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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 복음 20장 15절 ] 여인아, 왜 우느냐?
복음일 2015-07-22 작성자 김원율 안드레아   (조회 : 972)

여인아, 왜 우느냐?

 

오늘 7월 22일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입니다. 이른 아침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으나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조용히 나타나셔서 “여인아, 왜 우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순간이 바로 인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지극히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곁을 지켰을 뿐 아니라 가장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제자들에게 알립니다.

 

우리는 오늘 요한복음 20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부활을 보면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하느님의 구속사업의 시작이라 할 수 있지만, 실은 창세기에서 신약인 복음서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모든 내용이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창세기에서 원조들이 주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금단의 열매, 지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나갈 때 하느님께서는 하와의 후손인 한 여인이 뱀의 머리를 부술 것이라고 예언하시면서 인간의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최초로 약속하신 것이므로 원복음(原福音)이라고 불리어집니다. 그 후 성경의 모든 역사와 교훈서는 하느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약과 이러한 약속을 이행해가는 과정을 기술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약속하신 하느님 구원이 실현되기 시작하는 시점이 바로 예수님께서 울고 있는 여인에게 다가가셔서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고 물으신 때였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인간 구원의 위대한 역사는 이처럼 한적한 아침, 호젓한 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수님 시신을 찾다가 실망하여 울고 있는 한 여인에게 나타나셔서 조용하게 물으신 데서 시작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았던 여인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면서 삶의 보람을 느꼈고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였습니다.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보고 슬픔과 절망에 빠졌던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녀의 내면을 채웠던 슬픔은 기쁨이 되었고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도 마리아 막달레나가 만났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교회를 찾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기쁨과 희망이 나의 내면을 채울 것이며 이로써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비록 예루살렘의 무덤가는 아니지만 우리는 마음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를 갈망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천주교회 안에서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하면서 길거리에서 저주와 막말로 범벅이 된 시국미사를 올리는 사제들에게 이 세상 구원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오늘 복음을 읽으며 묵상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사회에서 분쟁이 있고 갈등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 달려가서 혼란을 확대하고 조용해질 만하면 어떻게 해서든 그 불씨를 살려서 분란을 끝없이 이어가고자 발버둥치는 사제들을 볼 때 어찌 이들이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여인에게 나타났던 부활하신 주님을 따르는 천주교의 성직자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자신들만의 아집과 편견에 빠져 신자들의 비웃음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회구조를 바꾸겠다고 날뛰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사제들을 잘 관찰해보십시오. 예수님을 뵈었던 마리아 막달레나의 내면을 채웠던 기쁨과 희망은 없고 그들의 내면에 오직 증오심과 절망만이 자리하고 있는 사악한 집단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도 바꾸지 못하는 이들이 사회의 무엇을 바꾸겠다는 건지 참으로 허망한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오늘 아침 복음에서 한 여인에게 나타나셔서 조용한 음성으로 “여인아, 왜 우느냐?”고 물으시면서 인간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놀라는 경천동지할 만한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인간의 내면에 하느님의 사랑을 심는 일이며 또한 인간의 내면에서 조용히 시작되는 것입니다. 조용히 내면을 성찰하며 하느님께서 내 안에 있음을 묵상 중에 깨닫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희망과 만나게끔 하는 것이 바로 인간세계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진정한 구원의 뜻을 알지 못하는 한 길거리 미사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강정마을에서 밀양 송전탑 아래 어디에서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구원의 장소는 찾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아담이 죄를 짓고 두려워 숨자 처음으로 인간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담아, 너 지금 어디 있느냐?” 지금 광화문으로, 강정마을로, 송전탑으로 떠도는 신부님들에게 하느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지금 어디 있느냐? 그곳에는 인간의 구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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