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할 때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이 세월이 흘러 그 사람의 행동 경로가 밝혀지면 '아, 그때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이제야 알겠구나'하고 무릎을 칠 때가 있습니다.
  
  金大中 대통령은 여러 번 국가보안법이 규정하고 있는 反國家단체의 구성요건을 수정하여야 한다고 발언하고 여권 간부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예컨대 1999년 12월20일 기독교 지도자 초청 오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안법 문제는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개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 북한을 反國家단체로 규정하는데, 북한을 反國家단체로 규정하면 논리적으로 금강산 관광도 못하고 대화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모순에 빠져 있다. 불고지죄도 고쳐야 한다. 고무찬양죄도 악용되지 않도록 엄격히 규정돼야 한다. 이런 정도를 고치는 데도 의견일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마음은 있지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을 주면 해결하겠다』(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 게재 내용)
  
  의아하게 생각한 저는 2000년3월호 월간조선 '편집장의 편지'에서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우선 金大中 대통령의 보안법 관련 발언은 사실과 부합되지 않습니다. 북한을 反國家단체로 규정한 것과 북한과의 교류는 아무런 모순이 되지 않습니다. 1972년 북한에 비밀리에 들어가 7·4 공동성명을 만들어낸 李厚洛(이후락) 정보부장과 鄭洪鎭(정홍진) 국장이 그 뒤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그 행위로 해서 처벌받은 적은 없습니다. 그 뒤에도 張世東, 徐東權 안기부장이 북한에 들어가 金日成·金正日 부자와 대화를 하고 왔는데도 지금껏 무사합니다. 이 정도의 비밀접촉도 합법화되고 있는데 금강산 관광이나 남북대화에 국가보안법이 무슨 장애가 됩니까.
  
  金大中 대통령에게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제발 한번 읽어보시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이 법은 「정당한 목적하의 남북왕래 협력사업 통신역무의 제공 등」에 대하여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이 법을 적용한다」(동법 제3조)고 함으로써 북한측과의 접촉행위를 免責(면책)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金대통령은 『북한을 反國家단체로 규정하면 논리적으로 금강산 관광도 못하고 대화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모순에 빠져 있다』는 失言을 한 것입니다>
  
   이즈음 김종필 총리를 인터뷰했더니 그는 역정을 내면서 '요사이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국민들 중에 이 법 때문에 생활이 불편한 사람이 누가 있나요'라고 말했습니다.
  
   며칠 전 金대통령이 통치행위 운운 하면서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변한 현대상선을 통한 對北 뒷거래 송금 사건이 터지니 왜 金대통령이 그때 그토록 보안법 개정에 집착했을까 하는 의혹이 풀리는 느낌입니다. 金대통령이 바로 보안법 때문에 불편한 사람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對北 뒷거래의 진상이 밝혀지면 金대통령의 측근은 물론 대통령도 퇴임후에 보안법 등 위반혐의로 사법처리 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김기환이란 전 국정원 직원의 폭로에 따르면 남북간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보안법 개정 필요 발언이 나올 때쯤 이미 정상회담을 위한 뒷거래 원칙에 합의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金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퇴임후 안전을 위해서 보안법의 본질적 개정을 추진할 필요성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청와대 사이트에 실린 金大中 대통령의 발언을 들어보면 국가보안법을 고쳐 북한을 反國家단체로 규정하지 않도록 하고싶다는 그의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우리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데 근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토를 폭력으로 불법점거하면서 대한민국을 말살시키기 위한 침략전쟁을 일으킨 북한정권을 反國家단체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국가보안법 제2조는 「이 법에서 反국가단체라 함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 체제를 갖춘 단체를 말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민주당의 前身인 국민회의는 1999년에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만들 때 「정부를 참칭하거나」란 부분만 삭제하자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북한이 언젠가 「국가를 변란할 목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의 政體(정체)를 인정한다면 反國家단체의 성격을 배제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민회의의 이 개정안도 헌법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 대법관을 지낸 鄭起勝(정기승)씨 등 많은 법률가들의 견해입니다. 만약 어느 지방의 도지사가 「우리는 지금부터 대한민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공화국이라 한다」고 「정부 참칭」을 선언해도 그들이 「대한민국을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反國家단체로 보아선 안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대한민국 해체의 길이 합법적으로 열리는 것이지요.
  
