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수백 명의 탈북민들을 강제 북송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15살에 중국에 팔려왔던 탈북 여성이 지난 9일 강제 북송됐다고 가족들이 밝혔습니다. 가족들은 북송된 탈북민들이 직면하는 심각한 인권 유린을 지적하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안준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철옥씨가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것은 ‘고난의 행군’ 시기 식량난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던 지난 1998년이었습니다. 부모님도 사망하고 형제 자매도 뿔뿔이 흩어진 가운데 김씨는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중국에 가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하지만 김씨를 기다린 것은 인신매매였습니다. 중국 지린성 창춘시의 산간 오지 농촌마을로 팔려가 자신보다 서른 살 가량 많은 중국인 남성과 결혼했습니다. 척박한 농촌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농사일을 하면서 스무살에 딸을 낳았습니다.

딸은 아버지가 중국인이어서 중국 호적을 얻을 수 있었지만 김씨는 제대로 된 신분도 없어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숨어 살며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딸이 커서 이제 스무 살이 됐고 지난 5월 아들을 낳았습니다. 김씨는 마흔 살에 할머니가 됐습니다.

그 사이 먼저 탈북해 영국에 정착한 김씨의 언니들이 수소문 끝에 김씨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언니들은 중국에서 언제든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될 위기에 처한 동생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남편과 딸도 김씨가 제대로 된 신분을 얻고 안정적으로 살려면 언제든 북송될 위기에 처한 중국을 벗어나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여파로 중국이 봉쇄되는 바람에 발이 묶였던 김씨는 지난 봄에서야 집을 떠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4월 22일 다른 탈북 여성 2명과 함께 중국 지린성 창춘시 한 버스터미널 휴게소에서 탈북민들을 추적하던 중국 공안에 붙잡혔습니다.

김씨의 딸과 시누이가 수 차례 공안국을 찾아가 면회를 요청했지만 대면 면회는 거절됐고 화상 면회만 가능했습니다. 그나마 중국인 가족들이 있는 탈북민들에게만 허용되는 일종의 ‘특혜’였습니다. 김씨의 죄목은 ‘집단 월경’이었습니다.

김씨의 가족들은 중국 공안에 김씨의 석방을 호소하는 한편 한국 외교부와 주한미대사관 등에도 강제 북송을 막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영국에 살던 언니도 한국으로 날아와 서울 유엔인권사무소를 방문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김씨의 가족들은 중국 내 브로커나 변호사를 구해보려고도 했지만 지난 7월부터 중국이 반간첩법을 시행해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간첩 행위의 범위를 대폭 확대한 반간첩법은 법 규정도 모호해 자의적 해석과 집행의 여지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지난 8일쯤 김씨는 다급하게 자신의 딸에게 전화해 “내일 북송된대”라고 소식을 전한 뒤 소식이 끊겼습니다. 김씨의 딸은 영국에 있는 이모들에게 엄마가 강제 북송됐다고 전했습니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억류된 지 6개월 만이었습니다.

굶어죽지 않으려고 열다섯 살의 나이에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 팔려갔던 김씨는25년 만에 다시 북한으로 끌려갔습니다.

12일 김씨의 강제북송 소식을 VOA에 전해준 사람은 김씨의 사촌오빠인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김혁 박사입니다.

김혁씨는 꽃제비로 북한을 떠돌다 “중국에 가면 옥수수가 지천에 널려 있다”는 말을 듣고 처음 두만강을 건넌 뒤로 ‘전문 도강꾼’이 돼 중국을 오가다 1998년 11월 북한 보위부에 체포돼 악명 높은 함경북도 전거리교화소로 끌려가 3년간 구타와 강제 노역에 시달렸습니다. 함께 입소한 23명 중 21명이 8개월 만에 고문과 구타, 영양실조 등으로 죽어나갔습니다.

그는 2000년 노동당 창건 55주년을 맞아 김정일의 대사면령에 따라 석방돼 바로 중국으로 건너가 몽골을 거쳐 2001년 9월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2008년 개봉한 차인표 주연의 한국영화 ‘크로싱’의 11세 소년 ‘준이’의 실제 인물은 몽골 사막에서 그가 업고 오던 중 숨진 유철민군입니다.

김혁씨는 한국에 입국한 뒤 북한 꽃제비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 북한의 고문과 학대 등을 경험한 김 박사는 사촌동생인 김철옥씨가 북한 사람도 만나기 어려운 중국 산간 오지에서 살아 ‘조선말’도 서툴다며 북한 보위부에 끌려가면 더 심한 구타와 폭력에 시달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 박사] “오랫동안 이제 중국에 팔려가서 거기서 이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가장 이제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조선말을 일단 모릅니다. 다 잊어버린 거죠…. 중국으로 넘어가서 팔려갔고, 그 다음부터 그 팔려간 다음에 시골에 계속해서 이제 살았는데 갇혀서 살다 보니까 세상 밖으로 나올 일이 없었던 거죠.”

