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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천 2주년 피정 시 이한택 주교님 강론

글 | 김원율 안드레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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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천주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애씁시다.

지금 교회에는 세상일에 대하여 안일하게 생각하고 흐름에 떠내려가면서 나라의 앞날을 위하여 자신의 할 바를 다하는지 아니면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지 분간 못하는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우리 대수천 회원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주변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서로 용기를 북돋아 주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많은 회원들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시는데 대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같이 애써주세요 라고 말씀드리기 위하여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저는 여기 모인 여러 형제 자매님들 가운데 한사람이며 저 자신이 리더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사적으로 느끼는 점은 제가 정구사 신부님도 만나고 평신도 형제 자매도 만나고 우리들 입장에 대하여 질의도 받고 답변도 드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앙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하느님 위해서 하는 건지 나를 위해 하는 건지 그 외 다른 동기와 목적에서 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보통 나이들면 새벽잠이 없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도 젊은이처럼 새벽잠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자명종이 울면 깨어서 ‘주님 새로운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모두를 바칩니다.’ 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고백의 기도에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고 고백합니다. 좋은 일도 마찬가지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서 오늘 하루가 행복할 수도 있고 힘겨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에 따라 내가 행복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이 행복하게끔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이웃에 봉사하면 이웃 뿐 아니라 내가 행복해집니다. 언제나 성령께서 내 생각을 인도해주시고 성령께서 내 마음 안에서 활동하신다고 믿으면 좋은 일만 생깁니다. 성령께서 좋으신데 좋은 생각만 하도록 당연히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 저를 통해서 형제 자매님께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느님께서 주교를 통해서 무언가를 주신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저는 사제단의 신부님을 만나면 묻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이 하느님보다 정의롭습니까? 이들에게는 대통령도 없고 주교도 없고 추기경도 없습니다. 오로지 내 자신만 있습니다. 한마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입니다.

여러분이 신품성사에 가보면 새로이 서품되는 신부님들이 땅 바닥에 엎드려 있는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는 전적인 순명을 뜻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이 모든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존재의 모두입니다.’를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온전히 내 안에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제가 대수천의 형제 자매님께 몇 번이나 말씁드렸습니다. 우리가 정의구현사제단과 똑같은 방법을 쓰면 안 된다고요. 우리가 그들과 똑같이 소리지르면 실패합니다. 정구사보다 나은 것이 없게 됩니다. 우리가 정의, 사랑을 부르짖으면서 항시 하느님이 내안에 있음을 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정의를 부르짖는다면 내 안에 하느님이 부르짖어야 합니다. 내가 부르짖으면 안 됩니다. 내가 부르짖는다면 하느님도 안보이고 하느님이 나에게 순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구사보다 더 교만해서도 안 되며 정구사 신부님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모두 평등합니다. 성직자 역시 하느님 앞에서 피조물이고 죄인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모님빼고 하느님 앞에서 죄인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교황도, 주교도, 신부도 죄인입니다. 그래서 교황님도 고백성사를 보십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똑같이 피조물이고 똑같이 죄인입니다. 우리가 신자아닌 사람 앞에서도 마찬가지로 겸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다른 사람과 분열을 일으키고 아픔을 주는 방법을 쓰면 안 됩니다.

