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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칼럼  |  김원율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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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10.자 부산교구 주보의 글 ‘살충제와 원전, 그리고 원죄’에 대하여

글 | 김원율 안드레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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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소속의 이영훈 일렉산델 신부께서 지난 주 부산교구의 주보에서 다시 사회참여의 필봉을 들었다. 다만 이번에는 반정부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충성된 나팔수로서 필봉을 든 것이 그전과 달라진 것이다. 이 신부의 글이 겉으로 정의ㆍ평화를 내걸고 있지만 항시 그렇듯이 거짓에 의한 선동이라는 점에는 여전히 변함없다.

이 글은 환경 탈레반의 근본주의적인 내용을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포장하여 거짓을 전한 데 지나지 않는다. 이 신부가 탈 원전의 근거로 제시한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주교회의의 책자의 내용 역시 터무니없이 진실을 왜곡한 것이며 선동으로 일관되어 있다. 

애초에 사도의 후계자요 신앙의 스승으로서 영적으로 교회의 양을 이끌어야 할 주교들이 그들이 알지 못하는 에너지 전문분야에 손을 대어 탈 핵발전(그들은 ‘원자력발전’이라는 용어 대신에 ‘핵발전’이라는 용어를 고집한다)을 고집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영훈 신부는 살충제 파동으로 최근 부각된 DDT의 자연에 대한 재앙을 말하고 있지만 무릇 모든 사안(事案)에는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레이첼 카슨은 1962년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내면서 잔류성 화학약품의 위험성을 알림으로써 자연의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 그러나 1939년 폴 뮐러에 의해 개발된 DDT는 당시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고 발진티푸스와 말라리아의 발병률을 크게 떨어뜨린 일등공신으로 각광받았다. 1940년대 말라리아 환자 500만명 이상이 DDT 덕분에 생명을 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DDT가 맹독성이라고 하지만 지금 농민들은 일손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제초에 농약을 사용하고 있다. 이영훈 신부는 이를 일방적으로 모두 금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2013년 발간된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 핵발전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성찰-’이라는 책자는 다음과 같은 궤변으로 가득 차있다.

VI 핵발전과 사회

3. 핵발전과 진실왜곡

104. 핵발전산업은 그 치명적 위험성 때문에 거짓과 은폐가 없으면 지속시킬 수 없는 산업이다.

107. 핵발전은 진실을 왜곡하며, 불의를 구조화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밖에 없다. 핵발전은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난 가장 위험한 과학기술의 무모한 오남용이다.

VII 핵발전과 평화

핵발전과 핵무기는 다른 것이 아니다

108. 핵발전은 ‘평화적 이용’에만 머물지 않고, 언제나 군사적 함의를 갖는다. (중략) 핵발전 과정에서 연료로 사용한 이른바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핵폭탄의 원료로 사용되는 플루토늄을 생산 보유할 수 있다.

109. 핵발전이 전력 생산시스템으로는 가장 위험하고 비경제적이며 불합리한 시스템인데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군사적 핵무장 야망, 또는 배타적 국가주의의 논리, 또는 일부의 경제적 이익추구 때문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다.

주교회의의 책자 107항은 ‘핵발전은 진실을 왜곡하며 불의를 구조화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2016년 말 현재 미국 (104기), 프랑스 (58기), 러시아 (36기), 한국 (25기), 중국 (36기), 인도 (22기), 캐나다 (19기), 영국 (15기), 스웨덴(10기) 등이 원자력 발전 강국에 해당된다. 주교회의의 자료에 따르면 이들 원자력 발전 대국들은 한결같이 진실을 왜곡하며 불의를 구조화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국가여야 한다. 미국, 영국, 캐나다, 스웨덴, 인도, 한국이 그런 나라들인가?

