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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요한5,19] † 세속화란 무엇인가?
복음일 2015-10-12 작성자 윤다니엘  (조회 : 1284)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 2. 세속화란 무엇인가?
 
1. 세상이란 무엇인가? 의 전문을 먼저 읽은 후에 본문을 읽으시기를! 아멘.>
 
 
당신은 죄악의 일이 사탄에게 속한 것임을 쉽게 믿지만, 세상의 일도 사탄에 속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1요한5,19절은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한 자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사탄은 분명히 죄악의 일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려는 것이 헛수고임을 잘 알면서도, 이제는 세상이라는 그물을 치고 포기하지 않는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대개 그 위험을 알고서 현명하게 믿음 안에서 피해 버리기도 하지만, 교회 안과 교회 밖의 특수한 사회적 환경들을 이용하여 인간의 '주의'사상을 만들어 내고, 무서운올무독선인본주의안으로 교묘히 빠져들게 한다. 그러므로 사탄은 사람을 유혹할 때, 그 유혹의 망()을 매우 교묘하게 처서 많은 믿는 이들을 그 안으로 끌어들인다.
 
무슨 말인고 하니, 믿는 이들은 죄악과 정욕을 피하는 것은 매우 합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세상의 체계인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과학, 문화, 예술과 같은 해()가 되지 않을 법한 것에 대해서는 쉽게 중심을 잃고 사탄의 유혹의 미끼에 넘어간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의 일에 사탄이 매우 교묘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등한히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러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의 이야기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오늘 묵상의 내용이다.
 
세상에 대한 우리 주님의 판결은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요한12,31절에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정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 세상이 근본적으로 잘못이 없다면 주님이 결코 이러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어서 주님은이 세상의 임금이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사탄과 세상 체계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의 심판받음과 사탄의 심판받음이 서로 연관된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당신은 오늘날 사탄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과학, 문화, 예술 등 모든 세상 체계의 왕이며 또한 이러한 것들이 사탄과 함께 심판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당신은 사탄이 모든 세상 체계의 일을 관장하는 실제의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가?
 
예를 들면, 그것이 매춘과 환락가나 노름이나 마약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리스도인들의 직감적인 반응은 이를 반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분명히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그것이 의학이나 학교나 사회복지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아마 전혀 이러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는 동의하고 열렬히 지지할 것이다.
 
위의 이 두 극단 사이에는 아주 다른 많은 일이 있는데,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으며, 그 영향도 서로 다르고, 아마도 각 사람들의 견해도 달라서, 그 가운데 명확한 한계를 긋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사실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심판을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곧 세상에 속한 일뿐 아니라 모든 사물이 모두 함께 심판받았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땅을 창조하셨지만 사탄은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죄는 창세기 3장에서 생겨났지만, 창세기 4장에 이를 때 비로소 죄에 무엇인가가 더해진 세상이 사탄에 의해 만들어졌다. 세상이란 무엇인가? 세상이란 사탄 아래 있는 모든 인간 생활의 조직을 말한다. 하느님은 그분 자신을 위하여 사람을 창조하셨지만, 사탄은 인류를 조식화하였다. 사람은 더 이상 하느님을 위하지 않고, 사탄에 의해 그리고 사탄을 위해 완전히 조직화된 것이다.
 
요한복음 1231절은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임금이 밖으로 쫓겨날 것이라고 말한다. 언제 이 일이 있어났는가? 33-34절에 의하면, 그 일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일어났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서 세상은 심판받았고, 이 세상 임금은 쫓겨났다. 그러나 사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심판, 곧 최종 판결은 받았지만, 사형의 집행은 그분의 다시 오실(재림) 때가 될 것이므로(묵시20,10), 종말에 그의 활동은 더욱 발악할 것이다.
 
