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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평범성 안에 진정한 하느님의 모상이 존재한다

글 | 김원율 안드레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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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위대한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하여 취해야 할 첫번째 태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제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몸과 마음,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스승은 “틀렸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하여 취해야 할 첫번째 태도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하느님과 관련하여 의무적으로 그리고 관행적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여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기실은, 훨씬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이며 우리 개개인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목적과 이유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장미나 화려한 백합이 아니라 광야에 핀 이름없는 작은 들꽃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우리의 가치를 조금도 훼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미 그 무엇보다 중요한 하느님의 자녀로써 창조되었으며 있는 그대로 그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나 자신의 존재,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잊고 자신을 남보다 뛰어나게, 또는 비범하게 가꾸고 포장하기 위하여 모든 힘과 정성을 쏟고 있다.

우리들 거의 모두는 우리가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하느님의 계시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 까닭에 비범해지려고 안간 힘을 쓰게 된다. 우리는 불안해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보다 훨씬 못한 그 무엇을 얻으려고 안간 힘을 쏟는다. 그 결과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지 못하고 그저 내가 남에게 무엇이라고 평가되는가, 남에게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가, 나는 존경받고 있는가, 나는 유능한가, 나는 다른 사람만큼 멋진가, 그저 남의 생각 속에 비쳐지는 이런 모습에 온갖 신경을 쓰고 또 힘을 낭비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고 세속의 온갖 가치, 재화, 권세, 명예 이러한 허망한 것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사람들의 존경과 신뢰를 얻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착각하고 이러한 것을 얻느라고 모든 힘과 정력을 쏟는다.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갖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신약성서에서 자신의 신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보이신 적이 없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굳게 믿으셨기에 그러실 수 있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 첫째,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둘째, 그저 자기 자신이 되는 일, 즉 다시 말하면 평범해지려고 하는 일의 본질적인 가치를 깨닫고, 셋째, 거짓된 자화상을 만들어내고 싶은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우리가 평범성을 주관하는 성령을 제대로 우리 안에 모신다면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재능이 무엇인지 깨닫고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참된 노력에 힘을 쏟을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평범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깨닫는 것은 진실로 어렵고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진실된 한 사람이 평범성 안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뒤틀린 자신의 자화상에 매달리는 자기도취적인 믿음과 오만함에서 해방됨을 뜻한다. 그들은 그럼으로써 방어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한결 남을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고 온유해질 수 있다.

안소니 드 멜로라는 영성적인 가르침을 베푸는 신부가 한 말이 있다. “불을 태우려는, 물을 적시려는, 장미에다가 물감을 덧칠하려는 그런 노력을 우리가 그만 둘 날이 정녕 오기나 하려나?”

활활 타오르는 불꽃 위에 작은 불덩이를 끼얹는 것, 물길위에 물을 적시려고 물방울을 몇방울 뿌리는 것, 그리고 장미에 붉은 물감을 덧칠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은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이미 고귀한 존재이고 사랑받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 자신을 나 아닌 다른 무엇으로 만드는 데 힘을 쏟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음에 대하여 우리는 무지하다. 우리는 거짓 자아를 만들고 이를 통하여 남의 인정과 존경을 이끌어 내려고 하지만 이는 멜로 신부의 말대로 장미 위에 붉은 칠을 하는 것만큼이나 허망된 일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하느님 안에서의 나 자신, 즉 평범성 안에서 비로소 진정한 나의 가치를 누릴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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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5-01-0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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