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법치주의와 관료 시스템이 트럼프를 이겼다
  
  드디어 미국 선거인단이 12월 14일 조 바이든을 제 46대 미국 대통령으로 정식 선출했다. 그간 트럼프 법률팀이 수많은 소송을 제기했지만, 조직적 부정선거 증거를 법정에서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고, 트럼프가 임명한 親공화당 연방 판사들조차 소송을 모두 각하했다.
  
  심지어 트럼프의 충견이라고 할 수 있는, 바 법무장관·검찰총장까지 주군을 거역하고 ‘부정선거의 증거가 없다’고 발표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이제부터는 트럼프도 바이든이 당선된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면 완전히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다만 믿거나 말거나, 바이든이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는 음모론을 평생 떠들고 다닐 자유는 있다.
  
  트럼프는 오바마도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사람이다. 진실을 믿는 게 아니라 ‘자기가 믿는 게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전형적 인간이다.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대통령 출마 자격이 없는데,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난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출생증명서를 보여줘도 위조 증명서라고 우기던 사람이다. 그런 자가 자신이 선거에서 진 사실을 인정할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미국에 아무리 혹세무민에 천부적 능력을 가진 대통령이 나와 황당무계한 주장을 해도, 미국의 법치주의 전통을 이길 수는 없고 국가를 지탱하는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게 이번에 확인된 것이다.
  
  미국 정치가 극단적 대결로 난장판이 되고, 포풀리즘이 난무하고, 과학과 이성을 부정하는 수준 이하의 대통령이 나와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일이 벌어지고, 거짓말로 광팬들을 선동해도, 사법부와 관료시스템은 꿋꿋하게 중심을 잡고 맡은 바 소임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게 확인이 되었다. ‘미국 사회의 이런 저력과 자정능력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저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 낙선으로 피해를 입은 文, 그리고 국내 유튜버들
  
  그런데 트럼프 낙선으로 한국 내에 소위 ‘collateral damage’를 입은 사람들이 있다. 제 3자가 입는 의도되지 않은 피해를 ‘collateral damage’라고 하는데 전쟁에서 민간인이 오폭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 등이 전형적인 ‘collateral damage’다.
  
  먼저, 미국 정상회담 재개에 목숨을 걸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최대의 3자 피해자가 아닌가 싶다. 오죽하면 미국 대선이 끝나자마자 여당의원들이 코로나가 창궐하는 워싱턴으로 달려가 북한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고 호소하고 다녔겠나.
  
  이 외에도 3자 피해를 입은 자들이 있는데, 바로 트럼프를 메시아로 떠받들면서 당선을 철석같이 믿던 국내 유튜버들이다.
  
  이번 미국 대선은 유튜버 논객들의 소양과 내공을 시험하고 옥석을 가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동안 훌륭한 유튜버로 알고 있던 자들 가운데, 이번에 균형감각과 판단 능력이 확증편향에 의해 마비되어 있는 자들이 확연히 드러났다. 믿음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들의 밑천이 만천하에 폭로된 것이다.
  
  미국인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와 정치성향에 따라 공화·민주 양당 가운데 하나를 지지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표심이 확증편향에 좌우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미국 대선 결과에 직접적 이해관계에서 떨어져있는 한국 사람은 미국 사람보다는 비교적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 물론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너무 쉽게 사기를 당하는 게 불안하고, 김정은 체제의 정통성을 인정해 준 게 못마땅하고, 한미동맹의 미래가 걱정되는 그런 한국인이라면 내심으로 이번에 트럼프가 낙선하기를 바랄 수는 있겠지만, 당선된다고 해서 나라의 흥망이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뻔한 수작을 이해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과 음모론에 어느 정도의 신뢰성을 부여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게 객관적인 안목을 가진 논객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세 과정에서 바이든은 ‘코로나가 위험하니 가급적 우편투표를 하라’고 호소했고, 그 반면에 트럼프는 ‘우편투표는 사기 당하기 쉬우니 투표장에 직접 가서 하라’고 얼마나 열심히 독려했는지는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바이든 말을 듣고 우편 투표한 사람들 가운데 바이든 찍는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이고, 트럼프의 말을 듣지 않고 우편투표한 사람이면, 트럼프를 찍을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체 투표자의 46%가 우편 투표를 했으면, 현장 투표에서 트럼프가 근소하게 앞섰더라도 우편투표를 개표하면 뒤집힐 수밖에 없는 이치는 초등학교 수준의 수리 개념만 있으면 알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우편투표가 자기한테 불리한 걸 잘 아니까, 유세에서 우편투표를 하지 말라고 절박하게 호소한 것이고, 투표 후에는 우편투표 개표를 저지하려고 온갖 꼼수를 다 부리다가 이게 모두 묵살되자 우편 투표는 모두 부정인 것처럼 떠벌리는 것 아닌가.
  
  이 뻔한 수작을 이해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정작 주목해야할 놀라운 사실은, 코로나 확산을 방치한 결과, 세월호 희생자의 천 배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는데도 총 득표수에서 트럼프가 고작 700만 표, 선거인단 538명 투표에서 74표 밖에 지지 않았고, 하원에서는 오히려 공화당 의석이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트럼프가 진 것이지 공화당이 진 선거는 아니라는 의미다.
  
  공화당과 트럼피즘은 바이든을 견제하고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는 데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게 앞으로 미국 국내정치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이번 대선이 앞으로 어느 유튜버를 얼마나 신뢰할 것인지를 판단하고, 또 믿을 수 있는 유튜버와 믿기 어려운 유튜버를 분간할 소중한 잣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외의 소득이 된 측면도 있다.
  
  
  김정은 有故說, 그리고 부정선거 음모론
  
  금년에 유튜버들의 신뢰성을 검증할 결정적 계기가 한 번 더 있었다. 지난 4월 김정은 유고설(有故說)이 퍼졌을 때다. 그때 김정은 有故說을 확대 재생산해서 재미를 보고 이번에도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을 맹신하고 음모설을 확대재생산 하는 데 앞장선 유튜버들은 앞으로 믿지 않는 게 안전하다.
  
  기본적 사실 확인도 해보지 않고 영상 만드는 것을 예사로 여기는 무책임한 사람들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주장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만,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하는 유튜버는 신뢰할 수 없다.
  
  그런데 금년도 가장 뜨거운 뉴스 중 둘 다 헛짚은 사람과 하나만 틀린 사람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둘 다 헛짚은 사람 중에도 실수를 바로 인정하고 바로잡은 사람도 있고, 끝까지 틀린 것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예컨대 김정은 유고설을 퍼뜨렸다가 건재하다는 것이 확인된 다음에도 북한 매체에 등장하는 김정은 사진이 가짜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11일 트럼프가 패배한 4개 경합주의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한 트럼프 측 소송을 각하하고, 대통령 선거인단이 공식적으로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절차를 완료한 이후에도, 바이든이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는 음모론을 계속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믿음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들
  
  그런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과 현실을 구분할 인지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믿고 싶은 것과 정반대의 일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치조차 모르는 유튜버라고 해서 이제부터 시청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생업을 유튜브 방송에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야박한 소리를 어떻게 하겠는가. 다만 앞으로 어느 유튜버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를 좀 알고 보면 된다.
  
  가짜뉴스 전문 채널이 꼭 나쁜 채널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팩트와 진실보다 훨씬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듣고 싶고 믿고 싶은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위안을 얻고 힐링이 된다면,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데 순기능도 될 것이다. 소설도 읽고 드라마도 보는 데 그럴 듯한 가짜뉴스가 나쁠 게 뭐가 있겠나. 다만, 픽션인지 논픽션인지는 확실히 알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