<이 부분들의 충분한 이해를 위하여http://cafe.daum.net/yoondaniel”‘계시록 연구를 참고하시고, 시작단계이므로 귀하의 참여를 기도드린다! 아멘>
 
온 세상은 악한 자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이 말씀은 세상의 일부분이 아닌 온 세상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순간이라도 사탄이 단지 사람의 마음 가운데 있는 죄와 정욕을 통해서만 하느님을 대적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탄은 세상에 속한 모든 일을 통하여 하느님을 대적한다!
아마도 당신은 세상에 속한 것들이 생명이 없는 물질적인 것들이므로 본질상 그것들이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도 하느님의 뜻을 저해하는데, 왜냐하면 신성한 생명이 없는 모든 일은 다 하느님의 뜻을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에는 각기 종류대로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이는 전 생물계를 지배하는 번식의 율()을 의미한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오히려 이러한 율의 통치를 받지 않는다.
인간은 종족번식을 통하여 인류의 세대들을 이어간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곧 부모가 모두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그 낳은 자녀가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단 한 세대조차도 그렇게 될 수 없다. 각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에는 하느님의 새로운 역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원칙은 인류의 일 가운데 더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인류의 본성에 속한 모든 것은 다 자연적으로 지속되지만, 하느님께 속한 모든 것은 오직 하느님의 역사가 계속될 때만 가능하다.
 
세상은 하느님의 역사가 없이도 계속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곧 하느님의 특별한 역사로 그 새로움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는 것들과 그 자체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 것들이 다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자연히 이와 같으며, 이것이 바로 세상의 성질이다!
이러한 것은 하느님의 뜻과 그리고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성경과 우리 믿는 자들의 삶의 체험으로부터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끌어내 설명하겠다.
 
먼저 정치적인 면을 보자.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가 특별히 하느님의 복을 얻은 나라와 그 통치의 예를 보여 준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주변 열국과 전쟁에서 이기고, 보다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왕을 세울 것을 하느님께 요구했고, 결국에는 하느님께서 그분의 때에 그분이 택한 다윗 왕을 그들에게 주시고, 이 왕으로 하여금 그분 자신의 인도 아래 나라를 세우게 하신다는 내용을 말하고 있다.
설령 이 일이 매우 분명한 하느님의 행하심이었을지라도 그 나라의 자연스런 정치적 추세는 분명히열국과 같이그분을 떠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라, 곧 국가는 세상에 속하므로 모든 세상에 속한 일과 마찬가지로 그 경향이 하느님의 뜻과 상충된다. 세상의 어느 곳이든 한 나라의 정부를 그대로 놔둘 경우에, 점점 시간이 갈수록 하느님을 멀리 떠나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추세이다.
이방 국가의 정치가 이와 같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도 이와 같았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특별하게 역사하시기를 멈추실 때마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상을 섬기는 정치와 연합했던 것이다!
그 사이 사이에 회복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 매번의 회복에는 모두 하느님의 분명한 개입이 있었는데, 만일 이러한 개입하심이 없었더라면 정세는 훨씬 빠른 내리막길이었을 것이다.
 
다음은 경제적인 면을 생각해보자. 동일한 일이 경제계에도 매우 분명히 드러나는데,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실 경제계만큼 불성실하고 부패하고 유혹이 심한 영역은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극심한 생존경쟁의 경제계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다. 극심한 생존경쟁과 이익창출의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부정과 부패, 권력과 탐욕, 이기주의와 배타성이 깊이 개입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회적 부패의 온상지가 경제계에 집중되거나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두 부류의 사람의 예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의 생명을 잃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그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진주를 사는 상인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16,26; 13,45-46절에서 천국을 후자, 그의 소유를 팔아서 진주를 사는 상인에 비유하셨다.
 
하느님의 영은 종종 경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그들의 사업을 통하여 복음을 널리 전파하고 또한 하느님의 신성한 목적을 위해 이익금을 사용하게도 하신다. 이러한 특별한 기업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상인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느님께 대한 경외함은 오직 하늘로부터 은총을 받아야만이 존재할 수 있는 반면, 경제계의 교활함과 그것이 창조한 효과적인 이익단체의 조직들은 스스로도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도록 한다.
 
이와 같은 기업의 첫 세대에는 그 기업의 설립자가 전수한 신성한 생명으로 원래 세상에 속한 기업을 하느님의 주권 아래 온전히 보전하도록 애쓴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업의 첫 세대, 곧 그 기업의 하느님을 경외하는 설립자의 의도와는 달리, 다음 세대에 이르면, 그러한 생명의 흐름은 사라지고, 그 기업은 언제부터인지도 모르는 사이에 자동적으로 세상의 체계에 떨어지고 만다. 그 기업 자체는 여전히 번창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은 철저히 상실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교육은 어떠한가? 우리는 다시 교육에 대해 성경과 체험에서 이 일을 설명할 수 있다. 우화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하느님께서 사울을 거절하고 다윗을 택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남보다 머리가 뛰어난 사람보다는(사울의 신장은 일반 백성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음) 그분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기뻐하신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더 진지하게 말한다면,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요셉, 모세, 다니엘 같은 사람들의 지혜가 하느님께 공개적으로 쓰임 받았고, 그들은 필요한 깨달음을 모두 하느님 자신으로부터 직접 받았다. 그들은 그들이 받은 세상의 교육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
 
사도 바오로는 분명하게 모든 학문을 해()가 되는 만물 중의 하나로 여겼는데, 이는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필리3,8). 바오로는 세상의 지혜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지혜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을 그었다(1코린1,21, 30).
 
