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부아가 치밀 때도 있다. 문제는 이를 유발한 사람이나 집단이 그럴 듯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주변에서도 부추길 때이다.

‘넌 죽일 놈이다. 그런데 떳떳하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활보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오열하고 있는데.’

그런데 자력구제는 허용되지 않는다. 답답한 노릇이다.

안산 인질극 사건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어린 소녀를 가족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했다. 그래도 그는 절대로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정의가 아니다. 만약 히틀러나 김정은이 살아있든지 잡힌다면 살려둘 것인가.

또 다른 히틀러가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수천만 명이 희생되더라도 사형되지 않는다면 화병으로 죽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형제도의 폐지와 고문의 위법성 여부는 전혀 다른 일면이긴 하나 함부로 논할 일이 아니다.

핵베낭을 지닌 간첩을 북한에서 파견한다. 확실한 용의자를 잡았다. 핵베낭이 터지면 수만 명이 떼죽음을 당한다. 용의자를 취조한다. 인권변호사가 자리를 같이 한다. 종교단체에서는 인권유린이 있다면 정권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이다. 고문을 할 수도 없고 48시간 내에 풀어줘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한 개인의 인권을 위하여 한 사람을 살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잔인하게 고문, 수만 명의 목숨과 방사능 피해를 막아야 할 것인가.

사형제도의 존폐여부는 위법성과는 무관하지만 고문의 위법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인류 전체의 담론임에 틀림없다.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오늘 국회에 공식 서한을 보낸 사형제 폐지를 위한 특별법 공동 발의의 요지를 보자.
"사형제도가 흉악범죄 발생률과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은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보복과 응징 대신 반성과 용서를 해야 한다.”

이게 이유이다. 매우 종교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일방적인 종교지상주의와 고답적 (高踏的)인 태도에 매몰되어 있다. 루소(Rousseau, Jean Jaques)의 ‘사회계약론’에는 ‘우리는 살인자에게 쓰러지지 않기 위해 살인자를 죽이는 데 동의하는 것’이라고 씌어 있다. 대표적인 도덕철학자인 칸트도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사형을 집행해야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고 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자.

인류 전체를 멸망시킬 힘을 지닌 악마와 다름없는 인물이 인류 전체를 멸망시키기 위한 흉계를 꾸미다가 잡혔다. 고문을 해야 할 것인가 인권을 보호해 주어야 할 것인가. 사형을 시켜서 후환을 없애야 할 것인가 용서를 해야 할 것인가. 교황에게 묻는다면 그는 뭐라고 답을 할까.

이건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다. 천주교 주교들에게 이런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하다못해 김현희라는 사람에게 행한 천주교의 마녀사냥에 대하여 바로잡지도 못하면서 이런 문제를 풀겠다고 나서는 꼴이 심히 건방져 보인다. 마치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돌진하는 멧돼지처럼 보인다. 적어도 지금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