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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과 시기심, 그리고 마르크스

글 | 김원율 안드레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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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타락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사탄은 존재했다. ‘천사론이라는 책은 일부 천사들이 어떻게 타락하였고 낙원에서 쫓겨났는지, 그리고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과정이 상세히 묘사되어있다.
 
외경 아담과 하와의 생애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기록하고 있다. 하느님이 자신의 모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자 미카엘 대천사는 모든 천사에게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에게 경배하라고 명한다. 그리고 미카엘이 제일 먼저 아담에게 공경을 표했으나, 이 때 일부 천사가 이에 저항한다. “나는 아담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존재하였다. 그가 먼저 나를 공경해야 한다.” 하느님의 명을 거역한 사탄은 낙원에서 쫓겨나게 된다.
 
질투심으로 인해 일부 천사가 하느님의 명을 거역하게 되었고 이로써 사탄이 생겨났다. 천사는 창조될 때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사탄은 낙원의 영광에서 멀어진 후 이를 아담의 탓으로 돌렸고, 아담이 낙원의 기쁨과 희열을 느끼며 거닐 때 사탄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인간에게 복수할 기회를 엿보았다. 사탄은 하와와 아담으로 하여금 지선악과를 따먹게 함으로써 이들은 낙원에서 쫓겨나고 인간은 죽음의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사탄과 시기심
 
지혜서 223~24절을 읽어보자.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오게 되었다.’ 인간의 가장 비열한 감정, 시기심은 곧 사탄으로부터 잉태되었으며, 세상은 시기심으로 인하여 온갖 비극이 그칠 새 없다.
 
한 수도자가 사막에서 깊은 수행을 하고 있었다. 사탄의 졸개들이 이 수도자를 타락시키기 위하여 갖은 유혹과 회유를 다하였으나 수도자는 깊은 명상에 빠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때 사탄의 우두머리는 회심의 미소를 띠고 수도자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속삭인다. 그 순간 신심깊은 수도자의 표정은 고통의 격랑(激浪)으로 인해 이지러지고 만다. 사탄의 우두머리는 수도자에 무슨 말을 하였던가?
 
기뻐하십시오. 방금 들어온 기쁜 소식을 하나 전해드립니다. 덕망이 높은 그대의 동기 신부님께서 방금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로 발령이 나셨습니다.”
 
마르크스와 사탄
 
지구상에 수많은 인간을 파멸로 몰아넣었던 사탄의 후예는 누구인가? 마르크스이다. 베네딕트 16세 교황은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겠다고 날뛰던 인간이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독일의 저명한 사상가 리차드 범브란트(Richard Wurmbrandt)는 그의 통찰력 깊은 저서 마르크스와 사탄에서 이 세상에서 3분의 1은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한다.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이들은 비록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살고 있으나 심정적으로 마르크스를 따르는 마르크스주의자이다. 가진 자와 가난한 자를 이분법으로 나누고 가진 자의 횡포로 가난한 자들이 비참한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는 천주교회의 성직자에게도 나타나며, 대한민국의 천주교회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자가 대세를 차지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바로 사탄의 가르침이다.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무산계급혁명의 에너지는 바로 민중의 질투심과 적개심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영혼을 부정하며 인간을 물질로 폄하한다. 물질이 보장되면 인간의 행복은 자연적으로 보장되며 인간의 영혼이 지향하는 배려와 사랑, 관용, 용서라는 모든 추상적인 가치는 사라지게 된다. 부자의 자선은 가난한 자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고 양심의 짐을 더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요체이다.
 
정의와 질투
 
대한민국에서 많은 얼빠진 신부들이 정의를 구현한다고 날뛰고 있다. 일본의 경제학자 다께우치 야스오는 자신의 저서 정의와 질투의 경제학에서 질투는 때때로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고 했다. 타인의 풍요로움, 유복한 모습에서 이를 아름답게 생각하고 그들의 풍요와 여유를 내심 축복하기 보다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위화감에 빠지는 인간들이 이를 정의로운 감정으로 착각한다. 대량생산 산업사회의 풍요로움을 물신주의(物神主義) 악령이 지배하는 세계등의 말로 저주를 퍼붓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20182월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 고법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의정부교구의 한 골수 운동권 사제는 담당 고법 부장판사를 맹비난하는 글을 Social Media에 올렸다. 이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뿌리깊은 질투심과 증오심을 정의라고 착각하고 있다. 법리에도 없는 마음속 청탁을 유죄로 삼아 대한민국 최대재벌을 감옥에 잡아가두는 것이 과연 정의인가?
 
인간의 질투심을 건드려 증오심을 불태우고, 이를 소수의 기득권자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연결시켜 혁명의 동력으로 삼은 것이 촛불혁명의 본질이다. 공산주의의 본질을 외면하고 북의 김정은과 어울려 인기 한탕주의식 평화-쇼를 벌이는 문재인을 보면 마르크스라는 사탄에 빙의(憑依)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성(理性)과 자유의지를 가진 시민이 이 나라에서 마르크스의 후예들을 축출하기 위해서는 이번 4월 선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0.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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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0-04-1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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