주교회의 책자 108항에서 ‘핵발전과 핵무기는 다른 것이 아니다’고 하였지만 이는 매우 무식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1973년 한미원자력 협정 당시 한국은 사용후 연료의 핵무기로의 전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후의 핵연료(핵폐기물)의 효율적인 처리를 위한 재처리를 한국이 끈질기게 요청한 결과 2015년 6월 한미원자력협정이 개정되어 저준위의 우라늄(핵무기 전용가능성이  없는) 농축, 파이로 프로세싱 건식재처리(역시 핵무기 전용가능성이 없는 방식)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한미원자력협정이 개정되었다. 주교회의 책자가 발간되었던 2013년에는 애시 당초 한국은 핵폭탄을 추출할 수 있는 핵연료 재처리가 금지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무지하여 몰랐었나? 아니면 사실을 알고도 교회의 신자들을 주교회의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외면한 것인가?

109항 역시 한마디로 난센스이다. 원전의 연료비 단가는 kwh당 5.7원이고 유연탄 (49.3원) LNG(83.3원), 태양광(83.6원), 풍력 (102.9원) 수력 (105.5)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다. 원전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수급은 LNG와 신재생 에너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확률은 천만분의 1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규모 9.0의 지진으로 발생한 높이 13m의 쓰나미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한국에서 2016년 9월 경주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 지진은 1978년 지진관측 이래 가장 큰 규모였다. 한국에서는 동일본대지진의 1000분의 1강도인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도 거의 없다는 것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판단이다. 국내 원전은 기본적으로 규모 7.0의 지진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되어 있고 그 안전성을 인정받아 해외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2016년말 현재 30개 국가에 450여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운전 중에 있다. 이들 30개국 모두가 전력생산이 아니라 군사적 핵무장을 위하여 원자력발전소를 운행하고 있다고 주교회의는 생각하는가?

이영훈 신부는 또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방사능의 치명적인 위험성으로 볼 때, 최고 수준의 관리와 안전성이 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원전 관련 비리와 불량 부속품 사용, 그리고 크고 작은 사고 발생은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원전 비리와 사고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상강화, 규제와 개혁으로 해결해나가야지 이를 빌미로 원자력 발전을 중단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잦다고 해서 술과 자동차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MB정부 시절 원자력 사고가 문제된 이후 한국은 지속적으로 원자력 산업에 대한 안전성을 강화하여 현재는 세계 최고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영훈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미에 말하고 있다.

2013년 한국천주교회는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 핵발전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성찰」을 통해 ‘핵’은 “생명권과 환경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그에 반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의 출발이며 완성인 하느님의 창조 역사와 구원역사를 부정한다”(122항)며 ‘탈핵’을 교회 가르침으로 공식화하였습니다. 그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교회는 이 가르침에 따라 끊임없이 노후화된 원전 폐쇄와 원전 건설 중지, 그리고 에너지 정책에 대한 전환을 요구하였습니다.

9월 3일 핵미치광이 김정은의 수소폭탄 실험이라는 폭주, 5천만이 김정은의 핵인질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헛소리를 하는 신부가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서글프다. 신부는 핵 위에 있는 존재인가? 이영훈 신부는 살인강도가 식칼을 들고 설치는 것은 괜찮고 주부가 과도를 써서 요리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팔뜨기인가? 지금 그나마 원자력발전소라도 우리가 갖고 있어야 비상시에 김정은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국과의 협의 하에 핵무장을 선언하기라도 할 것 아닌가?

고리 원자력 발전소 5, 6호기 건설에 참여한 기업 중 90%가 중소기업이라고 한다. 그들은 막대한 투자와 연구개발 끝에 세계적인 원전 관련 기술을 개발하였음에도 정부의 탈 원전 정책으로 이제 기업을 정리해야 할 판이다. 이 얼마나 웃지 못할 비극인가?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누가 떠안아야 하는가? 또 원전 건설 중단으로 인하여 600조원에 달하는 미래 먹거리 시장에서 한국은 짐을 싸야할 판이다. 이것이 이영훈 신부가 말하는 정의와 공정이 넘치는 사회인가?

이제 주교와 신부들은 영원한 저너머에 시선을 두어야 한다. 신부들이 정의와 평화를 내세우면서 전문가의 영역에 침범하여 망국적 포퓰리즘을 들쑤시고 좌파의 진영논리에 가세하여 나라를 어렵게 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 
(2017.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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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09-1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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