김 박사는 강제 북송된 탈북민들은 온갖 구타와 폭력에 노출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탈북 여성들은 “강제 송환돼 북한 국경 지역 국가안전보위부에 도착하자마자 군의관이 와서 고무장갑을 끼고 자궁과 항문에 손을 집어넣어 숨긴 돈이 있는지 몸수색을 하고, 앉았다 일어났다(일명 ‘뽐뿌질’)를 100번 가까이 시킨다”고 증언해 왔습니다.

[김 박사]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는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몸 수색이라든가 그 다음에 또 그 과정에서 대화나 말이 잘 소통이 안 되게 되면 엄청난 폭력이 이어지고, 그 다음에 몸 수색은 기본적으로 다 하고요... 항문 같은 경우도 그렇고 질도 그렇고, 그 다음에 굉장히 오랫동안 그런 교정을 받게 되고, 그 교정 안에서 이제 몸 안에 숨긴 것들이 최대한 다 나오게끔 이제 하는 게 보위부 구류 기간이거든요.”

김 박사에 따르면 강제 송환되면 일단 국경지역 보위부에서 1차 조사를 받고 정치사상범이 아니라 일반 사회범일 경우엔 보안부로 넘겨져 다시 조사를 받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도 구타와 고문 등의 폭력은 계속됩니다. 보안부 조사가 끝나면 원 거주지 보안부로 보내져 형식적인 재판을 받고 교화소로 보내집니다. 정치사상범으로 분류되면 도보위부를 거쳐 국가보위부로 넘겨져 더 혹독한 심문을 받게 됩니다.

김 박사는 강제 북송된 탈북민들은 계속되는 구타와 폭력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부실한 급식으로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습니다. 특히 김철옥씨의 경우엔 북한에 가족이 아무도 없어 면회 등 돌봐줄 사람이 없어 더 취약한 상황에 놓였단 설명입니다.

[김 박사] “철옥이한테 면회를 갈 만한 사람이 없다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일단은 영양실조로 인한 문제도 굉장히 크게 나타날 수가 있는 거죠. 영양실조 걸려서 사망에 쉽게, 질병도 쉽게 걸릴 수가 있고, 그 다음에 이제 폭력성이라는 게 정기적으로 이제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행사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놓이니까 이게 쉽게 살아남기가 굉장히 어려운 구조라는 거죠, 지금.”

김 박사는 유엔과 전 세계 외교 인권단체들이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을 구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김 박사] “저희가 이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결국 이제 하나밖에 없는 이제 사촌동생이 죽는다는 것도 너무 마음이 아프고.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 좀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시는 분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지금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좀 도와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으면 정말 고맙겠다라는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김 박사는 김철옥씨 신분 노출이 신변 안전에 문제가 없겠느냐는 VOA의 질문에 “지금은 공개하는 게 오히려 살리는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박사] “우리는 (상황을) 오픈을 해야만 잡혀 넘어갔을 때 어쨌든 오픈이 된 사람에 대해서는 북한 애들이 굉장히 부담감을 느낄 거고, 그래서 철옥이한테 폭력이 덜 행사가 될 거고, 그러면 목숨은 어느 정도 유지가 되지 않겠냐, 사람이 살고 봐야 되는 게 우선이니까. 그래서 이제 그렇게 누나들(김철옥씨 언니들)이랑 다 이제 이야기를 하고 결정을 낸 거죠.”

앞서 한국 내 복수의 탈북민 지원단체들은 중국 수감 시설에 장기 억류 중이던 탈북민 수백 명이 9일 밤 북한으로 북송됐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김영자 사무국장은 11일 VOA와의 통화에서 중국 내 탈북민 지원 활동가 등의 발언을 인용해 “탈북민 500여명이 9일 오후 7시와 자정쯤 두 차례에 걸쳐 단둥, 장백, 도문, 숭선 등 여러 접경 도시를 통해 북송됐다고 한다”고 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탈북민 강제 북송 규모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꺼린 채 사실 관계 확인 중이라는 입장입니다.

중국 당국은 탈북민은 난민이 아니라 경제적 문제로 국경을 무단 월경한 불법체류자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 내 탈북민 600여 명이 이번주 강제북송됐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한 질문에 중국 정부는 탈북민 문제에 대해 “항상 책임있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적절히 대처”하고 있으며 “이는 국내법과 국제법, 그리고 인도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탈북민 강제북송 비판이 '반공화국 모략'이란 입장입니다. 앞서 북한 외무성은 지난 2021년 중국의 강제 북송을 비판한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를 '극악한 인권 모략단체'라고 비난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