대학교수로 재직한 나의 오랜 체험으로 볼 때, 학문은 본질상 세상에 속한 것임을 증언할 수 있다! 서구의 역사상 전통 있고 유명한 대학들은 대부분 선교사 등 그리스도인이 설립한 것인데, 그들은 학생들이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영향 아래서 좋은 교육을 받기를 희망하였다. 이처럼 설립자가 살아 있을 때는 그 사람이 진정한 영적인 소망을 학교에 가져왔으므로 그 대학의 교풍과 대학의 분위기는 분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설립자가 세상을 떠난 후 시간이 경과할수록 영적인 통제력이 소멸되어, 교육은 유물론적인 경향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멀리하는 세상의 조류를 따르게 된다. 더욱이 이러한 현상, 곧 세속화의 경향은 회복되지 않는 특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떤 학교들은 종교적인 전통이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오랜 시간 후에야 이러한 상황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이의 추세는 분명한데, 대다수의 이러한 학교들은 오늘날에는 원래의 의도에서 완전히 빗나갔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의 이러한 학교들의 대다수는 그 원래의 의도에서 이미 완전히 벗어났다! 중고등학교를 포함한 기독교계의 대학들, YMCA, 신문사, 병원, 복지기관 등등 각종 기관들의 경우도 내용상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 원래의 의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물질적인 일이 영적인 것의 통제 하에 있을 때는 틀림없이 종속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러나 일단 그 통제에서 벗어나면 즉시 그것들의 배후에 있는 악한 권세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다음은 선교의 영역을 살펴보자. 과거 선교 사업의 확장은 모든 종교 기관에 대해 이 원칙을 시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지금으로부터 1세기 전에 교회는 분명한 영적인 진전과 복음 전파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에도 학교와 병원과 복지시설 등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건물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고 상당히 복음적인 성격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최신의 크고 훌륭한 건물들과 외형의 화려한 장식품으로 대체되었지만, 초기에 비하면 오히려 구원받은 사람이 매우 적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소위 기독교계의 많은 대학들이 본래의 의도와는 먼 순수한 교육기관으로 전락했으며, 진정한 복음의 동기도 잃어버렸거나 잃어버리고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계가 설립한 많은 병원들이 단지 육체의 질병을 치료해 주는 곳일 뿐 사람의 영적 질병을 치료하는 곳은 이미 아니다! 초기 이러한 기구를 설립한 사람들은 긴밀히 하느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이러한 기구를 견고하게 하느님의 뜻에 부합시키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죽은 후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기구들의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즉시 세상에 속한 표준으로 떨어져, 세상에 속한 목표를 추구하기 시작하였고, 이미 거의 모든 기구가세상에 속한 일이 되도록 변질되었다.
 
또한 오늘날 하느님의 밭인 교회는 사람의 경작과 얼마나 다른지!
하느님의 은혜와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일종의 고유한 능력을 갖추는데, 만일 교회가 그 능력에 호응하면 하느님을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지만, 만일 그 길을 잃으면, 특히 오늘날과 같이 교회의 지도자들이 타락하면, 교회내의 분열과 갈등이 온 사회로 전이하게 된다.
 
위의 몇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따금씩 만들어진 교회의 부대사업이나 자선 사업들이 믿음과 선교의 목적으로 세워지고 개척되었지만, 시간이 지나 일단 규모가 커지고 사회적 전문화된 표준이 정해지면 아주 쉽게 세속적인 것을 모방하며, 처음의 믿음을 완전히 떠나게 되었음을 많은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많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설립한 학교, 병원, 복지 기관 혹은 신문사, 방송국 등 종교기관이 있다고 하자! 세월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그것들은 운영이 될 것이며, 어떤 곳은 표면적으로는 세상의 칭찬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나 병원이나 복지시설 등은 하느님의 생명의 신성한 공급이 없이도 일반적인 관리 기술만 가지고도 그 기관의 수준을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립 당시의 이상이 사라졌어도 세워진 기관은 무한히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그것들은 세속적인 것이 되어서 하느님의 생명이 없이도 유지될 수 있는 일반기업의 영리 사업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게 된 것이다!
 
