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회에 가는 이유는(Church Going)

필립 라킨(Philip Larkin, 1922-1985)/후고(後考) 옮김

나는 교회 안에서 아무 의식(儀式)도 진행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다음

문을 쾅 닫고서는 교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늘 가던 교회가 아니었다:

방석, 의자들, 묘석(墓石)이 달랐고 작은 책들이 있었다;

주일에 사용했던 꽃꽂이 꽃들이 시들어 있었다;

제단(祭壇) 부근에는 놋쇠 장식물이 세워져 있었다;

아담하고 작은 오르간도 있었다;

그리고 곰팡이 냄새가 심하게 나고, 알 수 없는 깊은 침묵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래 된 침묵인지는 하느님만 알고 있다.

어설픈 경외심을 표하기 위하여

나는 모자를 쓰지 않기 때문에

모자를 벗는 대신에

자전거 체인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바지 가랑이를 묶어 놓았던 조임 쇠를 벗겨내었다.

나는 조금 안으로 들어가서 성수반(聖水盤)에 손가락을 넣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보니 천정은 거의 새로 만든 것 같았다.

청소한 것일까 아니면 새로 고친 것일까?

누군가는 알겠지만 나는 알지 못한다.

독서대에 올라 위압적으로 구절들을 봉독했는데

뜻하지 않게 더 큰 목소리로

“말씀은 여기서 끝난다.”(*)고 독서를 끝내었기 때문에

잠시 동안 메아리가 키득거렸다.

나는 거기는 더 이상 머물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는

문으로 되돌아가서 방명록에 서명하고

아일랜드의 6펜스짜리 은화(* 주; 가장 화폐가치가 작은)를 헌금했다.

(* 주; 성공회에서는 과거에 “말씀은 여기서 끝난다.”하고 독서를 끝내었지만

가톨릭에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하고 끝냄)   

나는 여태까지 자전거를 타고 교회에 가서는

그렇게 머물다가 항상 지금처럼 착잡한 심정으로 돌아오곤 했다.

교회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고,

언제 교회가 완전히 쓸모 없게 되어버릴까 하고 생각하고,

몇몇 성당을 오랫동안 보여주려면

어떻게 변화시키는 것이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양피지로 만들어진 성경과 잠겨 있는 감실 안에 있는

성반(聖盤)과 성합(聖盒)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그리고 아무나 비를 피하거나

양(羊) 우리로 쓰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쓸모 없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과연 우리는 교회들을 재수없는 곳이라고 피하게 될까?

아니면 믿음이 미신(迷信)으로만 남아

수상한 여인들이 아이들을 데려와서 특별한 제단을 만지게 할까?

암(癌)을 치유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약초를 찾게 할까?

아니면 정해진 날 밤이면 죽은 사람이 나타나 걷는 것을 보게 할까?

믿음은 사라지고 게임이나 수수께끼 속에

여전히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할 것이라고 믿게 될까?

그러나 믿음처럼 미신과 같은 기복신앙도 사라지고 나면 과연 무엇만 남을까?

풀, 잡초가 우거진 포장 도로, 찔레꽃 정원, 교회 기둥, 하늘만 남게 될까?

교회는 매주(每週) 형체를 알 수 없게 폐허화 되어가고

교회의 목적도 점점 더 퇴색되고 말 것이다.

교회 본연의 목적을 위하여

과연 누가 마지막으로 이 곳을 찾을지 모르겠다.

신자들 중 한 사람이라도 제단(祭壇)이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할지 모르겠다.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도굴꾼이나,

성가대와 파이프 오르간이나 몰약을 그리워하는

크리스마스 중독자는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와 같이 교회의 몰락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교회를 따분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잘 모르기도 하지만

유령이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유물(遺物)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이 십자가의 땅이 교외에 있었다는 것만은 안다.

옛날에는 결혼식을 하거나 아기가 탄생하거나 사람이 죽으면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기념하려면 반드시 찾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특별한 조가비 같은 이 교회를 왜 지었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이 헛간이

옛날에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무슨 가치가 있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즐겨 여기에 나를 서 있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교회는 엄숙한 땅 위에 지어진 엄숙한 집이다.

교회는 우리의 불합리한 모든 욕망들이 만나

희비가 교차하는 분위기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운명의 옷을 갈아 입는 집이다.

많은 죽은 이들이 누워있기만 해도

여기로 오기만 하면 깨닫게 된다는 것을 들었기에

누군가가 자신이 더욱더 진실하고 엄숙해지고 싶어서

이 묘지로 끊임없이 이끌려 올 것이기 때문에

나는 교회는 결코 쇠락하여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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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킨은 종교가 없었지만 성경도 많이 읽고 성공회의 교리도 많이 알았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이 교회 저 교회에 들리는 취미가 있었습니다.

그는 날이 갈수록 쇠퇴해가는 유럽의 교회를 보고 안타까워하면서

가장 큰 원인으로 신자들이 기복신앙을 믿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라킨이 기웃거리기만 하고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은 왜 일까요?

얼마 전에 교황께서 다녀가셨지만

우리 가톨릭도 질적인 성장은 하지 못하고

양적인 성장만 하다가 쇠퇴해가고 있습니다.

그 증거는 세례를 받고 나자마자 냉담 하는 신자가 많고

통계를 보면 가톨릭 신자를 보고 가톨릭에 입교할 마음을 먹었지,

사제를 보고 입교할 마음을 거의 갖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은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해결책은 교회를 평신도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