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커뮤니티 > 오늘의 복음
  1. home
  2. 커뮤니티
  3. 커뮤니티 > 오늘의 복음
기사 확대기사 축소
게시물 내용
제목 [1베드3,20] † 세상은 하느님과 원수이다.
복음일 2015-10-26 작성자 윤다니엘  (조회 : 1413)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 3-1. 세상은 하느님과 원수이다.
 
<어찌할꼬!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는 미사의 은총이 사라져 버렸다! 주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당신부는 말씀 전례 제1독서 후 화답송2독서 후 복음 환호송 알렐루야!’를 감사와 찬미로 크게 찬송을 부르지 않고, 모기 소리처럼 작은 소리로 찬송을 마치 장송곡처럼 부른다며 엄하게 신자들을 나무란다.……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장면을 자세히 관찰해보라!
1독서(이사야서의 말씀), 2독서(로마서의 말씀), 화답송(시편의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 의미도 전혀 모르면서, 오늘 독서자로 선택된 한복까지 곱게 차려입은 형제자매가 혹 실수할까봐 조심조심하면서 소리로말씀을 읽고 거룩을 흉내 내는 독서가 우리에게 무슨 영적인 양식이 되는지? 정말 교회의 이것을 알고 싶다!
 
신부의 강론에는 오늘 말씀의 해석은 한마디도 없고, 독서자도 그 말씀의 내용은 모른 채, 외국어처럼 아리송한 그 내용을 소리로만 읽는 그 독서만으로, 어떻게 우리 평신도들이 감동을 받고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겠는가?
불행하게도 오늘날 말씀을 영으로 전달하는 강론대의 사역자가 사라졌으므로, 당연히 성령의 역사는 없고 생명이 없는 죽은 미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신부가 전한 말씀을 듣고 성령 충만하게 되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은 자연히 감사와 찬미를 드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빵은 내 몸이다.”(마태26,26) 또한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한1,14)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찬 전례가 의식이라면, 그 참된 내용은 몸인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씀이 없는 성찬 전례는 시쳇말로 앙꼬없는 찐빵이다. 만일 성찬 전례와 성체의 분배가 신부들만의 독점권이라면(?), 먼저 말씀의 실력부터 갖추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례 의식이 우상이 될 수 있다! 참빵인 말씀을 먹어야 우리가 산다!(요한6,63)
 
수시로 있는 일이지만 오늘도 심했다! 복음 말씀의 선포와 신부의 강론시간을 서울에서 내려온 주교회의 소속 어떤 형제의 개인적인 자랑과 잡담그리고 경향잡지라는 잡지의 구독 선전으로 대신한 것이다! 신성한 미사 예배를 위하여 이러한 광고는 당연히 광고시간에 해야 하며, 먼저 신자들의 양해부터 구해야 할 것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신자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하느님 말씀의 지식도 부족하고, 이 시대 갈등과 분열되고 있는 교회의 문제점들에 대한 고민도 없이, 냉담자들이 늘어나는 정확한 원인도 분석하지 못하면서, 평신도 위에 군림하면서 오만과 허세와 태만으로 굳어버린, 문제의식이 조금도 없는 성직자들을 바라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처럼 순한 우리 평신도들이 참 불쌍하다!
 
오래 전 내가 유학 중일 때 경험한 충격적인 장면이 떠오른다! ‘미사 강론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리고 당신은 골프나 치려고 미국에 온 신부냐?’ 라고 미사 시간에 어떤 형제가 벌떡 일어나 나무라던 충격적인 장면이다!(그 때 이 신부는 우리나라에서 꾀나 이름이 알려진 인기 있는 신부였다). 그리고 몇 일후, 미국교포신문에 대문짝만한 기사로 이 장면이 실린 것을 보고 듣고 경악한 일이 생각난다!
 
그때는 그 형제를 정신 나간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우리도 이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한심한 생각까지 든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여전히 미사 시간에 내가 살기 위하여 이상한 버릇이 작동하기 시작하였고, 오늘 복음 말씀이 무슨 뜻인지 혼자서 골똘히 묵상하기 시작하였다!>
 
---------
 
사탄은 하느님의 원수이다.
사탄은 사람의 육체를 통하여 역사하며 이 땅에서 세상의 체계를 구축하는데,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 가운데 연루되어 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의 체계는 특별히 아버지 하느님과 원수가 된다. 당신은 세상과 육체와 마귀라는 이 세 종류의 어둠의 권세가 신성한 세 우위격과 어떻게 대립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육체와 성령이 대조되며, 사탄과 그리스도 예수가 대조되고, 세상과 창조자 아버지가 대조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세상은 시종 근원이신 아버지 하느님과 적대관계이다. 하느님께서 창조시에 말씀하신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창조가 그분의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이며, 또한 하느님은 이 계획에 따라서 끊임없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창세전에 그분의 마음에는 이 땅에서 사람을 최고의 존재로 세워 제한 없이 그분의 아들의 특성을 나타내는 질서를 세우려는 갈망이 있으셨다.
 
