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면서 마당으로 난 창문을 열려고 하니 얼어붙어 열리지 않았다. 온수를 부어 열고 나가니 복돌이가 마중나온다. 개집 입구에 커튼처럼 널어뜨린 마대가 바람에 날려 안이 추위에 노출되어 있었다. 무거운 것을 달아매어 다시 널어뜨려주니 복돌이는 좋다하고 들어가버린다,
  
  새벽 4시10분, 컴퓨터를 켜니 토론방에 잠도 안자고 글을 올린 분들이 많다. 배진영 기자는 노무현 당선자의 말을 요모조모 따지는 글을 올렸고.
  한반도에는 이 시간에도 잠들지 않는 영혼들이 이렇게 많은 것이다.
  
  한밤중에도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불침번이 이렇게 많으니 한국이 소매치기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국과 자유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눈들, 초롱초롱한 그 눈들을 느끼지 못하고 권력의 맛에 취한 인간들은 예외 없이 비참한 말로를 맞는 것이 한국 현대사의 한 법칙이 되었다.
  
  동서양 역사를 읽으면 불가사의하게 생각될 때가 많다. 동양의 경우 기원 전 7-3세기의 戰국時代 때 진시황 공자 노자 장자 한비자 순자 관중 오자서 등 영웅과 賢者들이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온다. 이들이 펼친 포부와 철학들이 그 뒤 漢字 문화권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상당히 결정했다.
  
  서양도 마찬가지이다. 기원 전 700-800년 동안 펼쳐진 그리스-로마-유데아 지역의 역사속에서 그 뒤 서양사람들이 따라간 많은 영웅들과 典範들이 나타났다. 예수, 프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시저, 알렉산더 대왕, 카토, 페리클레스, 민주주의, 공화정, 원로원, 법률, 달력 등등.
  
  이 시기의 문화 수준과 정신 세계는 예컨대 중세 때보다도 높았던 것 같다. 왜 그럴까. 중국의 戰國시대나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공통점은 경쟁이 치열했던 시대란 점이다. 나라끼리, 세력끼리, 개인끼리 전투하고 논쟁하며 경쟁했다. 이런 경쟁이 인간들의 능력을 극대화했던 것이다. 인간이란 것은 벼랑에 몰리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바로 그런 경쟁 시스템 속에서 각자가 능력과 생각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남북한 정권끼리, 남내의 각 정파와 지역과 계층과 단체끼리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법을 통해서, 때로는 물리력으로. 이런 경쟁 시스템은 인간을 깨어 있게 만든다.
  
  눈 감으면 코를 베어가는 사회는 살벌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인간을 깨어 있게 자극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인간을 나른하게 잠오게 하는 사회를 원하는가.
  
  우리는 이 시대정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루하루 새롭게 밀려오는 도전을 피하지 말고 받아내야 한다.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좋다. 그것은 인생을, 시대를 열심히 살았다는 훈장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