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읽어보진 않았어도 제목은 들어봤을 이 소설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고 친숙한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문학이다. 그 <감자>의 작가 김동인이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에 의해 ‘친일파’로 규정되었다. 2009년의 일이다. 위원회는 김동인이 소설과 글 등을 통해서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전쟁 참여를 독려한 것이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라고 결정했다.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 박사는 “소설의 한 부분만 떼어놓고 친일행위라고 단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 당시 행위에는 적극성이 결여돼 있었다”고 주장하며 소송했다. 이 아들을 대리해 소설가 김동인을 변호한 사람은 엄상익 변호사다. 사건 의뢰를 위해 엄 변호사를 찾은 김 박사는 이렇게 호소했다.

“아버지는 정치나 사상 쪽하고는 거의 관계없던 분입니다. 오히려 아버지는 일제 말 일장기를 집집마다 정성스럽게 모시던 시절 그걸 뚤뚤 말아서 광 속에 던져두는 분이었어요. 누님에게 한글을 직접 가르쳐 주면서 한글이 필요한 날이 올 수가 있다고 하셨죠. 집안에서의 그런 행동을 보면 아버지는 친일반민족과는 거리가 있었던 분 같아요. 더구나 일제 말 아버지는 천황을 모독한 죄로 징역까지 산 분이니까요.”

엄 변호사는 위원회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정부와 사법부와 다퉜지만, 끝내 소설가 김동인은 ‘친일파’라는 굴레를 벗지 못했다. 변호사로서 그런 결정을 인정할 수 없었던 그는 재판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그 사투가 책이 되어 나왔다. 《김동인의 항변》(엄상익著, 바이블리더스 출판, 1만6000원)이다.

<3·1운동 당시 김동인은 격문을 써서 감옥에 갔었다. … 그는 일본 천황을 모독했다는 죄로 징역을 살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마지막까지 태극기를 보관하고 있던 애국자였다. 해방 후 김구 주석은 그에게 자신의 일대기를 부탁하기도 했다. 증오가 들끓던 해방정국에서 그 누구도 그를 친일파로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육십 년 후 대한민국은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낙인찍었다. …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언젠가는 그에 대한 순수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날을 위해 …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변론을 책으로 남겨둔다.> -‘책머리에’에서-

2000년대 초 불어온 시대의 광풍으로 위원회의 완장을 찬 일부 역사학자들이 ‘친일파’로 낙인찍은 김동인. 그는 정말 친일파였을까? 엄 변호사는 《김동인의 항변》을 통해 후세의 작가와 대중, 역사가 다시 한번 심판해주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