그러나 사탄이 그 가운데 개입했다. 사탄은 땅을 그의 발판으로 삼았으며, 사람을 그의 도구로 삼고, 하느님의 창조를 탈취하여 자신을 그 가운데의 중심으로 삼고 자기 자신의 형상의 어떠함을 반사케 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과 부합되지 않는 사물의 체계는 직접적으로 하느님의 계획을 거스른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그 특성이 완전히 다르고 적대되는 두 세계와 두 권위의 영역을 대면하고 있다. 이제 내가 이 주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장래에 천당에 가는가 아니면 지옥에 가는가라는 문제가 아니라, 오늘 이 두 세계에서 나는 도대체 그리스도께서 권세가 잡고 주가 되시는 체계에 속해 있는가? 아니면 사탄이 실질적으로 머리가 된 대적의 체계에 속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단지 죄 사함을 받거나 지옥에 가지 않는 것과 같은 문제가 아니다. 성경에서의 구원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우리가 구원에 대하여 매우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을까 두렵다! 우리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구원은 지옥을 벗어나 천당에 가는 것이거나, 아니면 죄악을 벗어나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은 무엇과 관계가 있는가? 구원은 단지 죄 사함을 받거나 지옥에 가지 않는 것과 같은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구원이 세상 체계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보아야 한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한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오늘 내가 구원받은 것은 사탄이 하느님의 뜻을 대항하기 위하여 세워 놓은 모든 세상 체계와 세상 조직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 범위는 모든 세상 체계와 세상 조직을 포함한다.
곧 그곳에서는 죄와 정욕, 사람의 생각과 문화와 철학, 과학과 교육, 심지어 인류 사회와 정치의식, 세상의 종교와 세상의 교회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의심할 것도 없이 세상의 종교와 세상에 속한 천주교와 세상에 속한 개신교의 교파는 물론 세상적인 교회까지도 포함된다! 사람의 타고난 능력이 다스리는 곳, 곧 혼 생명과 자아의 영역에는 사탄이 직접 선동하는 세상 체계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세상이라면 구원은 무엇인가? 구원의 의미는 이것, 곧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내가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세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가 더 이상 사탄에게 속한 세상 사물의 체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마음은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의하시는 일만을 주의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분의 영원한 뜻을 내 목표로 삼고 하느님의 뜻 안으로 들어갈 때, 나는 사탄의 체계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게 된다.
 
마르16,16절에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고 말한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은 매우 분명하다. 내가 한 걸음 내딛고 믿고 세례를 받는다면 나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세례를 소흘히 해서는 안 된다. 세례는 중대한 일이다. 이것은 매우 반대되는 두 세계에 대한 문제로서 우리가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옮겨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세례와 구원을 서로 관련시켜 말하므로, 이것을 설명한 1베드3,20절과 창세기6-8장을 묵상해보자! 1베드3,20절은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느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21).” 곧 베드로는 노아가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처럼 우리도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오늘날 세상의 체계와 분리되는 문제이다.
 
이제 이 말씀을 더 분명히 이해하기 위하여 창세기 6-8장을 묵상해보자. 이 그림의 뜻은 매우 깊다. 우리는 노아의 날에 온 세상이 부패했음을 본다. 땅은 원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인데 사람이 자신을 사탄의 손 아래 둔 후로 그 땅도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아 완전히 부패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건축하라고 명령하셨고, 그의 집안 식구와 피조물이 그 안에 들어간 후에 홍수가 임했다. 홍수가 천하의 모든 높은 산을 삼켜 버렸으며, 그들은 그들의 방주로 말미암아 땅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창세7,17).
 