제가 몇일전 울릉도 성당의 주임신부님이 독도에서 미사를 올린 것을 facebook에 올렸는데 김장철 바오로 형제님이 댓글 다셨습니다. 바오로 형제님 말씀이 그 신부가 울릉도 성당에서 미사하면서 대통령 욕 바가지로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단지 독도에서 미사를 드렸다는 사실이 의미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저는 손신부님을 개인적으로 모르며 연합뉴스에서 링크했을 뿐입니다. 이에 대하여 여러 분들이 전화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누가 미사를 드렸건 독도에서 미사가 봉헌된 것은 사상 처음이며 민족사적 입장에서도 그렇고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 민족에게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 성직자 중 죄인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신부님 중에 악인도 있고 성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죄인에 의해서도 성체가 이루어진다는 기적을 생각해보십시오. 이는 천주교회가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기적입니다. 죄인을 통해서도 기적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성인 신부님이 드리는 미사에만 참례하겠다고 하면 미사의 은총이 커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엄마 아빠이며 부모로서 자식을 훈계 양육합니다. 모든 면에서 결백하다고 자신있게 나올 수 있는 분이 있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죄가 없어서, 천사같기 때문에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죄가 있어도 우리를 통해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회에서는 예수회가 무엇이냐? 하는 정체성을 가르칩니다.  ‘회원은 죄인이며 예수님의 벗이다. 나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이 나를 벗으로 받아주셨다. 내가 이를 믿음으로 해서 나는 예수회 회원이다.’ 나는 무능한 죄인이지만 하느님은 나를 통해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대수천 회원 모두가 이 신앙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창세기에서 신약성서까지 한번 훑어보세요. 아브라함은 유대 민족의 시조이지만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경륜을 가졌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보다 한참 뒤에 나온 유대 민족의 지도자 모세 역시 사람을 죽이고 도망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자 ‘제가 도망다니는 신세인데 어찌 파라오에게 돌아가라 하십니까? 파라오는 저를 죽일 것입니다.’고 하느님께 말합니다. 하느님은 ‘내가 너를 돌보겠다. 그러니 가거라’ 하고 모세를 보내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끊임없이 모세에게 불평하고 대들었습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 고기, 물을 주시오! 우리더러 이 사막에서 죽으란 말이요? 그때마다 하느님께서는 고기와 물,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주신 것이 아니라 모세를 통해서 주셨습니다. 모세는 지탄을 많이 받았고 겁쟁이 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주님은 느보산에서 모세에게 약속의 땅을 보여주시면서 ‘너는 여기까지이다’고 이르십니다. ‘너는 강 건너 가지 못한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모세는 아무 불평없이 받아드립니다. 모세는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지휘권을 넘기면서 ‘너도 용기를 내어라.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용기를 너에게도 주실 것이다.’고 격려합니다.

제가 예수회에서 참으로 많은 자리에서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또한 서울 대교구의 보좌주교를 거쳐 첫 의정부교구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 번도 그 자리에 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적이 없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처럼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만 이는 하느님께서 저를 그렇게 쓰신 것이지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서울에서 2년간 보좌주교를 지내고 의정부 주교로 서임받아 임지에서 첫 번째 사제총회를 열었습니다. 그 때 한 젊은 신부가 ‘주교님 본당생활 몇 년이나 하셨어요?’하고 당돌하게 물었습니다. 저는 수도회 생활을 하였으므로 본당 생활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리낌없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본당생활 하루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할 겁니다. 본당경험이 저에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하느님의 뜻입니다. 저의 일은 하느님께서 시키시는 일이지 제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신부님들 눈치 볼 것도 없고 인기얻을 것도 인정받을 것도 없습니다.’

마음에 맞는 짝을 만나서 연애하고 미래를 꿈꿀 때 우리는 고래등같은 집도 짓고 세상을 다 가신 것 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현실에서 1년, 2년이 지나고 나면 모든게 시들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후회하게 됩니다. 내가 꿈꾸는 것과 하느님이 주시는 것은 다릅니다. 인간의 생각은 언제나 부족하고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지금 김정은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우리 군대에 백전노장, 경험많은 장군, 참모도 있지만 상대의 작전계획을 아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처럼 아는 척 할때 항시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대수천이 정구사 신부들에 대한 대응을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역시 바닥에 엎드린 자세, 겸허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비록 그들이 부족한 인간이었지만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하여 예언자로서 유다 민족을 인도하고 비추셨던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저는 서석구 변호사님의 과거 자신이 좌익 운동권을 변호하는 위치에 있다가 전향하였다고 고백하는 스토리를 유튜브에서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서변호사님을 여러차례 만났지만 과거를 몰랐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듣고 하느님의 인도하심이 놀랍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계성, 서석구 대표님들도 대수천의 목적을 잘 아시고 적절하게 활동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모인 형제 자매님들은 한분 한분이 하느님의 인도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각자 나름대로 걸어온 길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배경이 다르지만 이는 우리 전체를 비옥하게 해주는 거름이 됩니다.

우리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어 살면서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고 양보없이 버티기만 한다면 가정은 깨어지고 맙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인정하고 집안의 전통을 서로 인정하고 존경한다면 자녀들도 보고 배울 것이며 인성교육은 저절로 될 것입니다. 인성교육이란 서로서로를 보완하고 격려하고 서로 대화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큰 병폐는 대화를 못하는 것입니다. 국회에서는 여야가 대화가 되는 것이 한번도 목격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여야가 대화가 된 적이 한번 있었습니다. 의원 세비올리는 것은 만장일치로 합의되었습니다. 대의정치, 민주정치를 소리 지르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소리 큰 것은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여자가 감히’ 하면서 욱박지릅니다. 천주교는 어떤 상황에서든 일치를 구합니다. 그러나 천주교 2천년의 역사를 생각하면 성직자 간에 성직자와 수도자간에 성직자와 평신도 간에 완벽한 일치를 이룬 역사가 거의 없습니다. 언제나 서로 갈등하고 다투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 천주교회는 굴러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는 우리교회가 이룬 기적이었습니다. 교회 내에서 정구사와 같은 단체는 항상 존재했습니다. 가끔은 폭력성을 지닌 이단의 단체도 존재하였습니다.

