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6일 미 의회 폭동사태를 조사해 온 미 하원 ‘1·6 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이하 보고서)가 현지시간 22일 공개됐다. 1월 6일 폭동 사태는 2020년 11월 3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 상하원이 모여 선거인단 결과를 확정하는 2021년 1월 6일에 의사당을 급습, 점령한 사건이다. 

845쪽에 달하는 해당 보고서는 위원회가 18개월에 걸쳐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위원회는 1000명 이상의 증인을 인터뷰했고 100만 쪽이 넘는 서류를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100건 이상의 의회 출석 소환장을 발부하기도 했다. 

위원회는 해당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월 6일 발생한 의회 폭동 사건의 “핵심 원인은 단 한 사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있다”고 했다. “트럼프가 없었다면 1월 6일에 발생한 어떤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위원회는 트럼프를 비롯한 그의 측근이 다시 공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법무부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반란 선동, 방조, 공무 절차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할 것을 권고했다. 미 의회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 권고 의견을 밝힌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계 언론들은 이 845쪽에 달하는 보고서의 내용을 보도하며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와 같다는 평가를 줄지어 내놓고 있다. 나도 해당 보고서를 읽기 시작하며 당시 상황을 시간대별로 참 잘 정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보고서를 읽으며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한 것으로 알려진 말이 생각났다. ‘진실은 소설보다 더 기묘하다. 왜냐하면 소설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을 그려야 하지만, 진실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인데 이 보고서의 내용은 어떤 정치 관련 영화, 드라마, 소설보다 기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청난 거짓말’ 

나는 지금부터 845쪽에 달하는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정리해 소개하려 한다. 보고서는 요약본에 추가로 총 8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첫 순서로 1장 ‘엄청난 거짓말(The Big Lie)’에 소개된 내용을 소개한다. 

1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3일 선거 다음날 새벽인 4일 2시 21분 트위터를 통해 전파한 거짓말로 시작된다. 당시는 보수 성향인 폭스뉴스가 트럼프 승리에 꼭 필요한 애리조나주에서 조 바이든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한 뒤였다. 트럼프는 애리조나를 이기지 못하면 사실상 선거에서 승리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미국 대중에 대한 부정이다. 우리 조국에 대한 수치다. 우리는 이 선거에서 이길 준비를 마치고 있었고 실제로 우리는 이 선거에서 승리했다. 우리는 모든 개표의 중단을 원한다. 새벽 4시에 투표지를 찾아내 합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윌리엄 스테피엔 트럼프 선거관리본부장은 이 무렵 트럼프에게 아직은 선거 결과를 예단하기 이르다고 했다. 더군다나 승리했다고 밝히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개표가 마무리될 때까지는 며칠이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캠프의 선임고문이던 제이슨 밀러 역시 위원회에 출석해 선거 승리를 선언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조언했다고 밝혔다. 당시 트럼프 선거캠프에서 승리 선언을 지지한 유일한 사람은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보고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거짓말, 그리고 추가 개표를 중단해야 한다는 거짓말을 내어놨는데 이는 즉흥적으로 생긴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사전에 이렇게 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보고서는 트럼프의 핵심 측근들은 이런 거짓말을 내어놓을 것을 사전에 준비했었다고 판단했다. 하나의 예로 트럼프의 고문을 맡았던 스티븐 배넌이 2020년 10월 31일 한 공개 발언을 소개했다. 배넌은 당시 공식석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승리를 선언할 것이다. 그가 실제 승자인지와는 상관없다. 그냥 승자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의 대다수는 우편투표 등 사전투표를 많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불리해진다. 트럼프는 이를 이용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이런 전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소개하기에 앞서 당시 트럼프 선거 캠프의 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캠프 관계자들은 부정선거가 일어났다고 믿을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했다. 트럼프는 이들이 그가 듣고 싶은 말을 하지 않자 이들을 모두 다른 사람들로 바꿔버렸다고 한다. 윌리엄 바 당시 법무장관은 새롭게 채워진 트럼프 측 인사들을 ‘광대들이 탄 차(clown car)’라고 표현했다. 이들이 광대처럼 모여 여러 음모론을 퍼뜨렸다는 것이었다. 

붉은 신기루(Red Mirage)

보고서는 트럼프의 ‘엄청난 거짓말’은 미국인들의 투표 성향 차이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다. 이는 단순한 차이인데,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가 공화당 유권자보다 사전투표를 할 가능성이 높았다. 미국은 당일 투표자들의 표를 우선적으로 개표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초반에는 트럼프의 표가 많게 집계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전투표 개표가 진행되며 민주당 표가 늘어나게 된다. 

미국에서는 이를 ‘붉은 신기루’라고 부른다. 개표 초기 공화당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니 실제로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폭스뉴스 역시 지난 선거들을 보면 선거당일 투표에서는 공화당이 앞서지만 사전투표에서는 민주당이 앞선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트럼프 선거관리본부장이었던 스테피엔은 트럼프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줬다고 증언했다.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2016년 선거 결과가 최종 집계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고 했다. 이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트럼프는 승리를 선언했다. 

