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16. 복음묵상
하느님의 표징
2월 16일자 복음인 마르코 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자 어찌하여 이 세대가 나에게 표징을 요구하는가 탄식하시며 그들을 떠나가십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이 바리사이들과 같이 하느님의 표징을 요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조금 있으면 겨울동안 움츠려들었던 대지 위에는 하느님의 창조의 표징인 새로운 생명들이 싹을 틔우고 더 지나면 겨울 동안 삭막하였던 산과 들이 푸른 녹음으로 우거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고 우리가 첨단기술을 갖더라도 우리 힘으로는 하찮은 잎사귀 한 잎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가 푸른 대지위에 두발을 딛고 서 있는 것 자체가 하느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의 눈이 없고 믿음의 귀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표징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합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흔히 하느님의 표징으로서 치유의 기적을 보았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여의도의 어느 교회에서 보면 갑자기 앉은뱅이가 하느님의 치유의 기적으로 걷게 되었다고 선전하고 다닙니다. 물론 성령께서 하시고자 하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치유의 기적은 성령께서 하시는 다른 일에 비하면 매우 하찮은 기적입니다. 우리는 이보다 더 훨씬 위대한 기적을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정 하상 바오로 성인은 주님이 계신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가 언제나 정해진 대로 오고 가며 천지만물이 다 주인이 있으므로 천주님의 존재를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정하상 바오로 성인은 그의 신앙고백이며 호교론의 집약인 상재상서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무릇 천지에 동물, 식물과 기묘한 형상들이 어찌 저절로 생겨난 것이겠습니까? 만약 저절로 이루어졌다면 해와 달과 별이 어떻게 그 별자리의 궤적을 그르치지 아니하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떻게 그 바뀌는 순서를 어기지 아니하겠습니까?
우주의 만물이 가지각색으로 한없이 많은 것도 역시 일종의 걸작이요 명화인데 예로부터 이제까지 안타깝게도, 이에 대해서만은 그 지은 자를 묻지 아니함은 무슨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천지에 어찌 그 지은이가 없겠습니까? 이를 보고도 천주를 믿지 못함은 유복자가 그 아비를 보지 못했다 하여 그 아비 있음을 믿지 아니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마르코 복음서 7장에서 예수님은 귀머거리를 고치서면서 ‘에파타’ 곧 ‘열려라’라는 말씀을 하셔서 귀머거리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육신의 귀, 육신의 눈을 열라는 말씀이 아니셨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눈은 열려있고 육신의 귀가 열려있을지라도 우리 영혼의 귀가 닫혀있고 영혼의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022년 11월 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