천주교의 고자세와 권위주의는 교회 밖에서 볼 때 항시 있어왔고 교회는 악한 짓도 많이 저질렀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을 불러 왔습니다. 수도공동체, 성직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수도자, 성직자 모두 죄인입니다.

제가 의정부 교구장으로 있을 때 둘이 한데 사는 신부가 같이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둘을 화해시키느라고 혼이 났습니다. 나중에 너무 말을 듣지 않아서 제가 신부님 두분을 앞에 두고 무릎까지 꿇었습니다. 그러니 역시 나이 든 신부가 달랐습니다. 그는 매우 당황해서 ‘주교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하고 저를 일으켜세우드니 그 다음부터 젊은 신부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양보하면서 젊은 신부를 달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도 젊은 신부는 자신의 고집대로 살았습니다. 그후 마침내 두 신부는 화해하고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신부에 대하여 신자들은 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권리도 있으며 신부에 대하여 과감하게 충고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신자들이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하면서 신부를 따르니 신부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다만, 신자 여러분들이 신부에게 충고할 때 너무 코너로 몰지는 마세요. 그들에게 말을 할 때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입을 가지고 말해야 합니다.

신부님과 담판을 지으러 만나러 간다면 여러분은 제가 소개하는 이러한 책들을 읽고 가세요. 한권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반포하신 사도적권고 ‘복음의 기쁨’이며 또 한권은 ‘내 이름은 프란치스코’입니다. 여러분은 교황님의 마음을 가지고 신부를 만나러 가세요. 정구사 사제들 문제가 이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또 한권은 평신도 영성에 관하여 기술한 ‘자캐오야  내려오너라’입니다. 평신도는 성직자의 하부구조가 아닙니다. 평신도 역시 성직자와 똑 같이 성령으로부터 사제직을 부여받았습니다.

이 책들을 집에 가지고 성서 다음으로 자주자주 읽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신자들은 고분하고 유순합니다. 신자들 의무는 잘 알지만 권리가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권리주장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교구장으로 있으면서 신부님 수녀님 싸움 말리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 중 한가지는 수도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지도 못하고 행사도 못하는 것입니다. 본당 신부들이 일이 생기면 감히 수도원장이나 총원장을 부릅니다. 이들은 수도원을 책임지므로 교구의 주교급입니다. 신부가 부른다고 해서 가면 안되요. 신부가 수도회의 권리를 무시하고 수도자도 이를 당연시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국민의 의무만 지킬 것이 아니라 권리도 살려야 합니다. 신자들도 미사참례하고 시간 봉사하고 몸으로 노력봉사하면서 신자의 의무를 다한다면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마땅합니다.

‘자캐오야 내려오너라.’ 이 책은 토마스 그린 신부가 쓰신 책입니다. 그린 신부님은 영성적인 분으로 알려져 있고 번역은 손희송 주교님의 조카이신 손 우배 신부님이 하셨습니다. ‘자캐오야 내려오너라’는 책은 평신도인 여러분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입니다. 정구사 신부들은 대수천 멤버들을 보면 피합니다. 우리가 애덕과 공론으로 정구사 신부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공격한다면 이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움과 증오심으로 공격한다면 그 미움 때문에 고백성사를 보아야 합니다. 신부님도 연로하신 분이 애정을 갖고 충고하면 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방법을 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찾는 그 누구도 뿌리치지 않으셨습니다. 니코데모와는 대화하시면서 그를 성서의 가르침으로 인도하였고 귀머거리는 듣게 하셨고 장님은 보게 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의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너와는 이야기 하지 않을거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천주교 교회 내에서 보다 일치를 생각하고 누구하고라도 대화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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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5-08-3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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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1  빨간망토차차  ( 2017-08-06 )  답글 찬성 : 9 반대 : 8
밤새도록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답답함이 좀 풀립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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