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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 베테딕토 16세 교황성하의 위대한 회칙 -

글 | 김원율 안드레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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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매일미사 제1독서는 요한 1서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요한 1서 4,16) (God is love, and whoever remains in love remains in God and God in him.) 2005년 12월 25일 이 시대의 위대한 스승,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자신의 첫 번째 회칙으로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God is Love)라는 회칙을 반포하셨습니다. 이에는 다른 교황님의 어떤 사회교리보다 위대한 사회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이 회칙은 먼저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신명 6,4-5)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레위기 19,18 마르크 12,29-31) 이러한 계명을 한데 묶은 것이 바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요한1서의 계명입니다. 사랑은 더 이상 단순한 ‘계명’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사랑의 은총에 대한 응답입니다.

“현세에서 복수나 증오, 폭력의 명분에 하느님의 이름을 결부시키는 오늘날, 이 메시지는 시의적절하고 중요합니다.”(서론 1항) 현세에서 많은 성직자들이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잊고 오로지 자신의 이념을 세상에서 실현시키기 위한 의도로 하느님의 사랑을 오용(誤用)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에 경도(傾倒)되고 해방신학에 젖은 성직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외치고 있으나 그들 마음속에는 참된 사랑이 없습니다. 이들이 외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은 증오심과 적개심을 동력(動力)으로 삼아 계급투쟁, 사유재산 제도의 말살을 통해 공산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위대한 스승 베네딕토 16세 교황성하께서는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통하여 마르크스주의의 정체를 가장 일목요연하게 우리에게 제시해주셨습니다. 회칙 중에서 ‘정의와 사랑’ 26항에서 베네딕토 교황성하께서 마르크스주의의 오류를 명확하게 제시해주십니다.
 

정의와 사랑

(26항) “19세기 이래 교회의 사랑활동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일어났고 곧이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활동이 아니라 정의라는 마르크스주의의 특수한 주장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사랑의 활동–자선-이 실제로 부자들이 정의를 위하여 일할 의무를 회피하고 양심의 짐을 더는 수단이 되어, 그들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빼앗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개별적인 자선활동을 통하여 현상(status quo)유지에 기여하는 대신,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이룩하여 모든 사람이 세상 재화 가운데 자신의 몫을 받고 더 이상 자선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오류를 적시하셨습니다.

“마르크스는 지배계급의 타파, 정권의 몰락,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하여 새로운 예루살렘이 실현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파괴와 인간말살의 비참한 결과만 초래하였습니다.” 

“그의 오류는 매우 깊은 데에 있습니다. 그는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을 망각하고 인간의 자유를 망각하였습니다. 그의 결정적 오류는 유물론이었습니다.”

1984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있을 때 발표한 훈령 ‘자유의 전갈’(Notification of Liberty)은 해방신학이 바로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차용하였고 구원의 복음을 지상의 복음으로 추락시켰다고 말합니다.
 

사랑을 전적으로 배제한 마르크스의 이상향

마르크스는 정의로운 사회구조는 사랑의 활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마르크스는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정당한 몫을 갖게 되면 더 이상 부자들의 자선과 사랑의 활동은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불행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역사상 어떤 계층의 사람도 사랑과 배려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고 또한 지금도 없습니다. 이는 인간을 물질로 파악하는 것이며 물질적인 충족만으로 사랑과 배려 없이도 인간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유물론적 물질주의 사고의 소산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단식 중에 사탄이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는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 즉 사랑의 계명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9.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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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9-01-0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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