  金대통령의 1999년 12월20일자 발언은 국민회의 개정안보다도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즉, 대통령은 북한을 反國家단체로 규정해선 안된다는 입장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국민회의가 「정부참칭 조항」만 빼는 부분개정을 하더라도 그 법의 집행에 중대한 간여를 하게 되는 대통령의 의지가 그러하므로 북한을 反國家단체로 보지 않는 방향으로 법이 운용될 가능성이 높고(시민단체의 불법적인 낙천운동을 사실상 허용한 대통령의 조치에서 보듯이), 이는 사실상 국가보안법을 死文化(사문화)시킬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反國家단체로 본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는 법률이므로 이 근거가 사라지면 법의 의미도 사실상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는 북한공작원들과 친북단체의 활동에 자유를 부여하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존립근거와 통일의 민족사적 당위성도 북한을 反國家단체로 본다는 이 한 마디에서 출발합니다. 북한을 反國家단체로 보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북한을 독립주권국가로 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국제법상 국가와 反國家 사이에 半국가란 개념이 없으므로).
  
  북한을 國家로 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더러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는 것입니다. 유엔에 동시 가입했으니까 사실상 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엔에 가입한 국가끼리는 자동적으로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그런 국제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서독은 둘 다 유엔에 가입했지만 서독은 통일 때까지 동독을 국제법상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남북한이 서로 국가로 인정하고 싶으면 양쪽이 각기 헌법을 개정하고 상호 수교를 하고 대사를 교환해야 합니다. 북한도 우리를 美帝(미제)의 식민지라고 하여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데 우리가 먼저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여 저들을 反國家로 보지 않으려 한다면 한반도엔 남한 식민지와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대치하는 꼴이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자기 卑下(비하)가 어디 있습니까.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자는 것은 헌법위반일 뿐 아니라 1민족 1국가의 전통을 유지해온 우리 민족사에 대한 모독입니다. 동시에 이는 분단고착에 의한 영구분단의 길을 여는 反統一입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탈북자들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북한에 대격변이 일어나 통일의 결정적 시기가 도래했을 때 개입할 수도 없습니다(외국에 대한 내정간섭이 되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 주변국들이 우리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는 국제법적인 근거를 우리가 제공하는 것입니다.
  
  서독은 통일 때까지 東獨을 국제법상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국가원수인 서독 대통령의 동독방문도 없었습니다. 社民黨의 브란트 수상은 또 동독에 대한 유화정책을 추진하면서도 국내적으로는 헌법파괴 세력들의 공직 취임을 금지시키는 등 내부 단합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서독은 또 동독에 대한 차관을 직접 제공한 적이 없고 여러 나라들과 컨소시엄을 만들어 제공했으며 이자를 싸게 하는 따위의 특혜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차관을 제공하는 代價(대가)로 동독탈출자들에 대한 총격금지 조치 같은 양보를 얻어냈습니다.
   물론 통치행위 운운하는 그런 불법적 밀실 거래도 동서독 사이에는 없었습니다.
  
   현대상선을 통한 對北 비밀 송금은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 돈이 우방국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타도하여 공산화할 것을 맹세한 주적, 즉 반국가단체 수괴의 비자금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김정일은 이 비자금을, 對南공작과 핵무기 등 개발에 써왔습니다. 즉 이 대북 송금은 조국을 뒤집어엎는 군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현대측이 보낸 불법 비밀 자금으로 해서 대한민국이 경제적 이득을 보았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거꾸로 금강산 관광은 적자로 허덕이고 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김대중 정권은 국민 세금으로 관광객의 여비를 보조하였습니다. 즉, 국민 혈세로써 주적의 군자금을 댔다는 이야기가 나와도 변명이 불가능한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이 대북 송금은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기 위한 거래도 아니었습니다.
  
  이 대북 송금에 김대중 대통령이 깊에 관여했으리라고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통치행위 운운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반역적 대북 송금에 따른 법적 책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전쟁위험 운운하는데 전쟁 위험은 한미 동맹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튼튼한 안보태세로 막는 것이지 뇌물로 막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이 전쟁위험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12.12사건이 성공한 쿠데타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논리는 국민들의 반발에 의해 뒤집어지고 두 전직 대통령이 감방에 갔습니다. 12.12사건이 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대북 비밀 송금은 적의 군사력 증강을 도와주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헌법상의 기본질서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국민 전체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이런 행동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며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권리위에서 잠자고 있지 않다면 그냥 적당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듭니다.
  
  요사이, 정확한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통치행위는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란 궤변을 널어놓고 있는 어용 지식인들은 친일행위자처럼 언젠가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자중자애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