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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기도의 성월을 맞으며

글 | 김원율 안드레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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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묵주기도의 성월입니다. 묵주기도의 성월을 맞으면서 생각나는 책이 있습니다. 나가사키의 성자라고 불리워졌던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쓴 책 묵주알이라는 책입니다. 194589일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떨어졌습니다. 순식간에 나가사키지역은 아비규환으로 화했으며 폭심에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뜨거운 열 속에서 모두 재가 되었고 3만 이상의 시민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나가사키는 우리로 말하면 천진암에 해당하는 일본 천주교의 발상지였고 성모 승천 대축일을 앞두고 많은 신자들이 판공성사를 보고 있었습니다. 우라카미 성당은 원자탄의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성당과 그 인근에 거주하던 8천명 이상의 신자들이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때의 참상은 호주 출신의 폴 글린 신부가 쓴 나가사키의 노래라는 책에 절절히 묘사되고 있습니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피폭 당시 나가사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며 원자탄으로 인한 태풍으로 몸이 내동댕이 쳐지면서 죽음을 넘나들 정도의 부상을 당했지만 혼신의 힘으로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이틀 후 정신을 차려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리고 잿더미가 된 그의 집에는 사랑하는 아내의 시신이 겨우 엉치뻐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 미도리 여사는 일본의 순교자 집안의 후손이며 참으로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었습니다. 원래 나가이 박사는 공학도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무신론자였으나 미도리 여사와 결혼하면서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나가이 박사는 아내의 시신인 뻐를 수습하여 양동이에 담고 묘지에 묻기 위하여 양동이를 가슴에 안고 갔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시신 옆에는 아내가 원자탄이 터지는 순간까지 기도하고 있던 묵주알이 오그라든채로 남아있었습니다.

 

제가 2010년 나가사키를 성지순례할 때 나가이 다카시 기념관에는 미도리 여사가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쥐고 있던 바로 그 오그라진 묵주알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 묵주알을 보면서 한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묵주기도의 은총은 무한합니다. 107일은 묵주기도의 동정마리아기념일입니다. 16세기 오스만제국은 강대국이었으며 유럽을 침공하였습니다. 157110월 그리스도 연합군은 레판토 앞바다에서 이슬람제국과 맞닥뜨렸습니다. 당시 그리스도교 연합군은 여러면에서 오스만의 해군력에 많이 미치지 못하였지만 교황님의 청원으로 많은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바쳤고 결과는 연합군의 대승으로 끝났습니다. 당시 비오5세교황은 승리한 날을 승리의 성모축일로 제정하였으나 후일 묵주기도의 동정마리아 기념일로 바뀌었습니다. 이날의 승리는 이슬람의 침략으로부터 서유럽을 보존하여 가톨릭국가들이 신앙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묵주기도가 얼마나 큰 힘을 갖는가 하는 점을 신자들은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2022년 10월 12일 묵주기도성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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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2-10-28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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