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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칼럼  |  김원율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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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불행하여라, 너 한반도여!

글 | 김원율 안드레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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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마르코 8,22-26)에서 예수님은 소경을 고쳐주셔서 눈을 뜨게 하였는데 그 장소는 벳사이다 마을 밖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소경을 집으로 보내시면서 벳사이다를 향해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하셨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이는 마태오 복음 1120절에서 24절까지 읽으면 어느 정도 이유를 알게 된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회개하였을 것이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한마디로 벳사이다는 회개하지 않는 고을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의 소경은 비록 육신의 눈은 닫혀있었으나 영혼의 눈은 예수님을 향해 열려있었으므로 그는 육신의 눈도 고칠 수 있었다. 그러나 벳사이다 사람들은 마음이 완고하여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을 보고서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혼의 눈이 닫혀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벳사이다 사람들에게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회개하였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티로와 시돈은 이방인이 살던 지역이며 오늘날 레바논의 지중해변에 자리 잡은 항구도시로서 성적으로 문란한 마을로 소문이 났던 곳이다. (이사야 23) 소돔은 사해(死海) 남쪽에 있던 전설적 고을인데, 남색을 일삼다가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 유황불에 타버렸다. (창세기 19) 오늘날 동성애자를 sodomite라고 하는 것도 이에서 연유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리스도의 기적을 보지 못하였고 그리스도의 가르침도 받지 못하였으므로 오히려 티로, 시돈, 소돔이 심판 때에 그 죄가 가볍다고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신 것이다. 육신의 눈이 멀었다 함은 그 결과가 육신이 겪는 불편함뿐이나 마음이 완고한 이들은 영혼의 눈이 닫혀 있으므로 이들은 영원히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영혼의 눈이 먼 사람들은 예수님 시대의 벳사이다 사람만이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사람들 역시 영혼의 눈이 멀었다. 유대인은 마음이 완고하여 사랑과 평화를 세상에 가져왔던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선지자적(先知者的) 이상을 이 땅에 가져온 이승만, 자조, 근면, 협동이라는 정신으로 이 나라를 국가의존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하여 세계가 찬탄하는 눈부신 경제기적을 이룬 박정희라는 위대한 지도자들을 더불어공산당은 독재자로 폄하하며 십자가에 못 박고 있다.

 

어리석은 이 나라 국민은 경제 기적을 보았고 그 과실을 향유하면서도 풍요와 경제적 번영을 가능하게 했던 모든 패러다임을 버리고, 300만의 주민을 굶어 죽게 한 북한 3대 세습 폭압정권의 패러다임을 취하려하고 있다. 

더불어공산당이 독기어리고 흉포한 성정(性情)을 가진 야만적인 인물을 후보를 삼은 것은 이 인간이야말로 이 나라를 공산사회(共産社會)로 곧장 이끌 수 있는 최적의 인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북쪽은 이미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공하여 김씨 일가가 19세기 봉건 세습왕조를 이룩하였고 민중은 자유 없는 노예의 삶을 살고 있다. 한반도의 남쪽 역시 영혼의 눈을 뜨지 못한 무지몽매한 인간들로 인하여 북한과 같은 공산사회(共産社會)로 나아가고 있다. ! 한반도는 하느님의 버림을 받고 북과 같은 지옥의 동토(凍土)가 되어 영원한 파멸의 길로 나아가고 말 것인가?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여! 불행하여라 너 한반도여!’ 

(2022.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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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2-07-19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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