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마키아벨리 재조명(4)
마키아벨리는 또 이런 말을 했다.
<군주로서 최대의 악덕은 증오를 사는 것과 경멸을 당하는 것이다. 이런 악덕을 기피할 수만 있다면 군주의 임무는 상당한 정도로 수행할 수 있으며 따로 다소간의 악평이 있더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증오는 국민이 가진 것에 손을 댈 때 일어나는 것이기에 이 짓만 하지 않으면 쉽게 피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불구하고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이 가진 물질과 명예만 빼앗기지 않으면 의외로 불만 없이 살아간다. 한편 경멸은 군주가 변덕이 심하고 경박하며 여성적이고 소심하며 결단력이 부족할 때 국민의 마음속에서 피어난다. 군주된 자는 항해하는 배가 암초를 주의하는 것처럼 항상 이러한 인상을 국민들에게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위대하고 용감하며 진지하고 확고한 의지력에 기초한 것으로 비쳐지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도자가 증오와 경멸을 받아선 안된다는 충고를 나는 1993년11월에 김영삼 대통령을 향해서 한 적이 있다. 불행하게도 김영삼 대통령은 국민들의 재산을 축내게 함으로써 증오를 샀고 변덕이 심하고 경솔하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다수 국민들로부터는 경멸을 받았다.
중산층으로부터는 사유재산을 기성세대로부터는 자부심, 즉 지난 50년의 대한민국의 찬란한 위업을 달성했다는 명예심을 빼앗아간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여론조사에서 이완용 다음 가는 부정적 인물로 뽑힌 것도 마키아벨리의 뛰어난 통찰력을 생각하게 하는 점이다.
마키아벨리는 또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다스리는 자가 존경을 받으려면 어떤 행동을 하면 좋은가. 먼저 대사업을 일으켜서 전임자와는 다른 그릇을 가진 지도자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둘째로는 적에 대한 태도와 우군에 대한 태도를 확실하게 구분하여 보여주어야 한다. 사람을 다스리는 자는 명쾌한 태도를 보일 때만이 존경받게 되는 것이다. 지도자는 또 여간 급박하지 않으면 자신보다 강력한 자와 손을 잡고 제3자를 공격해선 안된다. 왜냐 하면 그렇게 해서 승리를 거두더라도 자신은 강자의 포로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군주는 다른 사람에 의하여 좌우되는 상황으로부터 될 수 있는대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이런 마키아벨리의 말을 읽으면 신라통일이 생각난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치기 위해서 자신보다 더 강력한 당나라의 힘을 빌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대로 당나라는 신라를 속국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에 반발한 신라는 피를 피로 씻는 전쟁을 통해서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추방함으로써 민족국가의 터전과 자주독립의 기초를 이룩했다.
약자가 강자의 힘을 빌린 다음 강자를 내치는 아주 어려운 일을 한 것이다. 이를 높이 평가해야 할 신라의 후손들이 지금에 와서는 왜 만주까지 통일하지 못했느냐고 묻는데 이런 사람들은 마키아벨리가 지적한 말을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약자가 강자의 힘을 빌어 라이벌을 친 다음엔 그 강자의 인질이 되기 쉽다. 그런데 신라는 예외였다. 따라서 신라의 통일은 우리가 자랑하기에 충분한 위업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의 두뇌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는 머리, 둘째는 다른 사람이 이해한 것을 감별할 수 있는 머리, 셋째는 자력으로써도 이해할 수 없고 남이 이해한 것에 대한 감별능력도 없는 머리가 그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지적한 自力으로써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머리를 우리는 천재라고 부른다. 천재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진리를 깨닫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이해한 것을 감별할 수 있는 두뇌란 스스로는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남이 연구한 것이 참말인지 거짓인지를 알아낼 정도의 분별력을 갗춘 경우를 이른다. 이 정도의 머리만 갖추면 머리 좋은 사람을 골라내어 부릴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건강은 빌릴 수 없지만 머리는 빌릴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런데 남의 머리를 빌릴려면 마키아벨리가 말한 대로 남이 이해하는 것을 감별할 수 있는 정도의 두뇌를 가져야 한다. 바보가 천재의 머리를 빌릴 수는 없다. 바보는 바보의 머리를 빌릴 수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먹물먹은 지식인들 중 상당수는 마키아벨리가 말한 제3급의 두뇌 소유자들이다. 즉,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남이 깨달은 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이들입니다.
예컨대 이승만, 박정희이 주도한 한국의 근대화과정은 한국식 모델이라 하여 외국에서는 상당히 높게 평가되고 있는데 유독 한국의 편협한 일부 지식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전면적인 공격만 일삼고 있다.
이들은 남의 깨달음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도 분간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이미 역사의 무대 뒤로 퇴장했는데도 아직도 주사파란 것이 행패를 부리고 일부 지식인들은 그들을 진보적 세력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는데 이런 부류의 지식인들도 마키아벨리가 말한 3급 두뇌에 속한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군주는 자신의 권위에 손상을 줄 만한 타협을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비록 그것을 견디어낼 수 있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해도 그런 종류의 타협을 해선 절대로 안된다.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기보다는 큰 마음먹고 정면돌파로 나가는 것이 좋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이 방법이 유리하다. 만약 정면충돌을 회피하고싶다는 마음으로 양보책을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그런 대결은 회피할 수 없다. 양보를 거듭하면 상대방은 만족하기는커녕 군주에 대한 존경심이 약화되는 것만큼 적개심은 더욱 노골화되어 보다 많은 것들을 빼앗으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가 대결을 회피하면 언젠가는 더 불리한 상황에서 대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결할 때 대결하여야 하고 설사 깨지더라도 그렇게 해놓으면 상대방으로부터 존경심을 사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공격은 예방이 된다는 뜻이다.
이런 충고는 우리나라처럼, 강대국가들 사이에 둘러싸인 나라에 귀중한 말이다. 우리는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있으면서 강대국이 우리를 먹을려고 한다면 입이라도 터지게 만들 만한 자주국방력을 항상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스위스가 이차세계대전 때 독일로부터 침략을 당하지 않은 것도 자주국방력이 있었기 때문에 독일로서도 상당한 피해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또 이런 말을 남겼다.
<개인이나 국가나 다 마찬가지이지만 상대를 절망과 분노로 치닫게 할 정도로 상처를 주어선 안된다. 철저하게 상처를 입은 사람은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여 악착같은 반격과 복수에 나서는 법이다>
쥐를 쫒아도 달아날 구멍을 만들어주고 쫓아란 뜻이겠다. 약자라고 해서 막다른 골목으로 몰지 말라는 뜻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명심할 말이 아닌가 한다. 권력으로써 상대방의 존재가치 자체를 말살하려 들면 지렁이라도 밟히면 꿈틀대듯이 반드시 저항하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존재하는 모든것에 대한 애정, 이것을 잊어버리면 비참한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경고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잘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잘나가는 사람들은 좀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내가 잘나가기 때문에 또는 내가 잘 나가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분노와 절망에 빠뜨리지는 않았는지 겸허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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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0일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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