위원회는 친트럼프 성향의 보수운동가인 톰 피튼이 트럼프의 보좌관에게 보낸 이메일을 입수했다. 10월 31일자로 작성된 해당 이메일에는 트럼프의 승리 선언문 내용이 담겨 있었다. 피튼은 이 글에서, “미국의 주들은 11월 3일을 데드라인으로 놓고 대통령을 선택해야만 한다”고 했다. 선거 당일 이후에 도착한 표를 개표하는 것은 무효라는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물론 사실이 아닌 주장이다. 

피튼은 한 발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최종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승리를 선포할 것을 조언했다. “우리는 오늘 선거를 치렀고 내가 승리했다”고 발표하라고 했다. 

트럼프 본인 역시 선거 전부터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을 암시한 바 있다. 선거 이틀 전 미국 언론 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그가 앞서는 것으로 선거일 밤에 나타나면 승리를 선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11월 3일 이후 집계되는 사전투표는 부정선거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사전 준비 

보고서는 트럼프가 선거 절차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선거 전부터 여러 거짓말을 퍼뜨렸다고 했다. 계속해서 사전투표가 조작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우편투표는 미국에 매우 위험한데 이는 거짓말이기 때문이다”라든지, “사람들이 우편함에서 용지를 빼내 다른 사람이 서명을 하게 하는 방식의 사기를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스테피엔 선거관리본부장은 투표에 앞서 트럼프에게 사전투표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설득했다고 했다. “사전투표를 하지 말고 당일 투표만 하도록 하면 그만큼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고서는 트럼프는 이런 경고를 따르지 않았고 계속해서 사전투표를 죄악처럼 묘사했다고 했다. “붉은 신기루가 엄청난 거짓말의 핵심 요소가 된 것”이라고 했다. 엄청난 거짓말(선거가 도둑맞았다)을 내놓으려면 붉은 신기루(당일 투표에서는 앞섰는데 사전투표로 갑자기 졌다) 현상이 발생해야만 해야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선거 4개월 전인 7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것인지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지켜봐야 한다, 그냥 승복하거나 불복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애매한 답변을 내놨다. 한 언론은 9월 트럼프에게, “선거 이후 평화적인 방식으로 정권을 이양할 준비가 돼 있느냐”고 물었다. 트럼프는 “어떤 일이 생길지 지켜봐야 한다”며 “투표지들은 재앙과 같다”고 했다. 그러더니 “정권 이양은 없을 것이고 정권 연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동의 시작 

트럼프 대통령은 투표 집계가 시작된 얼마 후부터 선동을 시작했다. 늦게 도착한 표들은 불법이라는 주장이었다. 그의 선거 참모들은 원래 사전투표라는 것은 늦게 도착하고 집계가 되려면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이 걸린다고 조언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민주당은 새벽 4시에 투표지들을 찾아내 추가시키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은 투표시간 이후에 들어온 표를 계속 집계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보고서는 트럼프의 이런 전략은 앞서 소개한 스티븐 배넌의 ‘전략’과 일치한다고 했다. 민주당의 경우는 선거 초반 뒤처지게 되는 경우가 잦은데, 이를 역으로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이후 트럼프는 개표 과정에서 갑자기 표가 뭉텅이로 쏟아졌다는 주장도 이어갔다. 그의 지지자들은 이런 거짓말을 믿고 퍼뜨렸다. 위원회는 늦게 도착한 표 중 바이든의 표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트럼프의 표도 포함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윌리엄 바 전 법무장관은 “붉은 신기루가 트럼프 대통령의 조작이라는 거짓 주장의 뿌리였다”는 것을 곧장 알아차렸다고 증언했다. 제대로 된 증거가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민주당 표가 쏟아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정선거를 주장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의 선거 캠프는 부정선거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었다고 한다. 선거 이틀 후인 11월 5일, 선거 캠프는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확인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트럼프 선거 캠프의 선임고문이었던 제이슨 밀러는 대중들에게 부정선거 의혹을 퍼뜨린 바 있다. 다만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는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선거 결과를 뒤바꿀 정도의 부정선거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밀러가 위원회에서 한 증언이다. 

<밀러: 코로나19에 따라 바뀐 (선거) 규정들에 우려와 의문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선거 결과를 뒤바꿀 수준의 조작이나 비정상인 일은 없었다는 게 내 의견이었다. 

위원회: 이런 의견을 대통령에게 전달했는지?

밀러: 그렇다. 

위원회: 이런 말을 했을 때 그의 반응은 어땠는지? 

밀러: 그는 “당신은 제기되고 있는 우려나 의문을 제대로 보고 듣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 이런 대화를 대통령과 몇 차례 나눴는가? 

밀러: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는다. 

위원회: 한 번 이상은 나눴는지? 

밀러: 그렇다.>

계속해서 엄청난 거짓말이 의회 습격 난동 사태로 이어지게 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