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기념일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군중들은 예수님이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키실 메시아라고 생각하고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라고 부르며 환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행렬은 예수님 자신께서도 알고 계셨듯이 얼마 후에 닥칠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는 행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셨습니다.
복음에는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행렬을 뒤따랐다고 하였지만 실제 이 행렬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어설프고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수많은 군중이 진정 예수님을 따르고 열광하였다면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로마 군인들이 출동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항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서 로마의 통치에 대항하기 위하여 시위할 것에 대비하여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어린 나귀를 빌리게 하시어 이 나귀를 타고 겸손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는 로마의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화려하고 장엄한 개선식을 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초라했던 입성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 것은 예수님이 평화의 왕이시며 이스라엘 민족의 메시아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짐바리 짐승의 새끼를 타고 오셨음은 세상의 권력, 재물과 무력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사업은 예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고통받고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이러한 부활과 승천 역시 세상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자랑스럽게 행하신 것이 아니라 몇몇 제자들만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도 구유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때 동방의 현자 세 사람이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왕으로 오신 것을 알고 경배하였지만, 천사는 소외되고 순박한 어린 목동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속의 부귀영화와는 동 떨어진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활 초기 사탄의 유혹과 싸우셨고 또한 당시의 지도층으로부터 핍박을 받으셨으며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고난의 잔을 마시면서까지 순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행렬은 죽음의 길이었지만 부활이 기다리는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는 죽는 것이 사는 것이었으며, 사는 것이 죽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은 바로 참 생명,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고통에 대한 보답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십자가의 고난 속에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 전날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해 하느님이 영광스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성주간에 죽음으로써 진정한 부활을 맛볼 수 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죽음과 부활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나를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안에서 부활할 때 우리는 이 부활절에 진정한 부활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22년 11월 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