하느님께서 건축하시는 교회는 그 부대사업들, 곧 교회 가운데 성도들의 믿음과 이상으로 말미암아 설립된 가치 있는 자선 사업과는 다르다. 후자는 비록 영적인 이상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자체에 독립적인 생존 능력이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교회에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하느님의 자녀의 믿음으로 세워지고 개척된 것이지만, 일단 규모가 커지고 전문화된 세상의 표준이 정해지면 아주 쉽게 세상 사람의 어떠함을 모방하여 유지하게 되고 처음의 믿음은 완전히 떠나게 된다.
 
교회의 허락과 믿는 이의 믿음으로 설립한 각종 부대사업들, 곧 학교, 병원, 출판사, 복지시설 등은 앞으로도 여전히 그것들은 운영될 것이며, 어떤 기업이 그것들을 인수하지 않아도 그 일은 여전히 진행될 수 있고, 일의 표준도 효과적이며, 칭찬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학교나 병원이나 복지시설 등은 하느님의 생명의 신선한 공급이 없이 일반적인 관리 기술만 가지고도, 그 기관의 수준을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이 사라졌어도 세워진 기관은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유별나게도 많은 복지시설들을 생각해보라! 오늘날의 복지시설이란 가톨릭교회가 아니더라도 일반 개인이나 기업도 정부의 지원(전문 복지사제도, 막대한 국고보조금 과 각종혜택 등)으로 훌륭하게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그것들은 세속적인 것들이 되어서 하느님의 생명이 없이도 유지될 수 있는 사업과 다를 바가 없게 된 것이다. 주님은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분의 판결은 이 모든 일을 포함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것이다! 곧 만일 내가 당신에게 당신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당신은내가 지금까지 목숨을 바쳐 설립한 세계적인 복지시설을 운영합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 말은 당신이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할 뿐, 자신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을 수 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내가 만일 당신에게 복지사업도 사탄이 통제하는 세상 체계의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범위를 넓혀, 당신이 신부, 수녀, 의사, 복지가 등의 신분으로 지금 학교나 복지 시설이나 병원 등을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 내용은 당신에게도 동일하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복지사업을 그만둘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하느님의 원수가 다스리는 이 땅에 있기 때문에 근신해야만 한다. 당신이 깨어있지 않으면, 당신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쉽게 그의 간계에 빠져 그의 노략물이 될 것이다!
당신이 근신하여 행하지 않는 한, 당신은 즉시 사탄의 함정에 빠지게 되며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모든 자유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제 이 주제의 결론을 맺어보자. 우리는 정치, 사회, 교육, 종교, 과학,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초기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이러한 세속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벗어나는 헌신, 곧 새롭게 자신을 드리고 전심으로 하느님의 일에만 자신을 드리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세상을 벗어나는 것은 구원의 문제이다! 우리의 본성에 따르면 모두가 사탄의 체계에 빠져 있으므로 주님의 긍휼이 없다면 벗어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헌신이 우리를 구원할 힘을 주지 못한다! 오직 그분의 긍휼과 그분의 십자가의 구속의 역사를 의지하는 것만이 우리를 이 체계에서 벗어나 구원받게 할 수 있다.
그분은 능히 이렇게 하실 수 있으며, 그분이 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다음 (B-3)‘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참된 의미부분에서 다룰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의 자연적인 추세는 사탄을 향한 것이며, 하느님을 멀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들이 아마도 영적인 사람들이 시작했으며 그 목적도 하느님을 위한 것일 수 있지만, 세상의 요소들이 불가피하게 뒤섞이면서 하느님의 생명의 통제가 일단 사라지기 시작하면, 이러한 일들은 자동적으로 바른 길을 벗어나 반대 방향을 향하여 내닫게 된다!
 
사탄은 시종일관 세상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일들이 자기에게 완전히 돌아올 때를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심지어 그는 세상의 일이 그의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으며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이 아마도 완전히 그의 수중에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사탄의 왕국에 참여하지 않도록, 또한 사탄의 체계의 어떤 한 부분이라고 접촉하려는 의도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항상 근신하며 깨어 있어야만 한다. 알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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