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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인권유린과 잔악한 행위는 오늘날 북한에서 재현되고 있다!

글 | 김원율 안드레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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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일은 천주교회가 막스밀리안 마리아 콜베 성인(聖人)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성인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2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수용소는 5백만 이상이 고문과 집단 처형, 아사(餓死) 등으로 숨져간, 인간극한의 상황이 펼쳐지는 지옥이었다. 이 땅위의 언어로써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온갖 모독, 잔학한 행위, 고통이 펼쳐졌다. 오장육부를 찢어내고 잠마저 앗아가는 혹독하고 끊임없는 굶주림! 낮이나 밤이나 몸을 떨게 하는 추위 속에서 콜베 성인은 인간에 대한 위대한 사랑을 증거 하였다.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은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10명의 수인을 지명하여 아사방에서 굶겨 죽이는 참혹한 형벌을 내렸다. 19417월 말경 수감자한명이 탈출하자 이 때문에 아사방의 형벌에 지명된 10명의 죄수 가운에 한 명이 자기에게는 가족이 있다고 울부짖었다. 그러자 콜베 신부가 그를 대신하여 아사방에서 죽겠다고 앞으로 나섰다.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신부는 814, 천주교의 성모승천 축일을 하루 앞두고 아사감방에서 거룩한 생애를 마쳤으며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를 자비의 순교자로 부르며 시성(諡聖)하였다. 이에 대한 것은 필자가 1년 전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라는 글에서 그 감동을 전한 바 있다.

필자는 몇일 전 탈북자를 주로 다루는 배나TV라는 유튜브에서 탈북자 최지애씨에 대한 프로를 시청할 수 있었다. 그 프로에서 필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아우슈비츠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북한 교화소에서의 탈북자에 대한 인권유린 실태를 접하게 되었다. 

그녀는 북한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은 후 29세 되던 2010년 입국하여 12년 만에 어머니와 감격의 상봉을 하였다. 1981년생인 그녀는 어머니를 뒤따라 탈북한 후 인신매매범에 이끌려 여행하던 중 중국 공안에 체포된 후 북송되었다. 그녀는 체포된 위치가 북 주민의 한국입국 루트인 내몽고와 가깝다는 이유로 악명높은 증산교화소에 199918세 생일이 되던 날 수감되었다. 단지 북한을 이탈한 주민과 한국에 가다가 잡힌 사람들은 천양지차의 처벌을 받는다. 참을 수 없는 배고픔과 구타, 인권유린은 일상이었고 매일 부지기수의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증산교화소에서 살아 나오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그녀는 그곳에서 같은 날 수감된 수련이라는 동갑내기를 만나 서로 의지하며 지내게 된다. 착하고 용모도 예뻤던 그 친구는 중국인 남자의 아기를 밴 채로 증산교도소에 수용되었다. 무지막지한 지도원이 낙태시키기 위하여 발로 차기도 했으나 애기가 떨어지지 않자 침대에서 족쇄를 찬 채로 강제로 낙태수술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분신인 애기를 낳기를 바랐으나 냉혹하고 잔인한 공산당은 이 여인의 인권을 무참하게 유린하였다. 

옷은 별도로 지급되는 것이 없고 자기기 잡힐 때 입고 있던 옷으로 여름, 겨울을 버텨야 한다. 사람이 죽어서 나가면 그 사람이 입던 옷과 신발을 벗겨 입어야 했다. 최지애씨는 여름에 교화소에 들어왔으므로 자신을 아끼던 아주머니가 죽어나가면서 그 신발을 신었다고 한다. 그러지 않았으면 동상에 걸려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수인들은 바퀴벌레와 벼룩에 살이 뜯기고 콩 몇알이 들어간 단지밥에 옥수수 알갱이도 없이 껍질이 섞여있는 단지밥이 주어졌다. 모래가 배여 있어 씹다가는 이빨이 전부 아작이 나므로 밥은 씹지 않고 삼켜야 했다. 

최지애씨는 어느날 해변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중 모래사장을 기어가던 방게를 손으로 낚아채 입에 집어넣었으나 그 순간 지도원의 수차례 발길질로 어금니 세 개가 부러져 나갔다. 그녀는 작업장인 논에서 작업하던 중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수시로 개구리와 뱀을 잡아 먹기까지 했다. 수련이라는 친구는 교화소에서 생활하던 중 강제낙태로 쇠약해지고 설사병을 만나 점차 삶의 의욕을 잃고 맥을 놓기 시작하였다. “수련아! 맥을 놓으면 안돼. 어떻게든 살아서 나가야 돼하고 그를 부추겼지만 그녀는 6개월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녀는 친구를 비닐로 싸서 동토의 땅에 묻으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유튜브를 보던 필자 역시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 21세기 대명천지에서 어찌 이런 악마의 집단이 다스리는 동토의 왕국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최지애씨는 오로지 살아남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버틴 결과 1년 만에 지옥같은 증산교화소를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사회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교화소에서 숨져간 친구를 생각하며 또다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마침내 천신만고 끝에 2010년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지금은 어머니와 용인에서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지금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북의 주민이 자유 대한민국을 그리며 탈북을 꿈꾸고 있으나 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탈북 브로커 비용도 한 사람당 2천만원에서 25백만원에 달하며 위험도 점차 커지고 있다. 

201911월 문재인 살인정권은 탈북 어부 2명을 판문점을 통해 비밀리에 강제 송환하다가 한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JSA경비대장이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찍힘으로써 들통이 났다. 이는 당시 부산에서 열린 한· 아세안 특별정상회담에 김정은의 참석을 호소하며 대북 평화쇼에 혈안이 되어있던 문재인이 어부 2명을 김정은에게 인신공양(人身供養)한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귀순의사를 밝혔으며 정부에서는 어부 16명을 살해하였다는 터무니없는 죄목을 씌우고 있으나, 이는 야간작업을 하는 어부들의 상황, 배의 구조와 크기 등을 감안하면 거짓주장일 가능성이 크다. 설사 이들이 살인죄를 저질렀다 해도 이들은 대한민국의 법정에서 재판받아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탈북민은 대한민국 헌법 3조에 의하여 태어날 때부터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들은 포승줄에 결박된 채 판문점을 통해 북에 송환되었고 눈의 안대를 푸는 순간 절망에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후일 이들은 북에서 무지막지한 고문을 받고 비참하게 죽어갔다고 한다. 이 모든 인권유린과 탈북어부의 비참한 죽음에는 민족반역자이며 김정은의 하수인인 문재인이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2021.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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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1-08-13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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