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평양뒷골목의 쥐고기와 김정일 메뉴
지난 6월 평양회담에 참석했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음식이 끝내주더라고. 한국측에서 준비한 음식은 김정일이 내놓은 음식에 비교하면 맛과 질이 많이 떨어지더라고. 평양측에서 내어놓은 음식은 김정일 메뉴였습니다. 김정일 전속 농장에서 만든 무공해 과일 채소 등으로 만들어내어놓은 것이니까 맛이야 있었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이 호화판 음식과 수백만 주민의 餓死(아사, 굶어죽음) 사이에 있는 어떤 이질감, 죄책감, 거부감 같은 것을 느꼈다는 남측 인사가 없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닏. 이것이 바로 우리 지도층의 양심 度數(도수)이구나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수백만 북녘동포가 굶어죽은 비극에 대해서 어느 언론도 1면 머리 기사나 9시 방송 뉴스의 첫째 기사로 다룬 적이 없었습니다. 철새 한 마리가 독약을 먹고 죽어도 사진과 함께 1면 머리로 다루던 언론이었습니다. 그들이 동포들 수백만이 굶어죽은 것을 철새 한 마리 죽은 것보다 작게 다루니, 이런 기자들이, 또 이런 세상에 살다가 평양에 간 지도층 인사들이 김정일의 호화판 음식만 칭송할 뿐 그 뒤에 있는 북한주민들의 신음과 한숨을 들을 수 없었다는 것, 이해가 갑니다. 육신의 귀와 같지 않은 양심의 귀, 그것이 들을 수 있는 범위는 관심의 반경 이내일 것입니다.
언론인과 지도층 인사들은 북한동포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김정일의 쇼에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해야겠지요. 북한동포들을 내팽개친 소위 지도자 동지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면 어떻게 김정일이 내어놓은 음식찬양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겠으며 그에 대한 높은 평가를 어떻게 말투나 제스처 기준으로 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랑이 없으면 정의감도 판단력도 없어진다는 것을 저는 이번 평양회담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탈북자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꾸준하게 해오고 있는 사단법인 좋은 벗들(대표 법륜스님)이 올해 1-3월 사이 만주로 넘어온 탈북자들 1027명을 상대로 한 ‘북한주민의 북한사회-경제에 대한 인식 및 태도 조사’(면접 조사)는 이들이 살았던 북한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상황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조사대상 탈북자들의 86%는 ‘식량난으로 가족 중에 행방불명자가 발생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행방불명의 이유는 ‘장사하거나 식량을 구하러 나갔다’(47.5%) ‘중국으로 갔다’(47.3%) ‘꽃제비가 되어 집을 나갔다’(40.4%)는 것들입니다. 가족공동체의 해체, 유랑민의 증가를 말해주는 통계입니다. 김정일의 호화판 음식판에 감격했던 訪北인사들은 대부분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이기 때문에 잘 알 것입니다.
거의 모든 가족이 가족 안에 행방불명자가 있다는 이런 상황은 우리가 그 난리통에도 겪어보지 못했던 대사건입니다. 사망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1995년 이후 북한에선 6.25전쟁이 한번 더 난 것입니다. 그런데도 ‘위대한 김정일 동지께서는’ 호화판 음식상으로 남한사람들을 감격시켰습니다. 감격시키려드는 자들은 목적과 계산이 있으니까 그런다고치더라도 감격한 사람들은 북한주민들이 어떻게 굶어죽어갔는지를 늦었지만 한번 호기심으로써라도 알아두셔야 합니다.
-작년 4월20일 함경남도 고원역에는 1,896명의 북한주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기차를 타려고 나온 사람들은 136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는 먹을 것을 구하러 나온 방랑자들이었습니다. 1,896명 가운데 하루 세끼를 다 먹은 사람들은 204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루 두끼만 먹은 사람이 192명, 하루 한 끼 먹은 사람이 640명, 한 끼도 못먹은 사람이 724명이었습니다. 이는 북한당국의 자체조사 결과인데 이 통계를 보면 왜 수백만 명이 평화시인데도 굶어죽어 가고 있는가 하는 感 정도는 잡을 수 있겠지요?
-訪北者들은 한결같이 평양이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거대한 연극무대의 앞만 보았으니 그렇게도 보였을 것입니다. 그 뒷골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여기 한 북한주민(현재도 그곳에 살고 있다)이 月刊朝鮮 1999년7월호에 써보낸 手記가 있습니다. 그는 레슬링 선수였는데 부모, 아내, 큰 아들, 두 딸이 굶어죽고 홀로 남았습니다. 그의 手記, 그 한 귀절을 인용해드리지요.
<새벽에 평양거리를 걷노라면 아파트 밑에 쥐약을 먹고 죽은 쥐들이 도로에 있다. 나는 여기서 여러 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허약을 모면할 길 없는 육체는 그 쥐들을 먹고싶은 충동을 너무도 강하게 느끼게 하였다. 내일 쥐를 먹고 쥐신세가 된다 해도 먹고 싶은 마음은 달랠 길이 없었다. 나는 주운 쥐들을 대동강가에 가지고 나가 대가리에서부터 꽁지까지 내장을 들어내고 휴지들을 주워다 불을 피우고 구워먹었다. 보기에는 끔직해도 고기맛은 별맛이었다.
수도의 중심가에서 쥐를 구워먹은 나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쓰리었다. 저 멀리 남산재 뒤로 장군님께서 계신다는 당 중앙위원회 청사가 바라보인다. 나는 입이고 손이고 새까매져서 쥐고기를 씹으며 김정일 장군님께 마음속으로 아뢰었다.
“장군님, 수령님께서 주신다던 흰 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을 바라던 우리 할아버지가 보지 못하고 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또 그냥 가버렸습니다. 이제는 아이들까지 떠나가는데 수령님께서 주시지 못한 것 장군님께서는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사실이다. 300여만 명이 굶어죽으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우리 수령님께서 주시겠다고 했으니 인민은 끝까지 믿고 자기 도리를 죽으면서도 지켰다.>
訪北者 여러분, 이것이 깨끗하고 아름답다던 평양의 일면입니다. 여러분이 먹은 김정일 음식상과 이 북한주민이 먹은 쥐고기 사이엔 넘지 못할 마음의 간격이 있는 것 같군요. 김정일의 환대에 판단력과 문제의식을 일시적으로 잃었다고 한다면 지금도 늦지 않습니다. 빨리 관객석에서 나오세요. 연극은 끝났습니다.
로그인메뉴
2024년 9월 20일 08:52
상단주메뉴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