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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권 몬시뇰 님의 특별강론

성숙한 신앙


그리스도인의 최초의 신앙고백은 세례성사를 받을 때 신앙 고백문, 즉 사도신경을 읽는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도신경은 첫째 세례를 위한 것이고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므로 세례 때 고백하는 신앙의 진리는 삼위일체와 연결됩니다. 사도신경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제 1위격인 성부와 그분의 창조업적에 대하여, 다음에는 제2위격인 성자와 인간구원의 신비에 대하여, 끝으로 인간 성화(聖化)의 원천이신 제3위격인 성령(聖靈)에 대하여 믿고 고백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90조)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우리가 믿는 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성부를 믿는 것이지 성부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론, 진화론은 교리적인 시비가 아니며, 창조론과 진화론을 대립시키는 것은 교리적인 의미가 없습니다.


신경(信經)의 내용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경에 언급되지 아니한 내용도 하느님께서 이룩하셨다고 성경과 성전이 증언하는 것은 다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계시종교이며 하느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 계시이며 이 계시에 인간이 응답한 것이 신앙입니다. 하느님이 계시하신 것은 그대로 믿어야 하며 인간이 이를 취사선택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경의 조목을 삼위일체 신앙에 연결시키지 않고 따로 떼어서 믿는 경우, 웃지 못할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하느님의 피조물인 천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예수님의 강생과 수난은 믿으면서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을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선택적으로 믿거나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중에서 이것 저것 선택 취사하여 믿는 것은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근본적인 대상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며, 모든 구원의 진리는 하느님께서 계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신앙은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참된 신앙, 성숙한 신앙은 우리의 연약한 지성이나 감성에 의지하여 하느님이 계시하신 내용을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계시하신 진리를 인간이 승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신앙은 하느님께서 계시한 진리는, 하느님께서 계시하셨다는 이유만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인간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의 스승이지, 사람이 하느님의 스승노릇을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이지, 우리가 하느님을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들 중에는 스스로 하느님을 다스리려고 하는 신부들이 있습니다. 어찌 인간인 성직자가 하느님을 다스리려고 하는 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올해로 89세인데 제 나이가 되면 눈에 정치가 환히 보입니다. 신부 들 중에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서 주제넘게 자신이 위대한 인간으로 착각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인간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의 겸손을 가르치는 것이 교회입니다.


물질과 영성


신자들 중에는 어떤 물질에 영성이 있다고 숭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장 흔하게는 성물을 축복해달라고 하는 신자들에게 이런 경향이 있습니다. 축성과 축복은 다르며 절대 다수는 단순한 축복에 해당합니다. 축성이라 함은 인물이나 사물을 하느님을 흠숭하는 데만 쓰기 위하여 영구히 갈라 놓는다는 말입니다. 예컨대 신부의 서품식이 바로 축성식이고 성사집전에만 쓰이는 성유는 축성된 기름입니다.


신자 중에는 십자가 상이나 묵주를 가져와서 축성해달라고 하는 신자들이 있는데 이는 축복이지 축성이 아닙니다. 물질에 성수를 뿌리고 십자 성호를 그어도 그 물질에 하느님의 능력이 붙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묵주, 성상 등을 축복하는 것은 그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는 의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심도구에 성자(聖字)를 붙혀서 축복한 물을 성수(聖水), 축복한 나뭇가지를 성지(聖枝), 봉헌축일에 축복한 초를 성초, 재의 수요일에 얹어주는 재를 성회(聖灰)라고 부르는데 이 거룩할 성자(聖字)에 현혹되어 그런 물질에 하느님의 능력이나 은혜가 붙어 있다고 착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바로 미신(迷信)입니다. 성지나 성회는 용도가 끝나면 버리고 성초는 기도할 때 뿐만 아니라 평소 조명에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가져와서 신부님에게 축복해달라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쇳덩어리에 신부가 축복하더라도 그기에 사고를 방지하는 힘이 생길 리 없습니다. 사고 안나려면 교통법규 잘 지키고 안전운행하면 됩니다. 교황이 건물에 축복하더라도 부실로 지은 건물은 무너지고 신부가 자동차 축복해도 운전자가 교통규칙 무시하면 사고나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목동성당에 가서보면 성심상, 성모상 등 사방에 절하고 다니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미사보러 왔으면 미사만 보고가면 되지 왜 사방에 절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성체대전은 주님께서 계시는 곳이므로 이에 절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온통 절하고 다니는 신자들보면 사실 열이 납니다. 집이나 자동차에 십자가나 묵주를 걸어 두는 것이 집이나 자동차를 보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집에 십자가나 성지를 걸어두는 것은 그것을 보는 사람이 하느님을 상기하고 자신이 신자임을 자각하는 데 도움이 될 뿐입니다. 그 이상의 역할을 성물에서 기대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태도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 교안에는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삼덕이 있습니다. 신덕(信德), 망덕(望德), 애덕(愛德), 이 안에 모든 교리가 있습니다. 다른 윤리와 도덕은 인간이 단지 인간관계를 유연하게 하기 위하여 만든 것입니다. 인내, 겸손 같은 것 역시 하느님의 교리는 아닙니다. 인내, 배고프면 밥먹어야지 왜 참습니까? 그리고 겸손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면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두 번만 겸손하면 멍텅구리 소리 듣습니다.


저와 김수환 추기경은 신학교 동기입니다. 김추기경이 유신시대 때 사회정의 운동을 했습니다. 오늘날 사회정의 활동한다면서 신부들이 명동성당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욕하고 추기경 욕하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평신도에게는 신부들이 순명하라고 합니다. 신부에게 순명하라고 하는 것은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도 아닐 뿐더러 교리가 아닙니다. 사제에게 순명한다고 천당가는 것 아닙니다. 신자들은 사제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겨야 합니다. 신부는 신부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사도직을 부여받았습니다. 각자가 그리스도 신비체 안에서 맡은 직분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지금 사제단이 대통령 물러나라고 하면서 천지를 다니면서 미사를 하는데 이들은 사제단이 아니라 마귀집단입니다. 선대들의 순교정신으로 시작된 한국교회가 오늘날에 와서 사제의 본분을 잊고 날뛰는 사제들과 평신도들의 체념과 타협으로 그리스도의 신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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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5-02-10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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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1  요세비8864  ( 2015-04-06 )  답글 찬성 : 7 반대 : 20
올바른 신앙생활의 귀감으로여기며 더많은 가르침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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