사람과 육축을 포함한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은 다 멸망했으나, 오직 방주 안에서 물 위로 떠오른 사람만 구원을 받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단지 홍수에서 벗어났다는 데에 있지 않다. 그것은 이 이야기의 중점이 아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오직 그들만이 그 부패한 세상 사물의 체계, 곧 물 아래 묻혀 버린 세상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나온 사람은 반드시 살고, 그 가운데 남아 있는 사람은 반드시 멸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본질적으로 오늘 그 멸망받기로 정해진 사탄에 속한 세상의 체계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나왔는가? 그것은 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믿는 이들의 세례는 노아가 방주에서 홍수를 통과한 것처럼 물을 상징적으로 통과하는 것이다! 이 물을 통과함은 그들이 세상을 벗어나고 하느님께서 심판하신 세상 사물의 체계와 심지어 그곳의 왕, 곧 사탄에게서 벗어남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 아래에 있는 것이 단지 당신뿐만이 아님을 기억해야만 한다. 당신이 물속으로 들어갈 때 온 세상도 당신과 함께 들어간 것이다. 당신이 물에서 올라올 때, 당신은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져서 그 홍수위에 떠 있는 방주 안으로 올라온 것이다!
이제 그 세상은 마치 노아의 세상과 같이 물 아래 침몰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끝났으므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당신은 세례로 말미암아 주님, 나는 나의 세상을 뒤에 남겨 놓았습니다. 당신의 십자가가 나의 세상을 영원히 나누었습니다!“라고 선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표시는 우리가 세례의 물을 통과할 때, 이전의 세상 체계에 속한 모든 사물이 그 물로 말미암아 끊어졌으며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오직 당신만이 물에서 나온 것이다! 당신에 대해 말하자면, 당신은 심판 아래 있는 세상으로부터 나와서, 하느님의 생명의 새로움이 가득한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속에 들어간 것은 단지 당신만이 아니라 당신의 세상도 당신과 함께 들어가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당신이 처한 새로운 위치에서 본다면, 당신은 이 물이 당신의 이전 세상에 속한 것을 묻어 버렸음을 발견할 것이다. 노아와 그의 집안 식구를 구원한 홍수는 또한 그들이 이전에 생활하던 세상을 삼켜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동일한 물이 한 면에서는 당신과 나를 그리스도 안의 구원의 입장 위에 두며, 다른 한 면에서는 사탄의 모든 세상 사물의 체계를 물 아래로 매장해 버린다! 당신은 세례로 말미암아 당신 자신의 아담에 속한 모든 역사를 끝낼 뿐만 아니라 당신의 세상도 끝내는 것이다. 이것은 둘 다 죽고 매장되는 것이며 이것의 부활은 없다! 이것은 모든 것의 끝이다!
 
이것은 이제 당신이 이전의 세상적인 어떤 것도 새로운 세계 안으로 가져올 수 없다는 말이다! 아담 안에서 이전 영역에 속한 모든 사물은 그곳에 남겨졌으며 결코 되돌아올 수 없다!
당신의 지난 세상적인 모든 지위나 명예와 덕망과 평판이나 죄와 죄들이, 당신이 하느님의 일을 만지거나 하느님의 교회 가운데 와서 하느님을 섬길 때, 당신은 여기서 자유자도 없고 종도 없으며 고용주도 없고 피고용자도 없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이 물을 통과할 때 그 모든 세상 사물의 체계는 다 사라지며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도리어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도 없고 그리스인도 없고, 야인이나 스구디아인도 없으며, 다른 어떤 것이 없고 오직 한 새사람뿐임을 볼 것이다!
1베드3,2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라는 이 구절은 장래의 모든 특징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전혀 새로운 사물 안으로 들어갔음을 나타낸다.
 
이제 방주가 더 새로운 땅에 머무르며, 방주 안에 새 창조를 예표하는 충만한 피조물이 있음을 인해 하느님을 찬미하자!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 하느님은 전혀 새로운 창조를 낳으시고, 부활한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사람을 이 새 창조 안으로 이끄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과 나는 이 새 창조 안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우리가 세례를 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마태28,19절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말한다. 곧 그 대답은 세례는 주님이 친히 정하신 명령이라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도 사람의 만류하는 충고를 거절하시고 이 길을 가셨다(마태3,13-15).
 
1베드3,21절에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느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곧 선한 양심이 하느님을 향하여 간구하고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증언은 곧 선포이다!
 
그러므로 세례란 당신이 언어로는 말해 낼 수 없는 어떤 일을 당신의 행함으로 말미암아 확실히 선포하고 거기에 서는 것이다. 당신은 물을 통과함으로 온 우주를 향하여 당신이 이미 당신의 세상을 뒤에 두고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왔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당신은 이제 공개적으로 하느님께서 당신을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기신 곳에 서는 것이다(1코린1,30). 하느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기셨는지는 그분의 역사요 신비이다!
할렐루야! 아멘.
목록
독자리뷰1건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hailgjmh  ( 2015-10-28 )

알렐루야...아닌가요? ㅋ
영성이 메말라 비틀어져 지내는 차에 참 좋은 묵상거리를 받아갑니다.
감사합니다.

하단메뉴

가톨릭수호닷컴좌경종북언행고발개인정보 처리방침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