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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상 바오로 성인과 상재상서(上宰相書)

글 | 김원율 안드레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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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920일은 김대건 안드레아와 정하상 바오로,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이다. 정하상 바오로 성인은 한국 교회 최초로 저술한 호교론과 함께 그의 비할 데 없이 장렬한 순교는 대한민국의 교회 역사에 찬연한 빛을 발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 역사상 유례없이 선교사 없이 한국인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인 특이한 예이다.
 
그는 관아에 잡혀가기 전에 당시 우의정 이지연에게 미리 천주교의 교리와 만유 위에 천주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 등을 써서 준비해두었다가 잡혀가면서 조정(朝廷)에 이를 바쳤다. 당시 조정에서 이 글을 받아보고 그 논리의 명철함과 유려한 필치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수년 전에 한국 신부님이 미국에서 현지 사목 중에 중국인 신부님을 만났는데 그가 정하상 바오로 성인을 공경하고 그의 상재상서를 알고 있어 매우 놀랐다고 한다. 한국 신부님이 어째서 아느냐고 물었더니 신학교에서 교재로 상재상서를 배웠다고 하였다. 상재상서(上宰上書)는 당시 학자들이 모두 그러했듯 성인이 원래 한문(漢文)으로 집필한 것이다. 다음은 상재상서 중 천주의 존재 이유를 기술한 부분과 천주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를 압축, 정리한 것이다.
 
대개 하늘과 땅에는 본래부터 다스리는 분이 계시는데, 여기 세 가지의 증거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만물(萬物)이요, 둘째는 양지(良知), 셋째는 성경(聖經)입니다.
 
세상천지가 만약 정말 저절로 생성된 것이라면, 해와 달과 별들은 어떻게 그 궤도를 벗어나지 않겠으며,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은 어떻게 그 차례를 어기지 않겠습니까? 천지에는 흥망(興亡)과 성쇠(盛衰)를 다스리는 분, 화복(禍福)을 내리는 분이 있습니다. 하늘이 이루신 것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기에,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대충 짐작해 자연히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유복자(遺腹子)가 자기 아버지를 못보았다고 해서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두 번째 인간의 양지를 들어 천주께서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주 화급하고 위급한 처지나 비통하고 억울한 때를 당하면 반드시 하늘이시여!” 하고 부르며 하소연하니, 이는 그 본래의 마음과 타고난 본성을 숨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로서 상벌과 선악을 주관하시는 분이 사람의 마음과 머리 속에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떻게 섬기며 두려워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뿐입니다.
 
세 번째 성경을 증거로 들 수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요임금, 순임금, 우왕, 탕왕, 무왕, 문왕, 주공, 공자 같은 성인들의 이야기도 경전과 역사서를 통해 전해오는데, 만약 이런 것이 아니었다면 요임금, 순임금, 우왕, 탕왕, 문왕, 무왕, 주공, 공자가 어떤 심법(心法)을 전수했고, 어떤 법도를 세웠는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 천주교에도 역시 경전이 전래되어 오고 있습니다. ‘시경(詩經)’에서는 하늘을 열심으로 섬긴다.”고 했으며, 또 공자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어 볼 곳이 없다고 했으며, 이른바 하늘을 공경한다, 하늘을 두려워한다, 하늘에 순종한다, 하늘을 받든다는 말들이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의 글에 뒤섞여 실려 있습니다. 명나라 만력년간(萬歷年間)에는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와 많은 저술을 남겨 오늘날까지도 중국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천주께서 묵묵히 동방(東邦)을 도우시어 신기하게도 우리나라가 다행히 똑같은 복을 누리게 된 것이 이제 50여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다스리는 분이 계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위의 세 가지 증거를 통해 이미 다스리는 분이 계심을 분명히 알 수 있으니, 천주께서 천지만물을 만드시어 그의 복을 두루 내리고 그의 덕을 드러내고자 하심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을 만들어 내 위를 덮어주고, 땅을 만들어 내 발을 받쳐주며, 해와 달과 별을 만들어 빛으로 나를 비춰주며, 초목과 날짐승, 길짐승이며 금, , , 철을 나에게 쓰라고 주셨으니, 우리가 모태로부터 나와 성장하기까지 하고많은 은혜를 받은 것이 이처럼 끝이 없거늘, 사람된 본분이 응당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사람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은 아주 작은 것도 모두 천주의 힘입니다. 낳아서 길러주고 도와 보살피시고, 보호하여 이끌어 주시며, 죽은 뒤에 상을 받는 것은 더 따지지 않더라도, 살아서 지금 받은 은혜도 이미 지극하여 비길 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죽기까지 받들어 섬기기를 어떻게 해야만 그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천주교의 가르침에는 용서와 효도와 우애와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이 안에 들어 있어 터럭만치도 부족된 데가 없습니다. 이 도를 한 집안에서 실행하면 집안이 정돈될 것이요, 한 나라에서 실천하면 나라가 다스려질 것이요, 온 천하가 실행하면 온 천하가 태평할 것입니다.
 
세상은 교만으로 유혹하고, 분노로 유혹하고, 탐욕으로 유혹하고, 요사스러움으로 유혹하고, 질투로 유혹하고, 인색함으로 유혹하고, 게으름으로 유혹하기도 하여, 죽어 없어지고 말 곳으로 사람을 빠뜨립니다. 천주의 가르침을 배우고 마음에 새겨서 정말 이런 유혹들을 시시각각으로 경계하여 물리치지 않는다면, 죄악의 구렁텅이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몸이 죽은 뒤에 영혼이 따라서 사라진다면, 상이며 벌을 누구에게 내리겠습니까? 이는 또한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정하상 바오로 성인은 관아에 잡혀간 뒤 배교를 강요당하면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받았으며 톱질형을 받아 살이 떨어져 나가고 골수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또한 그는 샤스탕과 모방 신부의 은신처를 대라는 심문에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1839922, 서양 신을 나라에 끌어들인 모반죄와 부도의 죄명을 쓰고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정하상 바오로 성인은 192575일 교황 비오 11(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5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202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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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0-09-2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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