북한 수령이 공산주의 이상생활로 내세웠던 『쌀밥에 고기국을 먹고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서 사는 생활』은 남한의 중산층 이상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실현하였고 오늘에 와서는 훨씬 높은 목표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게 될 것이다.
  
  둘째로는 남한 동포들에게 북한의 실정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것이다.
  북한 동포들이 남한 실정을 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한 동포들도 북한 실정을 잘 모르고 있다. 남한 동포들이 북한 실정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알자면 그들이 북한에 가서 직접 북한 동포들의 생활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 기대가 좀 막연한 감이 있다.
  
  남북의 통일을 위해서는 무슨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견해가 똑똑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이 먼저 적대감부터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우월감을 버리고 서로 양보하는 겸손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이런 일반론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는가. 남북 통일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남과 북의 전체 동포들이다. 남북의 통일은 남북한 동포들이 서로 알고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일방이 타방으로부터 경제원조만 받으려고 하면서 자기들의 내부를 전혀 보여주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민족의 화해와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진심으로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바란다면 마땅히 남북의 각계각층이 자유롭게 내왕하면서 남한 동포는 북한의 실상을 직접 볼 수 있게 하고 북한 동포는 남한의 실상을 직접 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특히 낡은 것에 오염되지 않은 순진한 청년들이 수천명씩 자유롭게 내왕하면서 진실을 보고 서로 협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쌍방이 모두 쓸데없는 편견과 근거 없는 환상에서 벗어나게 되고 진실에 기초한 민족의 화합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조치를 떠나 자기 속을 감추고 빈소리만 하는 것은 50여 년간 계속 해온 기만술책의 연장으로 되든가, 기만당한 자들의 탁상공론으로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