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이 17일 서울에서 ‘한국전쟁 전시 납북법조인 재조명 세미나’를 개최했다. / RFA PHOTO

앵커:한국전쟁 중 당시 한국 법조인, 즉 법관의 30%에 달하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납북됐지만 이와 관련한 피해 규모 파악이 명확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한국 내에서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북한인권단체 한변, 즉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이 17일 서울에서 개최한 ‘한국전쟁 전시 납북법조인 재조명 세미나’.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이 자리에서 한국전쟁 당시 한국의 법조인, 즉 판사와 검사, 변호사 등 법관 가운데 30~35% 정도인 2백여 명이 납북됐다는 집계와 관련해 단순한 납북자 수로만 판단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평가했습니다. 10만 명에 가까울 것으로 추산되는 전체 전시납북자와 비교할 수는 없는 규모지만, 재판을 받는 당사자의 인권 보장과 범인에 대한 처벌, 피해자 구제 등 한국 사회에서 막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법조계가 입은 큰 타격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 한국전쟁 당시 전체의 30% 정도 인원이 끌려갔기 때문에 한국 법조계가 거의 붕괴되고, 재판도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북한이 한국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법관들을 끌고 가서, 그들의 체제 유지와 법 제정 등에 이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제 교수는 법조인들에 대한 대규모 납북으로 인해 한국전쟁 중에는 물론, 적어도 195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 법조계가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반면 북한 당국은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에 납북된 한국 법조인들을 최대한 활용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또 납북된 법조인들에 대한 재조명에 앞서, 한변이 한국전쟁 납북자 가족들을 대리하여 최초로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사건을 언급하며 이는 전시납북 범죄성에 대한 인정과 북한 최고당국자에 대한 책임 추궁 및 경고, 유사사건 재발방지 촉구 등 큰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습니다.
  
  김태훈 한변 명예회장은 같은 자리에서 당시 납북된 법조인과 관련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이들이 다른 대부분의 전시납북자들과 마찬가지로 북한 사회 내 최하계층인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농촌이나 광산 지역으로 추방된 뒤 강제노동에 시달리거나 정치범 수용소에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김태훈 한변 명예회장:한국 법조인 납북은 이른바 ‘기획 납북’에 해당합니다. 북한 당국의 처단 대상입니다. 1945년의 어수선한 해방 정국에서 법조인들이 수행한 역할 때문에 적대 세력으로 찍히고 만 것입니다.
  
  김 명예회장은 그러면서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현 시점에도 이와 관련된 피해 규모가 한국 내에서조차 집계 기관마다 엇갈리고 있다며, 명확한 피해자 수를 파악하기 위한 재조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법조인의 가족인 이성의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은 검사로 일하던 부친의 변호사 개업 한 달여 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며, 자신이 법조인 전시납북의 피해자라고 밝혔습니다.
  
  이성의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검사로 재직하셨다가 변호사로 개업하신 지 한 달여 만에 한국전쟁을 맞으셨습니다. 여기 서울지방변호사회 건물에 들어서는데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이 이사장은 김 명예회장이 제안한 전시납북 법조인 규모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 설치 등에 동의하면서, 무엇보다 공신력 있는 명부 작성이 시급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통일되지 않은 전시납북 법조인 피해 규모에 대한 수정·보완 작업에 시급히 나서줄 것을 촉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