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2월7일) 조선일보 2면에 난 의견광고 [대한민국이 김대중을 고발한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국민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金大中에 대한 공포감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해방감이 거기에 있었다.
  
  이 광고를 낸 친북좌익세력명단공개추진운동본부(본부장 서정갑 대령연합회 회장) 사무실에는 왼종일 격려 전화가 쇄도했다고 한다. 한 지방도시에서는 '지금 이 광고를 읽으면서 축배를 들고 있습니다'란 전화도 걸려왔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총재 때부터 언론의 많은 보호를 받았던 인물이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도 그렇다. 물론 그때는 권력기관의 간여로 김대중씨에 대한 기사가 규제당해 제대로 보도되지 못했다. 내가 재직하던 신문사 편집기자는 1978년 김대중씨가 감옥에서 풀려나는 기사를 1면에 크게 실었다고 하여 외부 압력을 받고 정직처분을 당하기도 했었다.
  
  언론은 당시 묘한 균형감각을 발휘했다. 김대중씨에게 유리한 기사를 쓰지못한다면 그에 대한 불리한 기사도 쓰지 않아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정의감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비밀-출생, 해방 직후의 좌익 전력, 숱한 거짓말, 돈 문제 등이 보도되지 않고 넘어갔다.
  
  김대중씨는 특히 이념적 문제에 있어서 언론의 본격적인 검증을 피할 수 있었다. 해방후 좌익행동대 경력, 한민통 결성과 在日친북세력 관련, 그의 위험한 통일방안 등은 제대로 비판받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기자들이 본격적으로 제기하면 당장 '색깔론'이라는 공격이 그의 지지세력으로부터 들어왔기 때문이다.
  
  김대중씨는 야당 시절부터 대중조직을 활용한 사람이다. 이 대중조직으로부터의 집중공세에 견딜 기자는 많지 않았다. 호남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그를 비판할 때는 이 지지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씨는 당연히 해야 할 김대중 이념 검증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이념논쟁을 벌일 만한 논리적 신념 무장이 되어 있지 않았던 이회창씨였다. 당연히 공격의 표적으로 삼아야 할 것을 포기하니 아들 병역문제를 표적으로 내어준 것이다.
  
  최근 1주일 드디어 국민들이 김대중씨에 대한 공포감에서 벗어나는 느낌이다. 그가 저지른 '김정일 비자금 상납 의혹 사건'이 워낙 철면피한 데다다가 임기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이 많은 국민들을 고무시키고 용기를 주며 할 말을 하게 만들고 있다. 그를 비판하는 용어도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이적죄, 반역죄, 내란음모, 외환죄, 대역죄 등등 여러 법률단어들이 동원되고 있다. 사기, 기만, 위선, 욕심 등등이란 단어도.
  
  [대한민국이 김대중을 고발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그를 따라다니던 신비도 권위도 공포의 그림자도 날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위와 권력으로 자신의 치부와 비밀을 지켜내었던 그는 이제 무슨 힘을 믿고 살아갈 것인가. 지금 드러나거나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는 김정일 비자금 상납사건의 전모를 검찰이 밝히면 김대중씨는 사법처리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검찰이 수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설사 수사를 안한다고 해도 언론과 야당이 가만 있을까. 김정일 똘마니들이 김대중씨를 보호해줄까. 어려울 것이다.
  
  근대화와 민주화는 우상을 파괴해가는 과정이다. 작금의 현상은 한국의 발전, 역사의 진보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